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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소호 Aug 09. 2019

너네 집 불났어

40살의 건망증과 윗집 여자

'너네 집 불났어!'

얼이 반쯤 빠져 우리 집 골목으로 들어서는데 날카 목소리가 들렸. 벌써 골목에 돌아 들면서 가슴이 덜컥 내려앉던 차다. 같은 건물에 사는 이웃들이 죄다 밖에 나와 있고 건너편엔 동네 아이들이 구경하러 몰려나와 있었다.


내가 멸치국물을 불 위에 올려놓고 그냥 나와버렸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는 집에서 나온 지 한 시간도 넘었을 때였다. 벌써부터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뒷 자석에 아이 둘을 태우고, 제발과 미쳤다 미쳤어를 반복하면서 무슨 정신으로 운전을  하고 왔는지 모르겠다.  그 북새통에 주차를 하려는데 뒤에서 집채만 한 소방차가 경찰차를 대동하고  밀어닥친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빠르게 우리 집 창문을 훑어보았다. 이상하게 고요하다. 검은 연기는 한 오라기도 보이지 않는다.  이성이 돌아올 틈도 없이 소방관들 우리 집 문 앞에 몰려간다. 손은 부들부들 떨리는데 아무래도 이 북새통이 억울하다. 멸치국물이 탄 것뿐일 텐데. 돌아오는 내내 연기가 자욱할 집안을 상상하며, 빨리 가서 창문을 열어야지 했다. 그런데 이게 웬 난리란 말이야. 가까이서 보는 독일 소방관들은 몸집이 정말 컸다. 열를 가방에서 겨우 찾아내는 동안 문 앞에 소방관들은 여유가 한껏이다. 나는 요란했던 사이렌 소리에 하얗게 질렸는데, 소방관들  두런두런 이야기도 하며 웃는 얼굴을 하고 있다. 놀란 가슴에 미미한 안심이 된다.   


그러게, 불은 나지 않았다.

멸치 대신 진한 국물을 우리고 싶어 잔뜩 넣었던 넙적한 디포리들이 앙상한 뼈만 남기고 냄비 바닥에 까맣게 눌어붙었을 뿐이었다. 디포리들은 진한 국물 대신 진한 누린내를 온 집안에 가득 뒤집어 씌어 놓은 후 전멸해버렸다. 납작한 줄로만 알았던 디포리는 다 타고 나서야 생전에 못 누렸을  입체감을 회복하고 있었다. 소방관 손에 들려나간 냄비에는 디포리들의 갈비뼈가 정말 장렬하게 존재를 뽐내고 있었고, 그 와중에 나는 이 난리법석 보다 적나라한 디포리 뼈가 더 창피했다. 말린 생선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독일 사람들. 얼마 전 볶아놓은 잔멸치를 보고, 너네 엄마가 벌레를 볶아놨다고 놀라 속말하던 딸아이 친구가 떠오르며, 들키지 말아야 할 것을 들킨 것처럼 마음이 화끈거다.


순식간에 들이닥친 소방관들순식간에 사라진 후, 나는 웅성웅성 밖에 서있는 사람들에게 무슨 변명이든 해야 했다. 대부분 그리스 사람들인 그들은, 미안하다는 인사에 별 반응도 없이  하나둘 시큰둥하 저희들 집으로 돌아간다.  내일부터 고개 들고 다니기  힘들 것 같은 불안감 불쾌해진다.   


이 모든 사태밉상인 그 윗집 여자 때문이었다. 그 여자가 신고만 하지 않았어도 이렇게까지 대대적으로 창피하진 않았을 텐데...... 하기사 경보기가 그렇게 울려대는데 그 여자라고 별 방법이 없었겠네. 내 전화번호도 모르니까. 그래도 나는 굳이 내 번호를 그 여자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언제고 일어날 수 있는 사고를 대비해서 번호쯤은 알려줄 만할 텐데도 말이다. 그만큼 데면데면한 윗집 여자와 나는 사소한 친절도 너무 귀찮은 사이이다.


언젠가 한번 마트에서 마주친 적이 있었다. 계산대에 줄을 서고 있는데 그 여자가 바로 내 앞에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아무런 악의가 없었기에 반갑게 '할로!'를 했지만 돌아오는 그 여자 표정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독일 생활 경력이 짧았었더라면 분명 며칠을 두고 곱씹으며 가슴 아파했을 표정이었다. 그건 기분 나쁜 사람을 만날 때 짓는 표정이었으니까. 예의라는 넉넉한 안전장치에 기대어 인간관계를 맺는 한국에 대한 향수가 한탄이 되어 올라온다. 이곳의 예의는 뭔가 조금 다르다. 내 기분을 그냥 내비치는데 덜 창피해하는 듯하고, 남의 기분을 쿨하게 신경 쓰지 않는 듯도 하다. 아니, 사실은 예의를 따질 기력도 없는 외국인들끼리의 스트레스일 뿐인지도 모르겠다.


'나 때문이 아니야.'

한번 두 번, 그런 비호의적인 표정들을 대할 때마다 나에게 확인해둔다. 나 때문이 아니야, 무슨 기분 나쁜 일이 본인한테 있었던 거야. 내 잘못이 아니야. 사실 진짜 그렇다. 십중팔구는 본인들의 스트레스 때문에 그런 비호의적인 표정을 짓는다. 기분 좋은 일이 생기면 언제 그랬냐는 듯 생글거릴 때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저런 외국인으로 함몰되지 말아야지. 순간순간 다짐을 해둔다.


자포자기한 듯한 외국인의 얼굴은 인종을 막론하고 비슷하다. 무연한 듯하면서도 경계가 바짝 살아있는 그 이름 없는 표정. 생기도 개성도 없는 말 못 하는 표정. 내가 그 표정을 읽어낼 줄 안다는 말은, 나도 또한 그런 표정 속에 자주 갇혀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윗집 여자를 볼 때마다 마음이 쓸쓸해진다. 너도 외국인이구나, 나도 외국인이구나, 하는 실감은 쓸쓸한 마음에 씁쓸함까지 덧붙인다.

 

그래도 이따가 집 앞에서 또 그 여자와 마주친다면 뻔뻔하게 활짝 웃어봐야겠다. '할로' 한마디로 끊겨버리는 인사라 해도, 외국인이 아닌 척 명랑하게 지나쳐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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