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산업재해 입고 든 소회.
2021년 4월의 어느 금요일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날이 될 것이다.
직장인이라면 슬슬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하는 금요일 오후 4시경, 모르는 번호로부터 전화가 왔다.
"Hello?"
"안녕하세요 (어둡고 조심스러운 목소리) 저.....XXX씨 아내분 되시죠?"
".........네 그런데요?"
은근히 불안해지기 시작한 기분은 "전화로 이런 말씀드리기 죄송하지만..."으로 운을 떼는 상대방의 다음 몇 마디에 순식간에 아득해졌다.
재작년에 비즈니스를 강제적으로 관두고 다음 진로를 모색하던 남편은 최근에 배관공 자격증을 따겠다며 수련공으로 취직을 하여 아직 수습기간인 상황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수도관을 측량하고 배치하고 연결하는 일이 공대 출신인 남편에게 잘 맞았는지 몸은 힘들어했지만 무척 재미있어했다. 십년전 이민왔을 때 이 일을 시작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돌고 돌아 이제야 평생직업을 찾았다면서 몇년 안에 국가공인자격증(Red Seal)을 취득하는 계획을 세우는 등 의지를 불태웠다. 나이 마흔 줄에 청소년처럼 꿈을 갖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다 감사한 일인지 벅차오르는 기분으로 대화를 나누던 게 엊그제였다.
남편은 작업현장의 약 7미터 높이의 천정에서 콘크리트 바닥으로 떨어졌다고 했다.
남편의 동료 이야기로는 머리에 출혈이 있었고 바닥에 드러누워 고통스러워하다가 들것에 실려 앰뷸런스로 이송된지 5분 만에 나에게 전화했다고 했다. 원래는 사장님이 전화하셔야 하는데 지금 사시나무처럼 떨고 계셔서 자기가 대신 전화했노라며 센스있게 내가 차마 묻지 못했던 질문에 대한 답도 해주었다.
나는 상사에게 급한 상황을 이야기하고 부랴부랴 가방을 챙겨 집으로 향했다. 그 와중에도 직장생활
15년 경력의 추노답게 속절없이 지금이 업무가 거의 마감된 4시라서 다행이고 또 금요일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의 동료가 알려준 병원 응급실에 전화를 하니 간호사가 코로나로 인해 일체의 방문객의 입장이 불가능하다며 니 남편의 정보를 얻게 되는 대로 다시 연락을 주겠노라고 했다.
그녀의 전화를 기다리는 30분 동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나는 이미 그놈의 "죄송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신의 남편이..." 운운하는 대사에 트라우마를 입은 상황이었고 혹여 응급실 간호사로부터 또 그런 소리를 듣게 될까봐 심장이 두근거렸다.
30분 후에 응급실에서 전화가 왔고 곧 CT 촬영을 할 예정인데 2분 정도는 예외적으로 남편을 볼 수 있도록 해주겠단다. 그 '2분 면담'이 다행스럽게 들리는 것이 아니라 왜 코로나때문에 방문이 불가하다면서 나는 예외적으로 짧게 들여보내겠다는건지 '혹시 남편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등등의 불길한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평소 영화를 너무 많이 봤다.)
사고장소가 그 근방이었어서 병원은 집에서 약 한시간 가까이 떨어진 곳이었다.
오후 6시경 하필이면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는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도로의 특성상 화물차나 탑차가 많이 지나간다. 여기서 나까지 교통사고를 당하면 우리 가족을 어떻게 되는 걸까? 하며 불길한 생각이 방정맞게 또아리를 틀었다.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응급실에서 남편을 보니 그간의 어두운 상상들이 꽤나 방정맞은 것이었구나 싶으면서 일단은 안도가 되었다. 남편은 통증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겨우 한 손을 들어 나에게 인사하며 멋적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다짜고짜 사흘 후에 있을 우리집 지붕공사를 걱정하는데 나는 벌컥 화를 내고야 말았다. 이와중에 지붕 이야기를 왜 하냐면서.
