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깊은 슬픔을 느낀다. 정확히 말하면, 의사들의 차가운 눈빛, 기계적인 언어, 그리고 철저히 관리된 거리감에서 오는 슬픔이다. 그들은 내 고통을 진단할 수는 있었지만, 공감하지는 않았다. 그 순간, 나는 ‘차라리 아파도 참고 싶다’는 감정을 느꼈다.
의사들은 왜 이렇게 차가운가? 나는 그것이 인간성과 윤리의 결핍 때문이라고만은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복되는 감정 소모와 피로 속에서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로서 그들이 감정을 차단하는 것이라 여긴다. 감정적으로 대응하기엔 그들의 하루는 너무나 길고, 환자의 고통은 너무나 무겁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들이 잃는 것, 아니 우리가 잃는 것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신뢰다.
진료실에서의 권위적 태도는 단지 의학적 전문성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다. 나는 거기서 감정의 부재, 혹은 감정의 ‘억제’를 본다. 인간적인 응시 대신, 서류를 넘기는 손끝만이 분주한 이 공간에서 나는 환자가 아닌, 문제나 사건으로 느껴졌다. 그들은 아팠던 나를 바라보지 않았다. 나의 통증은 수치화되었고, 나의 감정은 진료 시간 외 영역으로 밀려났다.
나는 의사들에게 양심이 결여되었다고 느꼈다. 아니, 그보다는 양심을 사용할 수 없을 만큼 지쳐 보였다고 말해야겠다. 현대의 의료 시스템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이유가 무엇이든, 환자인 나는 여전히 외롭다. 기계적이면서도 권위적인 그 손길이 나를 진정으로 위로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차가움 속에서 나는 그들이 얼마나 인간인지 깨닫는다. 왜냐하면, 인간은 고통을 계속 마주하면 무뎌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무뎌짐이 한 사람의 눈빛을 잃게 하고, 말을 뾰족하게 만들고, 관계를 방어적으로 구축하게 한다. 그들은 상처받지 않기 위해 냉정해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원망하면서도, 동시에 안타깝다.
그러나 나는 말하고 싶다. 환자는 감정적 연결 없이는 온전히 치유되지 않는다. 기술과 지식이 아무리 정밀해도, 그 앞에 있는 내가 존재로 느껴지지 않으면 그 치료는 절반뿐이다. 사람은 고통을 느낄 때 가장 인간이 되고, 그 고통에 응답받을 때 다시 세상과 연결된다.
아파도 참고 싶은 감정, 그것은 단순한 의지의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으로 존재하고 싶다’는 마지막 바람이자, 비인간적인 시스템 속에서 꺼지지 않은 저항이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차가운 손길을 넘어, 따뜻한 눈빛을 회복해야 한다.
의사는 다시 인간이어야 하며, 환자와의 관계는 다시 신뢰로 회복되어야 한다. 그때서야 우리는 병원이 아니라, 삶 속에서 진정한 회복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