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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gevora Nov 11. 2021

너나 잘 하세요.

한쿡사람 조심해서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캐나다 이민을 오기 전, 그리고 이민 직후에 자주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진지했고,

세상만사의 이치를 깨달은 현자와도 같은 목소리로 말을 한다.

"한국 사람 조심해라"
"한국 사람 너무 믿으면 안된다"

 강산이 한번 바뀌는 동안 외국살이를 하면서 나는 속담과도 같은 그 말에 점점 모순을 느낀다.

물론 한국 사람이 한국 사람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쉽게 추정이 가능하다.

말이 안 통하는 비한인보다는 동포가 만만하기 때문에 함부로 하는 부류들이 꼭 있기 때문이다.   


 로컬 마트에서 손님은 본척만척, 느릿느릿 바코드를 찍으며 bagging service도 안 해주는 금발머리 캐셔한테는 찍소리도 못하면서, 그보다 훨씬 빠릿하게 움직이고 있는 한인 마트 캐셔한테는 왜 이렇게 굼뜨냐며 큰소리로 무안을 주는 여사님과 선생님들을 간혹 볼 때가 있다. 이른바 동포에 대한 혐오가 피어오른다.

하지만 이런 선택적 동포 분노조절 장애에 시달리는 분들은 그저 잠시 얼굴이 찌푸려지게 할 정도이지,

한국사람에 대한 마음의 무장을 해야하는 이유는 될 수 없을 정도로 하찮다.  


 사기꾼, 나르시스트, 가스라이팅,싸이코패스,소시오패스 등등 요즘 부쩍 많이 듣게 되는 사회의 암적인 존재들은, 인종과 상관없이 거의 일정한 비율로 존재한다. 다만 그 존재들이 발암력을 내뿜으려면 '유려한 언어'라는 도구를 이용해야 한다.

중국말하는 사람은 아무리해도 나를 가스라이팅 할 수 없다.

프랑스 말로 나를 사기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쁜 놈은 나랑 말이 통해야 나쁜 놈으로서의 존재 가치가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민 온 후에 몇 번 사기를 당할 뻔 한 적이 있다.

그 중 일부는 캐나다 로컬 사람,

딱 한번은 한국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한국사람만 조심해서 될 일이 아닌,

모든 이들에게 호구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냥 사짜를 알아보는 혜안과 통찰을 가져야한다고 하면 될 것을,

굳이 외국에 나오면 한국 사람은 덮어놓고 경계하고 조심해야하는 것이

마치 학계의 정설처럼 굳어진 것이 나는 몹시 거슬린다.

  



 아이들이 한참 성장할 때, 금새 작아져버린 옷가지나 신발 등을 정리하면서, 비싸게 구입해놓고 한두번밖에 못 신었던, 상태가 좋은 겨울 부츠를 교민들만 이용하는 중고장터에 헐값에 내놓은 적이 있다.

  워낙 트래픽이 많은 싸이트라 포스팅하자마자 구입을 원하는 젊은 엄마로부터 연락이 왔다.

집 주소를 알려줄테니 와서 픽업해가라고 하니 본인은 이민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차가 없어서 아이 둘을 데리고 버스를 타고 올 예정이라, 한인마트 앞에서 만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중고 부츠를 구입하기 위해 추운 날씨에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길을 나설 그녀의 생활력이 예뻐 보여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봉투에 부츠를 담고 그 아이들의 연령대에 유용할 것 같은 옷가지나 책들도 사은품(?) 형식으로 같이 챙겨 넣었다.

  

 그런데 약속 시간 전까지 부츠의 상태를 꼬치꼬치 묻는 문자가 계속 온다.

중고 신발 사면서 더럽게 까다롭게구네.....하고 살짝 짜증이 났다.

사실 집으로 물건을 가지러 오겠다는 다른 지원자

(?)들도 있어서 

그녀의 요청대로 일부러 나가는 것이 집순이인 나로서는 좀 귀챦기도 했다.  

하지만 (나와는 다르게) 성격이 워낙 꼼꼼하고 깔끔한 엄마라서 그런갑다하고

시간에 맞춰 약속 장소로 나갔다.


