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필 선언

by 신성규

나는 세상이 나를 이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 결론에 도달한 이유는 단순히 내가 개인적인 고독을 좋아해서가 아니다. 내 사상이 이해받으면, 그로 인한 고통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염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내 생각은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단순한 것들이 아니다. 그것은 깊은 고뇌와 혼란의 과정을 거쳐 나온 결과물이며, 그것이 누군가에게 잘못 전달된다면, 그들에게도 내가 겪은 고통을 전염시킬 위험이 있다.


내 사상은 단순히 ‘이해’를 넘어서, 사람들이 그 속에서 나의 고통을 공유하고 경험하게 만든다. 내 사상을 완전히 이해하는 순간, 그들은 그 고통을 같이 겪게 된다. 나는 이 고통을 다루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내며, 그 과정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나 그 깨달음은 단지 나의 것이지, 모든 이가 쉽게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의 사상이 널리 퍼지고, 이해받으면, 그 속에 숨어 있는 고통의 씨앗도 함께 퍼지게 된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나의 사상을 이해하는 것이 왜 위험한가? 그 이유는, 그들이 나의 고통을 단순히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함께 느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내 생각의 깊이는 그들이 이미 겪고 있는 고통과 맞물리며, 그들이 그것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그들 또한 내가 느낀 고통을 체험하게 된다. 그들이 내 사상을 통해 겪게 될 고통은 단순히 ‘고뇌’나 ‘이해’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근본적인 부조리를 깨닫고 받아들이는 것과 같은 심각한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구원을 불가는 아니여도, 아주 어렵게 만들 것이다. 모든 것을 알게 되는만큼, 구원을 강력하게 느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과정이 너무나 참혹하다.


우리는 모두 고통을 피하려 한다. 하지만 내가 이해하는 바, 고통은 결코 회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고통은 사유의 본질이다. 내가 경험한 고통을 사람들이 공유하게 되면, 그들은 그것을 자기 삶의 일부로 느끼게 될 것이다. 그들이 고통을 겪고, 그들이 내 사상을 이해하는 순간, 그들은 내 존재 속에서 경험한 것들과 일치하는 부조리의 세계를 함께 체험하게 된다.


내 사상은 나의 고통의 승화이기도 하다. 그 고통을 완전히 이해하고 승화할 수 있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것을 이해받는다는 것은, 그 고통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도 전염되어 그들이 내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나의 고통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들에게 그 고통을 전달하는 것은, 그들의 세계를 흔들어 놓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에 내 사상이 퍼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이 나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와 함께 살아가려 한다면, 그것은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들이 나를 이해하려고 한다면, 그들은 내 고통을 함께 경험하게 되고, 결국 그 고통은 전염되어 그들의 삶을 파괴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내 사상은 단순히 고통을 나누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고통을 피하려는 사람들이 어떻게 더 큰 고통에 빠져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위험한 도전이다. 내가 가진 사상은 사람들에게 고뇌와 의심을 일으키고, 그들이 본래의 세계를 해체하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도록 유도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그 과정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그들에게는 치명적인 위험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나는 내 사상을 세상과 나누지 않으려 한다. 내 재능은 악마적이다. 그들이 나를 이해하는 순간, 나는 그들의 세계를 흔들어 놓을 것이다. 그들이 나를 이해하려 하지 않도록, 그들은 내 고통을 전염받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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