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지능이 높다’는 것을 긍정적으로만 받아들인다. 시험 점수가 높고, 문제를 빠르게 풀고, 남들보다 먼저 생각하고 움직이는 사람들. 하지만 고지능자는 그저 문제를 잘 푸는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세계에 대한 통합적 인식이 빠르고, 주변 자극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며, 끊임없이 ‘왜?’를 묻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 민감함은 축복인 동시에 저주다. 주변 자극에 민감하다는 것은 곧 감각과 신경이 과도하게 활성화된다는 뜻이고, 이것은 교감신경의 만성적 긴장을 의미한다. 고지능자 중 상당수는 불안장애, 우울증, 자폐 스펙트럼, 소화불량, 신경성 두통, 면역계 질환을 겪는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스트레스를 피하려 해도, 뇌가 외부 정보를 놓치지 않고 자동으로 처리하는 구조 탓에 끊임없이 에너지를 소모한다.
반면 지능이 낮을 수록, 생각이 단순하고 자극에 덜 민감하다. 예를 들어, 어떤 저지능자는 유행하는 옷을 입는 것이 타인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다는 단순한 사고로 행동한다. 그러나 고지능자는 “왜 유행을 따라야 하지?”, “진정한 자아 표현이란 뭘까?“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먼저 던진다. 끊임없는 질문, 끝없는 의문, 이것이 고지능자의 삶이다.
이들은 또한 욕구가 제한적이다. 더 많이 먹고, 더 높이 올라가고, 더 큰 부를 쌓고자 하는 사회적 욕망에는 무감각하지만, 대신 ‘지적 욕구’가 지배한다. 이 지적 욕구는 물리학, 철학, 수학, 심리학, 기계, 언어, 구조적 원리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심으로 나타난다.
흥미로운 점은, 멘사 회원들의 직업군을 살펴보면 평범한 사람들과 별 차이가 없다. 의사, 교수, 농부, 정비사, 주부, 직장인 등 다양하다. 그들을 하나로 묶는 것은 단 하나, 지적 활동을 향한 갈망과 기쁨이다. 세상을 바꾸려 하기보다는, 그저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어 한다. 세상이 바뀌는 것은 이해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이다.
대중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지능이 높다면 빌 게이츠나 일론 머스크처럼 되어야지.”
이는 지능과 성취를 동일시하는 오류다. 고지능자는 반드시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법도 없고, 유명인이 되어야 할 의무도 없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단 하나, 지적 자유와 몰입할 수 있는 세계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진실을 마주해야 한다. 고지능은 축복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조건이자 감내해야 하는 환경이며, 사회와의 불협화음을 전제로 한 구조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더 높은 지위도, 더 많은 재산도 아니다. 그저, ‘왜’라고 묻는 질문을 멈추지 않을 자유, 그것이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