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이 말한다. 요즘 시대는 언어 이해력, 눈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중요하다고. 수리 사고력, 논리적 추론력보다는 말 잘하고 분위기 잘 읽는 능력이 실질적으로 더 유리하다고. 그 말은 부분적으로 사실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그렇다면 왜 여전히 수학은 공교육에서 상대평가를 유지하고, 영어는 절대평가로 전환되었을까?
공교육은 우리 사회가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역량의 기준을 가장 명확하게 반영한다. 영어는 이제 모든 학생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충분하다고 본다. 반면 수학은 여전히 상대적인 사고력의 우위를 가르는 기준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유는 분명하다. 반도체, 로봇, AI, 기계, 자동차 — 우리 사회가 국가경쟁력이라 부르는 모든 영역은 여전히, 아니 점점 더, 수리적 추론력과 논리력 기반 사고를 필요로 한다.
게다가 이공계가 아니어도 마찬가지다. 비즈니스의 중심은 이제 감각보다는 데이터 분석으로 이동했다. 의사결정은 엑셀 시트 위에서 이루어지고, 트렌드 파악은 빅데이터 기반의 통계 분석을 요구한다. 그걸 뒷받침하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논리적 구조화 능력, 수리적 사고력이다. 이제는 아이큐가 필요 없는 시대가 아니라, 오히려 보이지 않게 아이큐가 작동하는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그런데 사회는 눈치를 더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왜냐하면 조직은 종종 이성적 판단이 아닌 감정적 위계질서로 굴러가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고지능자들이 정말 눈치가 없는 걸까, 아니면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사실 많은 고지능자는 타인의 감정을 못 읽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의 표면 이면까지 읽어버려서 굳이 맞춰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즉, 상사의 권위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권위가 합리적이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기계적으로 순응하지 않는 것이다.
당연히 관리자 입장에서는 내 뜻을 빠르게 눈치채고, 아무 말 안 해도 술잔을 채우고, 맞장구를 잘 치는 부하직원이 더 편하다. 하지만 여기서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그런 직원이 회사의 이익을 위한 최선인가, 아니면 관리자의 사적 이익을 위한 최선인가?
지금 우리 사회는 ‘편한 사람’이 좋은 사람으로 간주되는 조직 문화에 물들어 있다. 그러다 보니 진짜 효율과 성과를 내는 인재는 조직의 마찰자가 되고, 눈치껏 행동하고 말을 아끼는 사람이 평가받는 이상한 구조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더 생각해봐야 한다. 지금의 교육제도와 인사문화는 진정한 집단지성의 극대화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몇몇의 기득권에게 더 편리한 집단을 만들기 위한 것인지. 진짜 필요한 건 눈치가 아닌, 판단력 있는 지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