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이라는 숫자에 담긴 숨은 인격

by 신성규

누군가는 단순한 숫자라고 넘기겠지만,

나는 닉네임을 해석의 대상으로 삼는다.

숫자 하나, 이니셜 하나에

그 사람의 취향, 과거, 은밀한 자의식이 녹아 있다는 전제를 놓고.

그것은 마치 기호로 쓰인 일기장을 훔쳐보는 일 같다.


“88”이 붙은 닉네임을 보면,

나는 먼저 피아노 건반의 수를 떠올린다.

총 88개의 건반,

고음과 저음을 모두 아우르는 그 질서 정연한 악기의 구조.

이 사람은 혹시, 피아노를 배웠을까?

혹은 음악이라는 세계에 몸을 담았던 적이 있었을까?


사람들은 무심코 숫자를 선택하지만,

그 무심함 속에서도 기억과 정체성의 잔향이 스민다.

태어난 해, 전화번호, 좋아하던 운동선수의 번호,

혹은 단지 이 숫자가 주는 시각적 대칭의 아름다움.

나는 그 힌트 하나로 그의 시간, 성격, 환경을 짐작하려 한다.


닉네임을 보는 것은 내겐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다.

그 사람의 무의식을 읽어내려는 심리적 탐험이다.

이름, 숫자, 조합 —

모두가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경계에서 흘러나온 단서들.

어쩌면 나는 언제나,

기호를 통해 인간을 읽고자 하는 암호 해독가인지도 모른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이름을 걸고 말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들이 만든 가상의 이름 속에서

더 진짜 같은 그들을 본다.

왜냐하면 그곳엔 의도적 꾸밈과 무의식적 노출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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