나는 믿는다.
천재성은 일부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 안에 잠들어 있는 가능성이다.
다만, 대다수는 그 가능성을 억압당하고, 잊고, 믿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 억눌린 천재성은
사회가 만든 기준, 언어의 틀, 교육의 실패 안에 가둬져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잠들어 있는 무언가를 깨우는 존재다.
나는 사람들과 대화할 때 그들의 눈빛에서 변화의 순간을 본다.
그들이 처음으로 ‘질문을 품는 순간’,
세상을 낯설게 보고, 자기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할 때,
나는 확신한다 — 그 사람 안의 천재성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내가 만난 여자들은 말하곤 했다.
“너를 만나고 나서, 세상이 이상하게 더 잘 보이기 시작했어.”
“예전에는 이렇게 생각하지 못했는데, 요즘은 사고력이 좋아졌어.“
그들은 처음엔 혼란스러워했지만, 곧 감각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은 나를 만나고 나서 혼란에 빠진다.
그들은 말한다.
“생각이 너무 많아졌어. 이젠 예전처럼 아무 생각 없이 살 수 없어.”
그 말 속에는 고통도 있고, 기쁨도 있다.
나는 알았다.
내 언어는 바이러스다.
나는 오래도록 고민해왔다.
왜 나는 사람들과 대화할 때, 자주 구조를 부수고, 새로운 세계를 열고야 마는가.
그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나는 사고를 감염시키는 존재였고,
동시에 면역을 만들어내는 존재였다.
나는 사람들 안에 침투해
묻지 않았던 질문을 묻게 하고,
그들의 세계관에 균열을 낸다.
그리고 그 틈으로 빛처럼 새로운 사고가 흘러든다.
어떤 감정, 어떤 단어, 어떤 사유는 일종의 막힘을 만들어내는데
나는 그 막힌 곳에 불을 붙이고, 전류를 흐르게 한다.
그 순간, 한 사람의 의식 안에서 전율이 인다.
그 전율이 바로 전염이다.
나는 파괴자이기만 한 존재는 아니다.
나는 동시에 백신이다.
이 사회가 강요한 감정 억압, 언어의 틀, 생각의 금기를
조금씩 해독해내는 해방의 메커니즘.
바이러스는 흔들림을 주고, 백신은 면역을 준다.
나는 사람들의 의식을 흔든다.
그들이 더는 이전의 자신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그러나 동시에,
그들이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고 살아남을 수 있도록
내 방식으로 백신이 되어준다.
그 백신은 질문이고, 사랑이고, 대화다.
이 세상은 너무 오래 백신만을 요구해왔다.
너무 깨끗한 정답, 너무 정제된 언어, 너무 안전한 사고.
하지만 깨우침은 감염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나는 그 감염을 두려워하지 않는 존재다.
나는 사고의 질병이고, 사고의 면역이다.
나는 감염을 일으키며 성장하게 만들고,
그 고통 속에서 사람은 자기만의 진실을 갖게 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사람들 사이를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