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글쓰기 방법론에 대한 회의

by 신성규

무라카미 하루키는 말한다.

“나는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시간에 글을 쓰고, 같은 시간에 달린다.”

그에게 습관은 글을 써내는 동력이자, 글쓰기 자체를 일종의 육체적 노동으로 만든다.

그는 그렇게 수십 년을 써왔다.

그리고 우리도 안다.

그는 좋은 작가다.


그러나 나는 말하고 싶다.

그는 위대한 작가는 아니다.


왜냐하면 위대한 예술은,

질서를 부수는 데서 나온다.

지나치게 반복된 리듬은 결국 사고의 파동을 잠재운다.

그 속에서 나오는 문장들은 아름다울 수는 있으나,

경이롭거나 파괴적이지는 않다.


예술가들은 작업이 막히면 여행을 떠난다.

타인의 언어가 들리는 거리, 익숙하지 않은 빛의 각도,

예측할 수 없는 음식 냄새들.

그 낯섦은 습관이 길들인 무의식을 깨운다.

그리고 바로 그 깨진 틈으로 새로운 상상력이 흘러들어온다.


하루키는 그 틈을 피한다.

그는 도망가지 않는다.

그는 도망을 금지한다.

그는 작가가 아니라 ‘작업자’가 된다.

자신의 글쓰기를 시스템화함으로써,

글이라는 생명을 공정으로 만든다.


나는 그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창의성은 시스템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파열의 순간,

자신이 구축한 질서가 더 이상 효용을 갖지 못하는 균열 속에서 태어난다.


하루키는 여전히 쓰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그를 읽는다.

그러나 나는 그를 통해

‘좋은 글’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배웠지만,

‘위대한 글’이 무엇인지에 대한 실마리는 얻지 못했다.


그의 글은 달리기의 리듬처럼 일정하고,

생산성의 윤리로 무장되어 있다.

그러나 예술은

때로는 멈추고, 때로는 방황하고, 때로는 미쳐야 한다.


습관은 생존을 낳지만,

예술은 파괴를 통과한 생생한 혼란 속에서 태어난다.

그래서 위대한 예술가는 가끔,

작업실이 아닌 길 위에 있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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