애시당초 간호사가 말했던 2분은 2시간이 되었다. 그 사이에 의사도 만났고 CT 스캔 결과와 향후 치료방향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소탈해보이는 백인 할아버지 의사선생님으로부터 들은 남편의 상태는 생각보다 더 위중했다.
사람의 갈비뼈는 좌우 12쌍이 있는게 그게 모두 부러졌고 오른쪽 면이 땅에 닿는 충격으로 오른쪽 쇄골뼈와 어깨뼈까지 부러졌다고 한다. 머리는 다행히도 피가 밖으로 흘러서 뇌출혈이나 다른 부상은 없었고 무엇보다 천만다행이었던 것은 장기손상이 전혀 없다며 "God saved him"이라고 이야기했다.
이정도로 골절이 심할 때는 부러진 뼈조각이 내장을 찌르기 일쑤인데 남편의 경우에는 내장은 무사하다니, 절망스러운 가운데에서도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남편이 외과병동으로 옮겨지면서 나도 그만 어쩔 수 없이 병원을 나와야만 했다.
집에 와서 긴장이 풀어지니 그제서야 상대 모를 원망과 서러움에 눈물이 났다.
이후 남편은 병원에서 열흘간 입원치료를 받았다.
암수술을 해도 하룻밤 재우고 피주머니랑 같이 퇴원시키는 캐나다 병원에서 열흘동안의 입원은 꽤나 장기입원에 속한다.
그 기간 동안 모르핀에 의존하며 흉곽에 찬 핏물을 튜브를 꽂아 며칠에 걸쳐 뽑아내고 쇄골에는 철심을 받는 수술도 했다. 나 역시 간병을 위한 Essential Visitor로서 매일 같이 병원에 가서 남편의 상태를 체크했다. 그렇지만 내가 하루 종일 병원에 있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기에 내가 없을 때 아무래도 그는 힘들어했다.
간호사는 3교대로 바뀌었는데 남편은 어떤 간호사는 너무 무성의하다며 화를 냈고 어떤 간호사는 너무나 세심한 배려를 해준다며 고마워했다.
'푸시팬더'라는 조금 특이한 이름의 그 인도계 간호사는 옆에서 보는 나도 뭉클해질 정도로 남편에게 정성스러웠다. 수시로 고통을 호소하는 남편의 눈을 맞추며 경청을 하고 그의 민망할 정도로 잦은 요구(물 갖다 달라, 오줌통 갖다달라 등등)에도 항상 웃는 얼굴로 즉각적으로 대응했다.(보통 그들은 바쁘기 때문에 한참 기다리다가 안오면 또 같은 말을 반복해야 한다.)
또한 통증으로 목도 제대로 못 움직이는 남편의 배게나 이불 상태까지 미리 점검하는 식으로 상당히 디테일하게 그를 보살펴서 그녀가 당번인 날은 훨씬 몸과 마음이 편하다며 남편이 감탄할 정도였다.
단순히 직업적 친절을 넘어서서 환자를 보살피는 그녀를 보니 나이팅게일이 전장의 병사를 저렇게 정성으로 돌보았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남편은 비즈니스할 때부터 여러 인종 중에서도 인도사람들이 제일 4가지가 없다며 인도사람을 싫어하고 무시했는데 정작 지금 선한 사마리안으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인종에 대해 함부로 단정지을게 아니구나 싶다.
고마움을 누를 길이 없었던 나는 병원 1층의 스타벅스 매장에서 상품권을 사서 그녀가 남편을 보러왔을 때 당신이 얼마나 우리 부부에게 위로가 되는 존재인지 이야기하면서 슬며시 건냈지만 선한 눈매의 그녀는 규정에 어긋난다며 극구 사양했다. 대신 이 에피소드를 자신의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으로 충분한 선물이 되었다고 이야기하며 나의 무안함을 달래줄도 아는 지혜로운 여인이었다.
입원 7일차부터는 남편의 상태도 호전되었고 코로나도 더 심해졌다며 문병을 금지 당했다.
