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시
*쌀람 : 아랍어로 안녕이라는 의미
쨍한 태양이 눈부신 날씨에, 이슬람 국립 모스크에 도착했다. 햇빛에 반짝이는 하얀색 사원이 눈을 더 부시게 만들었다. 우리는 사원에서 나눠준 보라색 천을 두르고 모스크 안으로 들어갔다. 이런 천을 히잡(Hijab)이라고 부르는데, 몸을 얼마나 가리느냐에 따라 종류와 명칭이 다양하다. 가리개를 통칭해 보통 히잡(Hijab)으로 부른다.
우리가 입은 옷은 몸을 다 덮는 보라색 히잡이었다. 꽉 쪼매지는 않아서 가리개라기보다는 오히려 망토를 걸친 느낌이었는데, 일상적으로 이 천을 착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떨지 모르겠다. 히잡을 쓰고 있어도 예상만큼 덥지 않다는 점은 의외였다. 사원 내부가 시원해서 그런 걸까?
히잡에 대해 생각이 꼬리를 물던 중, 여행에서 스쳐가며 본 무슬림 여성 대부분이 히잡을 두르고 있던 게 떠올랐다. 어떤 사람은 상반신에만 스카프처럼 두르는 화려한 히잡을, 또 다른 사람은 몸을 전부 가리는 검은색 히잡을 입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히잡을 두른 여성을 처음 봤을 때 나도 모르게 빤히 쳐다보는 실수를 했구나. 나와 다르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런 눈빛으로 쳐다봤는데, 강한 이질감이 낳은 결례라는 걸 깨닫고 부끄러워졌다.
사실 나는 히잡을 쓰면 더운지 안 더운지, 가벼운지 아니면 답답한지, 아무것도 모른다. 인생에서 히잡을 둘러본 경험은 고작 이번 모스크 방문에서가 처음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당연히 내 의복은 정상이고 히잡은 비정상이라 규정하며 살았다.
‘어쩌면 이 모스크가 하얗고 투명한 건 내 마음을 비춰보라는 뜻일지도 몰라.’
나는 투명한 모스크에서, 무언가를 향해 이상하다고 가리키는 손끝을 스스로에게 돌려봤다. 모시, 네가 히잡을 이상하다고 바라봤던 시선 뒤에는 무엇이 숨겨져 있었느냐고.
이 질문에 대해 내가 얻은 교훈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바로 ‘나부터 잘하자’ 다. 나는 히잡을 두른다는 걸 성차별의 동의어로 해석했고, 그래서 이슬람 문화는 후진적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런 간편하고 쉬운 판단은 더 나은 질문을 가로막았다. 예컨대 ‘히잡을 두르는 게 성차별이면, 히잡을 벗으면 성평등이 이뤄지는 건가?’ 혹은 ‘그렇다면 히잡을 두르지 않는 사회는 이슬람권 사회보다 더 성평등 하다고 말할 수 있나?’ 같은 질문이다. 나는 ‘무조건 히잡은 이상하다’는 전제에 휩싸여 그동안 다른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익숙한 세상에만 초점을 맞추느라, 자신과 사회를 성찰하는 방법을 잠시 잊어버렸다.
생각이 게으른 사람은 으레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타인을 깎아내림으로써 자기만족을 하는 법이다. 날카로운 척 하지만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용적이며 무딘 사람, 혹시 내가 그런 사람은 아니었을까 조금 시무룩해졌다.
그래도 정신승리를 하자면 아직 여행 이틀 차다. 첫째 날 내가 쳐다봤던 무슬림 여성에게 “너나 잘해!”라는 한 소리를 듣지 않은 게 어디인가. 그래, 이제부터 잘하자. 나를 돌아보게 해 준 모스크가 고마웠다.
한적한 자리가 마련해준 여유 덕에 생각을 채울 수 있었던 이슬람 국립 모스크를 지나, 역사 창고인 이슬람 예술 박물관에 왔다. 이곳은 기록 사료뿐만 아니라 의복과 건물 모형에 이르기까지 전시물이 다양해, 이슬람에 대해 입체적으로 배우기 좋다.
처음으로 들어간 관은 이슬람 의학 전시실이다. 아랍어로 쓰인 오래된 의학서들이 전시실에 있었다. 이 책들을 해석할 때 마치 보물 상자를 여는 것 같은 쾌감을 느꼈다. 아는 글자가 하나도 없어 보자마자 내용을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영어로 풀이된 설명을 더듬더듬 읽다 보면 책에 담긴 지식의 깊이가 확 느껴졌다. 의학적 지식을 열과 행으로 가지런히 정리한 책을 봤을 땐 육성으로 감탄이 절로 나왔다. ‘미디어를 통해서 본 건 이슬람 문화의 단편이구나’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어떤 전시실에는 이슬람 경전인 코란이 여러 권 있었는데, 유통된 연도와 크기가 전부 다른 코란이었다. 그동안 한국에 살면서 성경이나 불교 경전만 접했기에 코란 실물이 너무 신기했다. 여행이란 새로운 환경에 스스로를 던져놓는 것이라면, 나에게 코란을 보는 건 그 자체만으로 여행이었다. 또, 어떤 전시장에는 전 세계 곳곳에 있다는 모스크가 모형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이슬람권이 아무리 넓다고 배워봤자 기독교나 불교 건축만 답사했으니 이렇게 다양한 모스크가 3D로 툭 튀어나오는 게 낯설 따름이었다. 세계사 교과서에 온갖 사진이 있지만 사진보다 모형이 더 와 닿았고, 모형보단 당연히 실물이 기대된다. 언젠가 전 세계의 모스크를 찾아 여행을 떠나고 싶어 졌다.
친구들과 놀러 온 여행에서 조금은 진지한 경험을 하게 됐다. ‘이슬람’ 하면 떠올랐던 이미지에 여러 가지 색이 칠해지고 있었다. 낯설기만 했던 이슬람에서, 사람과 문화가 살아 움직이는 생동감을 느꼈다. 모스크와 박물관을 방문하면서, 이슬람을 향해 새로운 감각 하나가 틔워졌다.
박물관에서 나오는 길,
아쉬움에 천장을 올려다봤는데
박물관 천장이 너무 예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