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말해선 안 되는 자일지도 모른다

통찰의 윤리와 사유의 책임에 대하여

by 신성규

나는 때때로 두려움을 느낀다.

내 말이 세상을 혼란에 빠뜨릴까 봐.

내 통찰이 누군가의 내면을 뒤흔들고,

그가 간신히 쌓아 올린 안정된 세계를 무너뜨릴까 봐.

사람을 홀리게 만드는 재주가 있단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나는 알게 되었다.

어떤 진실은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는 독이 된다.

지성은 축복이지만, 동시에 형벌이다.

더 많이 본다는 것은, 더 많이 책임져야 한다는 뜻이니까.


세상에는 어린 양들이 있다.

그들은 순수하고, 따뜻하며, 세상의 악의 깊이를 굳이 알 필요 없는 존재들.

그들은 이미 구원의 언어 안에서 살아간다.

그들에겐 나의 통찰이 불필요하다.

그것은 구원을 이미 얻은 자에게 고통을 덧씌우는 일이다.

그들의 평온을 깨트리는 것, 그것은 악마의 재능이다.


나는 그 악마성을 내 안에서 느낀다.

내 말이 세계를 해체하고,

사람들의 믿음을 깨고,

의심하게 만들고, 질문하게 만든다.


내 언어는 때로 정교한 칼날처럼 작동한다.

나는 그것을 휘두르며 묻는다.

“이 구조는 왜 이래야 하는가?”

“그 신념은 누구의 이익을 위한 것인가?”

“너의 진실은 정말 너의 것인가?”


이 칼날은 오직,

이미 부조리를 맛본 자들,

세계에 대한 환멸을 안고 살아가는 자들에게만 들이밀 수 있다.

그들은 이미 피를 봤고,

이제는 그 피를 응시할 준비가 되어 있는 자들이다.


나는 구원받은 자들을 무너뜨리려는 자가 아니다.

나는 오히려,

구원을 의심한 자들에게 새로운 해방을 보여주고 싶은 자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언제 말해야 하고, 언제 침묵해야 하는가?”

“내 통찰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나는 말해선 안 되는 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말해야만 하는 순간이 올 때,

나는 기꺼이 그 칼날을 꺼낼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진실을 피하지 못한 자들의 편에 서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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