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트르가 말하는 자유

by 신성규

“나는 나를 선택한다.”

사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고 선언하며, 인간 존재의 근본을 ‘자유로운 선택’에 두었다.

그러나 이 자유는 단순한 ‘하고 싶은 대로’의 방종이 아니다.

사실, 사르트르의 자유는 무거운 짐이며, 끝없는 책임이다.


오늘, 우리는 무한한 선택의 시대에 산다.

직장, 연애, 소비, 정치, 온라인에서의 아이덴티티까지, 수많은 선택지가 넘쳐난다.

그러나 그 선택은 때로 ‘자유’가 아니라 ‘강요’가 되기도 한다.

어떤 선택이든 해야만 하고, 하지 않는 것은 선택을 포기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자유’는 이렇게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무한 책임의 굴레가 된다.


사르트르는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자유로워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즉, 우리 모두는 본질적 ‘운명’이나 ‘조건’에 묶여 있지만, 그 안에서 스스로를 규정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 자유가 ‘타인의 시선’과 끊임없이 충돌한다는 점이다.

사르트르가 유명하게 말한 “지옥은 타인이다”는 바로 이 지점에서 나온다.


직장 상사의 기대, 가족의 시선, SNS의 평가, 사회적 규범—

이 모두가 우리의 선택과 자유를 억압하고 제한하는 ‘타인의 시선’이다.

자유는 ‘내 안’에 있지만, 그 자유를 행사하는 순간 ‘외부’의 시선과 판단을 피해갈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자유롭다고 느끼기보다, 오히려 ‘자유롭지 못한’ 존재처럼 스스로를 감시하고 통제한다.


사르트르의 철학은 현대인의 불안과 우울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무한한 자유 속에서 ‘나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끊임없는 불안을 낳고,

‘타인의 시선’은 선택의 순간마다 우리를 옥죄며 자기기만과 회피를 부추긴다.


더욱이, 사회 시스템은 이 자유를 이용한다.

“네가 자유롭게 선택했으니 책임져라.”라는 말은 개인에게 모든 부담을 떠넘기고,

사회적 불평등과 구조적 억압은 ‘자유’라는 이름 아래 가려진다.

사실상 우리는 구조적 제약 속에서 자유의 환상에 갇혀 있는 셈이다.


하지만 사르트르가 말한 진정한 자유란 ‘나를 창조하는 행위’이다.

과거의 조건, 타인의 기대, 사회적 규범에 끌려다니지 않고,

그 모든 것을 넘어선 ‘자기 책임’의 선택을 통해 비로소 주체가 되는 것.

그 자유는 고통스럽고, 때론 고독하지만, 동시에 진정한 존재의 의미다.


이렇듯,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자유는 ‘선택의 풍요’와 ‘책임의 무게’가 교차하는 지점이다.

우리는 진정 자유로운가?

아니면 자유를 선택의 부담으로 오해하며,

타인의 시선에 길들여진 ‘자유 없는 자유’를 살고 있는가?


사르트르가 묻는다.

“너는 너의 자유를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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