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다판에서의 철학

by 신성규

나는 민주주의를 배웠다.

헌법 책에서, 시민교육 시간에, 광장의 외침 속에서.

하지만 그것이 피부에 와닿은 적은 별로 없었다.

민주주의는 나에게 너무 형식적이었고, 때로는 너무 이상적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노가다판,

그 땀 냄새 나고 욕설이 섞인, 거친 노동의 현장에서야말로

민주주의가 가장 현실적으로 구현되는 곳이라는 이상한 확신을 품게 되었다.


노가다판에선

누구든 조끼 하나, 헬멧 하나, 장갑 한 켤레면 동등해진다.

모든 건 철근 위에서 무의미하다.


그곳은

‘일을 할 수 있는가’

‘함께 버틸 수 있는가’

이 단 두 가지 질문만으로 인간을 평가한다.


여기에는 정치적 이상이 아니라 생존의 평등이 있다.

하루하루를 함께 견디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보내는 무언의 존중.

나는 그 속에서 책에서 배우지 못한 민주주의의 냄새를 맡았다.

몸의 평등, 땀의 평등, 욕설의 평등.


노가다판의 대화는 짧고 투박하다.

“거기 아니야, 더 옆으로.”

“야 조심해, 떨어진다.”


그 말들은 시처럼 아름답지 않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인간다움의 본질을 본다.

진심 없는 칭찬, 과장된 연설보다 훨씬 따뜻한 윤리.

책임이 먼저고, 말은 나중이다.

이 얼마나 정확한 인간의 순서인가.


사무실의 세계에선 위계가 권력을 만든다.

직급, 직함, 연차.

하지만 노가다판에서는 위험이 존엄을 만든다.


고소작업을 맡은 사람, 크레인 옆에서 손발 맞추는 사람,

무게중심을 계산하며 철근을 끼우는 사람.

그들은 말없이 현장을 지배한다.

그들의 손짓 하나에 수십 명이 움직이고,

그들의 실수 하나가 모두의 생명을 위협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에게 경의를 보낸다.

이해받기 전에, 견뎌낸 자들이기 때문이다.


노가다판에서는 ‘이미지’가 통하지 않는다.

거기선 멋진 말도, 멋진 옷도, 포트폴리오도 의미가 없다.

결국 몸이 말하고, 몸이 증명한다.


허리통증을 참고 철근을 끌어당기는 중년,

구릿빛 피부로 작업지시를 이해하는 이주노동자,

묵묵히 덤프트럭을 몰다 끝나는 하루.

그 하루의 축적은 진짜 이력서다.

나는 그 몸의 기록 속에서 존재의 존엄을 본다.

말이 아닌 몸으로 살아낸다는 것.

그것은 말로 살아가는 우리보다 더 진실한 인간의 형상이다.


도시는 말이 많다.

회의, 기사, 해시태그, 프레젠테이션, 광고, 공약.

우리는 말에 취하고, 말로 서로를 속인다.

그러나 노가다판엔 말보다 빠른 행동, 눈빛으로 전해지는 직감,

피부로 읽는 날씨, 손끝으로 가늠하는 위험이 있다.


우리가 문명이라 부르는 것의 밑바닥에는

이러한 몸의 세계, 감각의 윤리, 묵언의 연대가 깔려 있다.

우리는 그것을 잊었고,

그들은 그것을 살아낸다.


노가다판은 단지 ‘힘든 일자리’가 아니다.

그곳은 우리가 추상화한 모든 정치 개념의 최후의 현장,

민주주의의 실험실, 인류다움의 마지막 성소다.


나는 거기서 진짜 인간을 본다.

약하고 거칠고, 고단하지만

서로를 밀어주고 버텨주는,

가장 원시적이고, 가장 고귀한 인간.


그래서 나는 말한다.

노가다판은 민주주의에 가장 맞는 곳이다.

노가다판에서야말로

나는 가장 인간답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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