병원에서 나에게 전화상으로 '니 남편은 더이상 간병인이 필요없다' 며 이제 오지 말라고 하는데 간사하게도 안와도 된다는 말이 묘하게 반가웠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안와도 돼'가 아니라 '좋아졌으니깐' 이라는 부분에서 더 반가운 것이었다고 애써 게으른 내 자신을 변호해본다.
남편의 부상은 산업재해였기 때문에 주(province)에서 운영하는 노동청으로부터 혜택의 대상이 되었다.
업무상 재해가 발생하면 72시간 이내에 병원,고용주,사고당한 직원 이 세 군데에서 신고가 이루어져야한다.
신고가 누락되거나 지연되면 병원이나 고용주는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
남편의 케이스는 꽤 큰 사고와 중한 부상이었어서 스페셜 케어팀으로 이관되어 담당 상담사와 간호사가 배정되었고 간호사는 직접 남편을 보러 와서 한시간 반동안 상담을 했다.
퇴원할 때와 집에서 요양을 하는 기간 동안 필요한 장비 또는 서비스가 없는지 꼼꼼히 살피고 우리집의 계단 갯수과 동선,심지어는 샤워장 손잡이 설치 여부 등 세세한 사항까지 파악을 했다. 노동청에서 파견된 간호사가 퇴원해도 좋다는 허락을 하자 그제서야 병원에서 퇴원을 준비시켰다.
대부분의 낙상 환자가 그렇듯, 남편도 자신이 왜 천정에서 떨어졌는지 기억을 하지 못한다.
당시의 상황이 그다지 위험한 환경도 아니었으며, 배관공의 작업 범위에 그렇게 '험한 일'은 없다.
오히려 이 곳 배관공들의 대체적인 직업 만족도는 꽤나 높은 편이다.
남편의 이번 사고는 사장님도 십수년간 한번도 겪어보지도, 목격하지도 못한 일이었고 동료들도 모두 '당최 떨어질 이유가 없는데' 하면서 의아해했다.
요 근래 며칠 남편이 잠을 못 자고 많이 피로한 상황이었는데, 급성 현기증이 났거나, 사다리에서 발을 헛디뎌 몸의 중심을 잃었거나로 그저 추정할 뿐이다.
남편의 사고 소식을 들었던 당일에는 남편이 이 일을 못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다행인건지 그는 일에 대한 트라우마는 커녕 생각보다 업무에 복귀할 의지가 강했다. 부러진 뼈가 접골이 되는데까지 최소 두달이 걸린다고 하니 미련하게도 두 달만에 일터로 돌아갈 생각을 한다.
그것이 바로 가장의 무게 아니겠냐고?
아니, 산재보험금이 완치되어 정상근무를 할 수 있을 때까지 나오는데도? 이런 경우 되도록이면 오랫동안 쉬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일텐데 그는 쓸데없는 성실부심(?)을 부린다.
다행히도 노동청(worksafe BC) 간호사 말로는 남편의 성실성과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기네들이 허락을 해야 업무에 복귀할 수 있으며 그것도 처음에는 1시간만 일하게 하는 등으로 적응하는 거 봐가면서 차차 근무 시간을 늘리겠다고 한다.
이민생활 10년 동안 남편이 이렇게 굵직하게 병원 신세를 지는 것이 이번이 무려 세번째이다.
캐나다 거주자는 의료비가 무료이기 때문에 우리는 농담삼아 그동안 세금을 많이 축냈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남편을 격려한답시고 회복하면 납세자로서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여 캐나다 정부에 진 빚을 갚으라고 말했다. 즉 열심히 일해서 돈 많이 벌으라는 뜻이다.
불현듯 남편이 질문을 한다.
"내가 그냥 한국에 있었어도 이렇게 병원신세를 많이 지게 되었을까?"
질문의 뉘앙스에는 이민와서 개고생하는 것에 대한 씁쓸함과 한국에서 일구었던 번듯한 커리어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이 뭍어났다. 그동안 숱하게 해왔던 질문이다. 과연 이민 온 것이 잘한 짓인가? 그냥 한국에 있는 편이 나았지 않았을까?
" 여보, 그건 진짜 의미없는 질문이에요. 왜냐, 직접 살아보지 않고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답이니깐요.
