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는 느리지만 깊다.
말이 빠르지 않고, 감정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우회적인 말속엔 늘 의도가 있고,
농담조차 속뜻이 담긴 말의 예술이 된다.
우리의 농담은 무딘 칼이 아니라,
천천히 들어오는 비수다.
그래서 “웃긴데 무섭다”는 말을 듣는다.
나는 사람들과 어울릴 때 종종 농담을 한다.
그 농담들은 말장난이 아니라 은근한 진실을 담고 있다.
말끝을 올려 웃긴 척하지만, 사실은 현실을 꼬집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웃지만,
그 웃음 속에 자각이나 찔림이 섞여 있다.
때로는 여자가 내 농담에 웃고 나서
“웃긴데, 웃는 내 자신이 싫다”라고 말한다.
그 말은 내게 칼처럼 꽂힌다.
나는 단순히 유쾌한 사람이 아니라,
웃음 뒤에 묵직한 무언가를 남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순간 나는 농담이
누군가에게 즐거움이 아니라, 내적 균열을 주는 무기가 되는 건 아닐까
자문하게 된다.
농담은 감정의 실험실이다.
가벼운 말로 무거운 사실을 전달하고,
공감을 가장한 비판을 전하기도 한다.
농담의 미학은 바로 이 모호함, 이중성, 심연에 있다.
그것은 정직한 자에겐 무섭고,
눈치 빠른 자에겐 통쾌하며,
둔감한 자에겐 그냥 웃긴 말일 뿐이다.
내 농담은 나의 정체성이자,
무겁게 살지 않으려는 저항이다.
진실을 말하지만,
그 진실을 가볍게 포장해 세상과 타협하고 싶은 마음.
그러나 동시에,
나는 내가 누군가를 찌르고 있는 건 아닐까 늘 고민한다.
나는 충청도 사람으로서,
말의 무게와 농담의 그림자를 알고 있다.
그렇기에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그 웃음이 남긴 잔상과 자책을 외면하지 않는다.
농담은 나에게 가면이지만,
어쩌면 가장 정직한 내 얼굴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