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능자들은 일상에서 충족되지 않는 지적 갈증을 안고 살아간다. 사회는 복잡한 듯 단순하고, 인간은 정교한 듯 예측 가능하다. 그들에게 일상은 사고의 확장을 허용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대화는 맥락 없는 감정적 교환이고, 일의 대부분은 반복적이거나 어리석음의 수정이다. 이 지적 외로움 속에서, 보드게임은 그들에게 작은 우주가 된다.
보드게임이 제공하는 첫 번째 가치는 ‘질서 있는 혼돈’이다. 정해진 규칙 속에서 무한히 펼쳐지는 경우의 수, 변수를 읽고 통제하는 전략, 그리고 상대의 심리를 예측하며 스스로의 전략을 조정하는 과정. 그 모든 것은 단순한 오락이 아닌, 지능의 운동장이다.
고지능자에게는 이 구조가 매혹적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평소에도 끊임없이 “왜?”, “어떻게?“를 묻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보드게임은 그런 질문을 던질 수 있는, 허용된 유일한 공간이다. 이기기 위해 질문하고, 실수를 통해 사고하고, 규칙 속에서 자유를 느낀다. 제한된 룰은 창의력의 출발점이고, 불완전한 정보는 추론의 연료다. 보드게임이 고지능자에게 ‘지적 충족’이 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더불어, 보드게임은 사회적 에너지의 소모 없이도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독특한 채널이다. 잡담 없이도 교감할 수 있고, 감정 없이도 긴장감을 나눌 수 있다. 고지능자들이 흔히 겪는 사회적 피로는, 규칙이라는 안전장치 안에서 줄어든다. 오히려 규칙이라는 정해진 문법이 있기에, 그들은 그 안에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
현실은 늘 비논리와 비효율이 이기는 곳이다. 하지만 보드게임은 다르다. 공정한 시작, 동일한 룰, 지능과 전략이 좌우하는 결과. 고지능자들은 이 공정한 세계에서, 비로소 스스로의 역량을 시험할 수 있다. 사회에서는 오해받고 지나치게 복잡하다는 이유로 밀려나지만, 게임은 그 복잡함을 ‘능력’으로 환영한다.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지능의 시대를 지나 기계의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면, 인간은 그 깊이를 되찾아야 한다. 기계가 규칙을 이해하고 전략을 계산한다면, 인간은 ‘왜 이기는가’, ‘왜 함께하는가’, ‘어떤 세계를 만들 것인가’를 묻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 시작은, 어쩌면 작고 단순한 게임에서 비롯될 수 있다. 그곳은 질서 있는 혼돈이고, 고지능자에게는 세상을 다시 짜보는 미니어처다. 보드 위의 사고 실험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그것은 깊이 있는 삶의 예행연습이자, 잊힌 인간다움의 되찾기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