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신병’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딘가 부서지고, 왜곡되고, 치유가 필요한 상태를 떠올린다.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정신병은 부서진 것이 아니라,
표현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그 표현이 불가능할 때, 인간은 병이 된다.
그 병은 말을 원하지 않는다.
말보다 더 오래된 언어,
그림, 소리, 선, 파열, 고요, 울림 같은 것들을 원한다.
심리 상담은 많은 사람에게 필요하고 유용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심연을 말할 수 없다.
상담은 ‘논리’와 ‘이해’의 언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많은 고통은 논리가 아닌 감정과 무의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
말은 때때로 우리를 구하지만, 더 자주 우리를 감춘다.
자신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중요하다.
하지만 진짜 자신을 마주하는 순간은 대부분 말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그 침묵 속에서, 우리는
그림을 그리고,
악기를 울리고,
소리를 터뜨리고,
몸을 흔든다.
정신병은 자아가 스스로를 밀어내는 방식이다.
그것은 나를 파괴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를 다시 찾고자 하는 본능일지도 모른다.
병은 비정상적인 고통이 아니라, 표현되지 않은 정서다.
예술은 그 정서의 미분화된 실체를 다룬다.
그리기, 소리내기, 조형하기는 말 이전의 언어, 몸과 감정의 말이다.
예술은 심연을 끌어낸다.
그러나 그것을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 심연에 거처를 마련하는 일이다.
예술은 무의식의 유일한 말이다.
병은 종종 인간의 가장 어두운 구역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그 어두움이 반드시 악은 아니다.
그건 감춰진 자아이고, 억눌린 감정이고,
세상의 언어로는 도저히 말할 수 없던 무엇이다.
예술은 말하지 않으면서도, 말한다.
눈빛 없는 그림 속 선들.
소리로 쏟아진 분노와 애도.
무조로 흐트러진 음과 음 사이.
형체 없는 조각들에 맺힌 고통의 모양.
그 모든 것이 인간의 정신 구조를 다시 엮어낸다.
말은 치유할 수 없는 순간에도,
소리는 울릴 수 있고, 색은 감쌀 수 있다.
우리는 너무 자주 정신을 고쳐야 할 기계처럼 다룬다.
하지만 인간의 정신은 고장난 게 아니라,
표현되지 않았던 것,
살아내지 못했던 것,
존재할 기회를 갖지 못했던 것이다.
상담은 정신의 경로를 안내한다.
그러나 예술은 정신의 형태 자체를 복원한다.
치료란 말보다 더 깊은, 존재의 회복.
예술은 치료가 아니라 존재의 회복이다.
어쩌면 정신병은,
이 세상에서 단 한 사람만이 들을 수 있는
내면의 예술가의 절규일지도 모른다.
그 절규는 말로 번역되지 않는다.
하지만 색으로, 선으로, 울림으로, 몸짓으로 나타난다.
그때 인간은 병이 아니라, 표현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상담은 나를 돌아보게 하고,
예술은 내가 되어보게 한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인간은 말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갖는다.
그 희망의 언어가 바로 예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