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마르크스가 ’경제학-철학 수고‘에서 묘사한 인간은 노동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그 노동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자기실현이 아니라,
자기소외의 구조 속에 있었다.
인간은 자신의 노동물에서 멀어지고,
노동 그 자체에서,
그리고 함께 노동하는 동료들로부터도
분리된다.
마르크스는 묻는다.
“노동은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가?”
그리고 그는 대답한다.
아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노동은 인간을 억압한다.
오늘날 우리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노동을 수행한다.
땀 흘리는 공장의 노동자보다,
노트북 앞에서 프로젝트를 조율하고,
커뮤니케이션 툴로 상사의 지시를 실시간으로 받는다.
하지만 이 디지털 노동,
지식노동,
플랫폼 노동의 새로운 형태 속에서도
마르크스의 통찰은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더 이상 노동시간을 계산할 수 없다.
스마트폰은 퇴근 후에도 나를 조직에 연결시킨다.
프리랜서는 스스로 고용주이자 피고용인이다.
업무는 창의적이지만, 결과는 여전히 타인의 수익이다.
이 구조는 외면상 자율적이지만,
실제로는 더 고도화된 통제를 내포한다.
마르크스가 말한 ‘노동의 소외’는
공장에서의 반복 작업이 아니라,
지속적인 성과 압박, 자기계발의 강요, 스스로를 셀링해야 하는 개인 브랜딩 속에서 더 심화된다.
마르크스는 말했다.
“노동은 인간이 자연과 세계에 흔적을 남기며 자신을 실현하는 행위다.”
하지만 자본주의 노동은 오히려 인간을
‘수단’으로 전락시킨다.
사람은 더 이상 목적을 갖는 주체가 아니라,
성과를 위한 도구다.
실적은 곧 존재의 가치가 되고,
평가는 곧 자아의 등급이 된다.
직장 안에서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측정되고, 등급 매겨지고, 대체 가능하다.
이 모든 속성은 인간의 존엄성을 침식시킨다.
마르크스는 혁명을 요구했다.
생산수단의 공유,
노동의 주체화를 통해
노동이 억압이 아니라 자기실현의 장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오늘날, 이 혁명은 다양한 방식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협동조합과 같은 자율적 생산 공동체
기본 소득을 통한 생존과 분리된 노동
디지털 노마드와 로컬 제작자 운동
크리에이터 이코노미의 자기주도적 생산
이러한 실험들은 자본의 질서 밖에서
노동의 새로운 윤리를 모색한다.
하지만 그 또한 언제나 시장에 포섭될 위험을 안고 있다.
자유로운 콘텐츠 제작자도
조회수와 알고리즘의 노예가 되기 쉽다.
노동은 억압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억압이 ‘노동’ 그 자체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그 억압은 노동을 도구화한 시스템에서 비롯된다.
즉, 마르크스의 말처럼 문제는 ‘노동’이 아니라,
노동을 소외시키는 구조에 있다.
따라서 노동이 해방이 되려면,
그것은 자기를 실현하는 공간,
세계에 의미를 남기는 행위,
공동체를 향한 기여가 되어야 한다.
그때에야 비로소
노동은 자본의 지시에 복무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근원적 표현이 될 수 있다.
마르크스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당신은 당신의 노동 속에 살고 있는가?”
아니면,
“당신의 노동은 다른 누군가의 삶을 위해 존재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