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코미디라면 적어도 웃을 수 있어야 한다.
어둡지만 아이러니하고, 비극적이지만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힘.
하지만 영국 드라마 블랙 미러는 내게 단 한 번의 웃음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저 냉소, 불쾌함, 그리고 인간 본성에 대한 무자비한 확대경만이 있었다.
블랙 미러는 인간이 기술로 만든 세상의 “거울”이라지만,
그 거울은 형체를 왜곡하는 조롱의 렌즈 같았다.
보는 내내, 나는 내가 비춰지고 있다는 감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그 감정은 곧 자기혐오와 혐오감으로 치닫는다.
그들은 비극을 통해 각성을 요구하지만,
그 각성은 위로가 아닌 상처를 건드리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그렇기에 나는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것은 사유의 자극이 아닌 감정의 학대처럼 느껴졌다.
블랙 미러는 늘 묻는다.
“당신도 이렇게 될 수 있어.”
“이건 당신의 이야기야.”
그 날카로운 손가락질은 종종 자기반성보다 자기비하로 흘러간다.
인간의 어둠을 보여주는 데 집중하다 보면,
그 어둠에 희망의 균열조차 허락하지 않게 된다.
그리하여 블랙 미러는 코미디가 아닌
디스토피아적 절망의 강박이 된다.
진짜 블랙 코미디는
비극 속에도 인간의 나약함과 기이함을 비틀어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자아내는 장르여야 한다.
그러나 블랙 미러는 웃기지 않는다.
그건 블랙 코미디가 아닌, 블랙만 있는 미러다.
그래서 나는 웃지 못했고, 웃지 않은 채 피로해졌다.
나는 진실을 피하지 않되,
그 진실을 조금은 너그럽게 마주할 수 있는 유머를 원했다.
그러나 블랙 미러는 웃지 않고,
오히려 내 감정을 탈진시키는 가학적인 냉소의 지옥을 보여줬다.
결국 나는 생각한다.
나는 ‘진실’이 아니라 ’회복 가능한 희망’을 원했던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