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제국주의

by 신성규

대한민국은 하나의 국가이지만, ‘중심과 주변’의 위계는 분명 존재한다. 그리고 그 위계 속에서 지방은 언제나 ‘필요하되, 존중받지 못하는’ 공간으로 배치되어 왔다. 우리는 이를 마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제국주의적 식민 구조와 놀라운 유사성을 발견하게 된다.


수도권은 기획하고, 소비하고, 이윤을 축적한다. 반면 지방은 산업단지, 발전소, 물류기지, 쓰레기 매립장 등 각종 ‘필수적이지만 기피되는 시설’의 자리를 떠안는다.

이러한 배치는 단순한 공간 활용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힘의 불균형과 인식의 위계에서 비롯된다.


전기는 지방에서 만들어진다. 화력발전소, 원자력발전소, 심지어 풍력과 태양광까지 대부분 ‘비수도권’에 건설된다.

하지만 그 전기의 주요 수요처는 수도권이다. 같은 논리로, 수도권의 쓰레기는 인천 수도권매립지나 지방의 폐기물 처리장으로 향한다.

이것은 에너지는 공급하되, 책임은 지지 않는 식민지의 구조와 같다.


지방은 ‘전통’, ‘자연’, ‘관광자원’으로 포장되지만, 그 문화의 수익은 대부분 대형 자본(프랜차이즈, 미디어, 서울 기업)에게 돌아간다.

지역의 특산물은 브랜드화되지만, 브랜드는 서울에 있고, 유통망과 결정권도 서울에 있다.


정부는 ‘균형발전’을 말하지만, 정치·경제·미디어·교육의 모든 중심이 서울에 몰려 있다.

지방은 여전히 결정의 주체가 아닌, 정책의 수용자에 머무른다.

국가는 인프라 확충이 아닌 지방의 희생을 전제로 한 수도권의 효율성을 추구한다.


우리는 왜 이 식민 구조를 당연시했는가? 지방의 현실은 단지 행정구역상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누가 결정하고, 누가 따르며, 누가 소비하고, 누가 감내하는가에 대한 구조적 문제다.


과거 제국은 식민지를 통해 자원을 추출하고, 노동력을 착취하며, 문화를 재편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같은 논리를 국토 내부에서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방이 진정한 의미의 ‘자립’과 ‘주체성’을 가질 수 있으려면,

우리는 단지 개발계획이 아니라, 지방을 식민지로 만드는 인식 자체를 전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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