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섹스에 중독되었었나.
이 질문은 단지 성욕의 문제나 쾌락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살아온 감정의 뿌리, 나의 결핍과 분노, 사랑과 도덕에 대한 왜곡된 맹신을 향해 나를 끌어당기는 질문이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도덕에 집착하는 아이였다.
그것은 천성이라기보다, 부모로부터의 반작용이었다.
나의 부모는 도덕적 부부생활을 하지 않았다.
그들의 세계는 불안정했고, 감정은 일방적이었고, 침묵은 균열을 가리고 있었다.
나는 무언의 약속처럼 스스로를 도덕의 감시자로 만들었다.
감정에 휩쓸리지 않으려 애썼고, 이성에게 가볍게 행동하는 것을 혐오했다.
나를 유혹하려던 여자들은 나를 보며 “게이가 아니냐”고 말하곤 했다.
나는 내 감정을 억눌렀고, 감정은 무의식 속으로 숨어들었다.
그러던 중, 내가 마음을 주었던 여자가 어느 날, 내가 생각한 ‘도덕성’의 선을 넘는 행동을 했다.
그 순간, 내 안의 세계는 뒤집혔다.
모든 여자를 성녀와 창녀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가 내 안에서 무섭게 자라났고, 나는 분노와 실망을 ‘성’이라는 통로로 분출하기 시작했다.
나는 여자를 사랑하는 게 아니었다.
나는 여자를 통해 ‘배신’에 대한 보복을 하고 있었다.
섹스는 나에게 위로가 아니라, 복수였다.
욕망은 쾌락이 아니라 분노의 도구였다.
그리고 그 분노는 점점 커졌고, 충족은 없었다.
어느새 나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욕망에 내몰리고 있었다.
섹스는 더 이상 쾌락이 아니었다.
그것은 감정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습관이 되었고, 존재의 빈틈을 순간적으로 가리는 연기처럼 흩어졌다.
끝없이 깊어지는 결핍만이 남았다.
나는 인간관계에서 따뜻함을 느끼지 못했고, 감정은 점점 메말라갔다.
내가 사랑하고 싶었던 것은 사실 ‘사랑’이 아니라, ‘무너진 내 질서’를 회복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나는 고장난 자기 보상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고, 그 보상 시스템은 ‘섹스’를 통해 나를 속이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문득 깨달았다.
이 고통은 나의 잘못이 아니라, 나의 무의식이 보낸 구조적 신호였다.
도파민, 쾌락, 회피, 보복, 결벽, 결핍—이 모든 단어들이 내 삶의 언어가 되어버렸다는 걸.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내 마음을 정상화하자.
지옥같은 시간이었다.
고통, 허기, 공허, 무력감—그 모든 감정을 한꺼번에 끌어안고, 나는 하루하루를 버텼다.
모든 중독을 끊는 일은, 단지 습관을 끊는 게 아니라 나를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는 일이었다.
나는 아직도 회복 중이다.
그러나 더 이상 나는 분노로 여자를 바라보지 않는다.
그녀들도 나처럼 상처받았고, 나처럼 혼란스러웠던 인간이었다.
나는 여성을, 나 자신을, 그리고 감정을 다시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
이 길은 느리다.
그러나 진짜 나를 찾는 길이다.
중독은 내게서 무언가를 빼앗아갔지만, 그 잿더미 속에서 나는 무너져야 보이는 진실들을 마주했다.
지금 나는, 욕망의 얼굴을 더 이상 외면하지 않는다.
그 얼굴 속에는, 나의 외로움과 진실과 회복의 가능성이 담겨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