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와의 거리

by 신성규

나는 뻔한 이야기를 보면 결말을 거의 항상 예상할 수 있다. 놀랍도록 정확하게. 몇 장면만 보면 결론이 보이고, 갈등이 어떻게 봉합될지도 떠오른다. 이야기가 아니라 패턴으로 읽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감동적이었다”고 말하는 순간, 나는 생각한다.

“이 구조는 이미 수십 년 전에 존재했다.”

내가 보는 건 이야기의 뼈대, 서사의 톱니바퀴, 장면 간의 연결 고리다. 감동의 물결이 일기 전에, 그 흐름을 먼저 읽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감동받는 드라마나 영화가, 내게는 감정이 닿지 않는 텍스트로 남는다. 그건 내가 차가워서가 아니다. 감정을 느끼기 전에, 구조를 자각해버리는 특성 때문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감동’이란, 사실 대부분 ‘예상된 틀 안에서의 안정감’이다. 그러나 내게 그 틀은 너무 빨리 보이고, 감동이 아닌 지적 예측 게임으로 변한다. 이야기는 더 이상 놀라움이 아닌, 지루한 수학 문제처럼 느껴진다.


이것은 흔히 겪는 서사와의 거리다. 이야기의 감정보다, 구조와 메커니즘을 먼저 본다. 그래서 소위 ‘잘 짜인 이야기’가 오히려 몰입을 방해하는 장치가 된다.


하지만 이건 단순히 지루함 때문이 아니다. 이야기 자체를 혐오하는 게 아니다. 다만 예측할 수 없는 이야기, 구조를 뒤트는 이야기, 그런 텍스트 속에서만 감정이 진짜로 움직인다. 놀라움이 있어야, 몰입이 일어나고, 몰입이 있어야 진짜 감동이 온다. 예컨대 프란츠 카프카의 부조리, 보르헤스의 메타적 구조, 빌런조차 논리적으로 완성된 서사. 그런 이야기들 속에서야 비로소 몰입이라는 감각을 다시 발견한다.


‘무엇이 일어날지’보다, ‘왜 이렇게 썼는지’를 먼저 파악하는데 모든 것이 보일 때, 감정은 멈춘다. 감동은 흘러가지 않고, 분석이 시작된다. 이야기를 해체하는 시선. 몰입의 대상이 아니라, 읽히는 텍스트로써 이야기와 마주한다.


이것은 단순한 냉소가 아니다. 이야기와의 거리는, 지능의 거리이기도 하다. ‘서사’ 자체보다 ‘구조’에 관심을 두고, 사건보다 ‘전개 방식’을 본다. 그것은 지루함이라기보다는, 구조에 대한 과도한 자각이다. 세상의 메커니즘이 보이면, 더 이상 그 안에서 감정을 휘둘릴 수 없다.


진짜 서사는 지능의 영역이 아니라, ‘창발성’의 영역이다. 모든 플롯이 예상 가능한 사회에서, 예측 불가능한 서사만이 유일한 자극이 된다. 그래서 흔한 영화보다, 인문학적 담론이나 추상적인 사고 속에서 감동을 받는다. 사유 자체가 서사이고, 삶 자체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단지 ‘볼거리’가 아니라, 이해를 거부하는 세계를 해석하려는 시도여야 한다. 그래야만 감정이 다시 움직이고, 몰입이 다시 가능해진다. 예측할 수 없는 세계가, 가장 인간적인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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