한국과 캐나다에서 살면서 좋은 점과 나쁜점을 각각 +,- 점수로 나타내 봅시다.
이를테면 한국에서는 어엿한 직장 (+50), 왕따당하기 딱 좋은 모지리 같은 아들놈 (-30에서 -70),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부모,형제,친구 (+50) 등등...
그런식으로 총점이 한국 vs 캐나다 = 230 : 200 으로 캐나다에서의 행복점수(?)가 더 낮을 지도 몰라요.
그런데 우리가 이미 캐나다에서 사는 이상 그걸 역전시키는 방법이 있어요.
바로 (+)항목에 120%씩 가산점을 주는 거에요.
즉 지금처럼 병상에 누워있어도 돈 걱정 안해도 되는 인본주의적 복지 제도에 1.2배씩 점수를 주고
이민 전에 항상 동경했었던 가족 중심적 라이프스타일을 120%로 누립시다.
맑은 공기가 배를 불려주진 않지만 동네 호숫가를 산책하면서 맑은 공기를 1.2배로 마십시다.
캐나다산 트리플 A 소고기 스테이크를 먹으면서 그냥 맛있다고 하지말고 엄청나게 호들갑 떨면서 허벌나게 맛있다고 합시다.
휴일에는 아름다운 스탠리파크를 자전거로 한 바퀴 돌다가 목이 마르면 공원 매점에서 맛있는 젤라또를 사 먹으며 행복감을 120% 아니, 가능한한 최대치로 증폭해서 느껴봅시다.
그것만이 우리가 선택한 삶을 정답으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깐요.
나는 반대로 한국에서 살았어도 그랬을 거에요.
코드가 맞는 친구와 동대문 쇼핑을 하고 아이스 아메리카로 목을 축이며 "캬아~ 이 맛에 산다"고 만세를 외쳤을 거에요.
울 엄마 아빠가 손주인 내 아이들을 보시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 속으로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었을거에요.
당신이 멋진 양복에 넥타이를 메고 출근하는 뒷 모습을 보면 재Dragon보다 더 멋있다고 감탄했을 거에요.
그런데 솔직히 나는 그것들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일인지 그때는 느끼지 못하고 지냈어요.
당신도 해외 출장을 다니며 좋은 호텔에서 맛있는 것을 먹었던 그 시절엔 그닥 감흥없이 불평이 더 많았더랬어요.
아무리 좋은 것도 느끼지 못하면 의미가 없어요. 지나고 보니 좋았음을 알게 된 것은 현실만 더 초라하게 만들 뿐이에요.
그래서 나는 지금 이 곳에서 당신이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리바이스 청바지를 입고
평소 운동하고는 담 쌓은 사람이 하루가 다르게 팔 근육이 생기는 것을 보며
해리슨 포드 보다 더 멋있다고 칭송합니다.
다치지만 않으면 당신은 멋있는 사람이에요.
'저 포도는 사실 실거야'하고 정신승리하는 여우와 내가 다른 점은 가질 수 없는 것을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미 갖고 있는 것을 평가절상해서 더 감사해하고 만끽하자는 삶의 태도인걸요."
사실 이렇게 길고 오글거리게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훨씬 간단하게 요점만 이야기했지만, 남편은 뭔가 느끼는 바가 있는 듯 진지하게 끄덕거리더니 이렇게 묻는다.
그럼 나 테슬라로 차 바꿔도 돼?
그의 머리속에서 어떻게 그런 결론이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참으로 기회에 강한 사람이다.
P.S : 나에게 남편의 사고소식을 전해준 그 분에게 말하고 싶다.
이봐 젊은 친구.. "전화로 이런 말씀 드리기는 죄송하지만 남편분께서... " 이렇게 뜸 들이며 시작하면
듣는 사람이 심장마비 온다네. 그럴 땐 "남편분이 작업중에 다치셔서 지금 병원으로 가셨어요. 이런 소식 전해드리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하고 순서를 반대로 이야기하는게 그나마 나을 것 같지만 생각해보니 별 차이 없을 듯. 아무튼 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빨리 전해주어 무척 고맙게 생각한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