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권리를 부르짖으며

by 신성규

나는 구조의 모순을 잘 파악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특성은 내 사고의 기초가 된다. 때때로, 우리가 당연시하는 것들이 실은 깊은 모순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종종 불편함을 느낀다. 예를 들어, 강아지를 중성화하는 것이 강아지에게 좋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나는 그 과정이 완전히 인간의 이익을 위한 결정일 뿐이라는 사실에 가증스러움을 느낀다.


강아지의 중성화는 분명히 인간의 생활 환경에 부합하고, 종종 강아지의 건강과 안전을 지킬 수 있다고 주장된다. 그러나 나는 이 주장이 강아지의 본성에 대한 무시에서 출발한다고 본다. 만약 이 상황을 외계인이 인간에게 강제적으로 거세를 하고 그것을 ‘가족’이라고 부른다면, 나는 그것이 기만적이고 가식적이라 느낄 것이다. 그 말이 과연 진실일까? 인간이 자신들의 이익에 맞춰 외부 존재를 조작하고, 이를 그들만의 언어로 합리화하는 방식은 언제나 불편함을 안겨준다.


이 문제를 심화시켜보면, 나는 강아지를 중성화하는 행위에서 그 본능적인 자유와 자율성이 침해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와 같은 행위가 단지 인간의 기준에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인간의 이기적인 관점이 반영되고 있다. 그러한 점에서, 인간은 강아지를 진정으로 보호하고, 존중하며 키울 자격이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곤 한다.


동물에 대한 인간의 잦은 유기나 학대는 과연 인간에게 자격이 있을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강아지, 고양이, 그리고 그 외의 동물들이 우리의 동반자로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그들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상 인간의 편의에 따라 그들의 삶을 규정하고 있다. 동물들이 인간 사회에서 “자격 있는 존재”로 살아가기에 충분한 자유를 누리고 있는지, 우리는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나는 인간의 권리와 동물의 권리가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모든 존재는 고유한 생명력과 존엄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이 인간의 필요에 맞춰 조작되거나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동물을 단순한 애완용 존재로 소비하거나, 인간의 쾌락을 위한 도구로 여기기보다는, 그들의 권리와 욕구를 존중해야 한다. 그들 역시 고통을 느끼고, 행복을 추구하는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강아지를 중성화하는 것이 인간에게 좋다 하더라도, 나는 그 과정이 강아지에게 진정으로 좋은지에 대해 계속해서 의문을 품는다. 인간이 동물을 길러내고 다루는 방식에서, 우리는 그들의 목소리를 얼마나 제대로 듣고 있을까? 우리는 그들을 보호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 건 아닌지, 우리의 생각이 그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되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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