 한인 마트 앞에서 유치원과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이 둘을 앞세운 한 여인이 직감적으로 거래상대인 나를 알아본 듯 웬지 뜨악한 표정으로 고객을 까딱한다.

우리는 마약 거래하듯 무미건조하게 아이들 용품이 든 봉투와 20불짜리 지폐 한 장을 교환하였다.  

생각보다 묵직하고 이것 저것 들어있는 봉투를 보더니 그제서야 젊은 엄마의 표정이 조금 풀어지면서

묻는 표정을 짓는다.

 "아이들한테 필요할 것 같아서 몇가지 좀 더 챙겨 넣었어요. 잘 쓰세요"

하며 내 뒷모습이 멋있어 보이길 바라며 쿨한 척 뒤돌아 나왔다.


 집에 오니 그녀로부터 문자가 한 통 와 있었다. 내용인즉슨,

" 한국사람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워낙 많이 들어서
처음에는 마음이 좀 불편했었는데,
오늘 너무 좋은 경험을 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였다.


 중고 거래 하면서 유난히 까다롭게 굴던 젊은 엄마 때문에,

조금 짜증이 났었던 마음이 따뜻한 문자 메시지 한 통에 눈 녹듯이 녹아 내렸답니다.....

라고 아름답게 이야기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어쩐지 비뚤어진 성질머리는 실소를 머금으며

“G랄하네" 하고 나도 모르게 육두문자를 씨부렸다.


 '한국 사람'이 그토록 경계의 대상이었다면, 캐나다 로컬사람들이 이용하는 craiglist 같은 싸이트를 이용할 것이지, 어째서 한국사람 전용 중고 장터에서 득템을 노리는 하이에나가 되었는고?


그래서 그 '한국 사람'이 20불에 내놓은 아동용 부츠(그것도 두 켤레)를 구입하면서 눈탱이 맞을까봐

그렇게 꼬치꼬치 캐묻고 까다롭게 굴었다는 것?

 

그런데 그 못 믿을 '한국 사람'이 막상 덤으로 이것저것 챙겨 주니깐, 이제 좀 흡족하시다?


그러는 당신은 남들에게 얼마나 믿음직하고 괜챦은 '한국 사람' 입니까?


라고 반문하고 싶었다.


 


 이민 와서 형제 자매, 또는 친구와 웬수지간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언니 또는 형이 여기서 나름 자리잡고 살고 있으니깐 그래도 물심양면으로 도와줄 줄 알았는데,

자기 한테 너무 무심해서 상처 받았다는 것이 흔한 레파토리이다.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는 결정적인 감정은 대부분 서로에 대한 실망감이다.

실망이란, 주로 내가 기대하는 바보다 적게 돌아올 때 느끼는 감정이다.

도대체 무엇이 나로 하여금 상대방에게 몹쓸 기대라는 것을 하게 만드는가?   

혹시 나 스스로에게 온정이 필요한 '불쌍한 해외 동포'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상대방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닐까?


 이 세상에는 세 부류의 인간이 존재한다고 한다.


주는 것보다 항상 더 많이 받으려고 하는

Taker

딱 받은 만큼만 줘야 직성이 풀리는

Matcher

이왕 줄 거 먼저 주고, 더 많이 줘야 마음이 편한 Giver


 Giver가 많아질 수록 아름다운 집단이 된다고 하는데, 우리 평범한 중생들은 그저

Matcher 되어도 괜챦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Taker이다.

 20불에  상태가 좋은 부츠  켤레와 옷가지와 책들을 득템해야  그마나 상대방에 대한 

마음의 경계가 풀리고야마는 그녀는 

어쩌면 또다른 나의 자화상이었으리라.


마음이 가난할  나는 

영락없는 Taker 되고야 만다.

그리고 나서는 뻘소리를 시전한다.

 "동포끼리 왜 그래?"

 "같은 한국사람끼리 이러기야?"


도대체 나는 동포에게 뭘 얼마나 많이 바라는가?

그러는 나는 동포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베풀고 있는가?

아이러니하게도 Giver 동포를 만났던 순간, 부끄럽게도 나는 철저히 Taker 혹은 Matcher 였다.


 이민 생활 십년전에 자주 들었던 그 말을 나는 조금 변형해보고 싶다.

한국 사람에게 부끄러운 한국 사람이 되지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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