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천재를 오해한다.
그들은 단지 똑똑한 사람들이 아니다.
이들은 순수하다.
그들은 확신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확신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감히 접근하지 못하는
고립된 감각과 고집의 세계에서 나온다.
보통의 사람은 흐름에 반응한다. 유행에 민감하고, 여론을 읽고, 불확실성 앞에서 타협한다.
하지만 천재는 다르다. 그들은 마치 세상의 리듬을 거부하듯 행동한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외부의 설득이 아니라, 내부의 구조다.
지나칠 정도의 집요함,
반복 속에서 자신만의 질서를 찾아내는 능력,
사소한 자극에도 무너지는 감각적 예민함,
동시에 자기 세계를 신처럼 믿는 확신의 구조.
이것은 단점이 아니라, 세상과 어긋날 수밖에 없는 ‘정상 바깥의 뇌’의 강점이다.
확신은 다수가 가질 수 없다.
왜냐하면 다수는 불확실성 앞에서 질문을 멈추고, 실패의 기억 앞에서 확신을 놓아버린다.
하지만 자폐적 성향을 지닌 이들은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는다.
그건 그들의 신경구조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확신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신경학적 패턴이다.
그리고 그 패턴은 대부분의 사람에겐 결핍된 요소다.
보통 사람에게 고집은 결점이지만, 천재에겐 정체성이다.
에디슨은 전구 하나를 위해 수천 번의 실패를 반복했고,
스티브 잡스는 디자인 하나에 수개월을 쏟아부었다.
이들이 가진 것은 노력이 아니라, 세상의 흐름을 무시하고도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강박적 확신이었다.
이러한 확신은 자폐적 경향의 정중앙에 있다.
이들은 ‘이게 맞다’는 자기만의 신호를 외부로부터가 아닌, 내면의 회로에서 감지한다.
그러나 그 회로는 대개 단순하고 반복적이며, 매우 고립된 구조를 따른다.
많은 사람들은 말한다.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포기하지 않음은 선택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포기라는 회로 자체가 없다.
이들은 때때로 융통성이 없고, 타인의 반응을 감지하지 못하며, 실패를 실패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하지만 그 특성은
시장에서 미친 듯이 실패하며도 도전을 멈추지 않는 기업가에게,
몇십 년간 한 이론만을 파는 과학자에게,
한 음 하나를 위해 수년을 보내는 예술가에게
창조의 기반이 된다.
이건 노력의 개념을 무력화한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노력이 아니라 중단하지 않는 구조다.
그러므로 이들은 더 이상 노력의 천재가 아니라, 운명의 구조체다.
그들이 자폐적 확신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오늘의 인터넷이 있고,
오늘의 우주 망원경이 있으며,
오늘의 예술이 있다.
이 세계는 군중의 작품이 아니라
고립된 천재의 통로를 통해 걸어왔다.
자폐의 고요한 확신,
그것이야말로 가장 깊은 고통과 가장 찬란한 창조의 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