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백년의 고독’을 읽는 것은 광대한 미로에서 길을 잃는 경험과 유사하다. 미로 곳곳에는 흰 나비가 날아다니고, 노란 꽃비가 내린다. 4년 11개월하고도 이틀이나 내리는 비에 몸이 젖는가 하면, 뇌수까지 파고든 미녀의 체취에 몸서리친다. 소설은 백년 동안 부엔디아 가문에 일어나는 흥망성쇠를 다룬다. 독자들은 6대에 걸친 부엔디아 가문의 가계도를 그리며 소설에 탐닉하다가 어느덧 이야기가 주는 즐거움에 푹 빠지고 만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라는 타고난 이야기꾼은 라틴 아카데미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충격적이고도 기묘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백년의 고독‘은 스토리야말로 소설의 본령이라는 당연한 진실을 우리에게 일깨우는 소설이기도 하다. ’소설의 종말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서구 작가들의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책꽂이에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을 꽂아 놓고 어떻게 소설의 죽음을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밀란 쿤데라의 말이다.
부엔디아 가문은 오랜 근친상간 끝에 돼지 꼬리를 가진 아이를 낳는 천형을 받았다. 사촌 우르술라와 결혼한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마을의 젊은이들을 이끌고 마콘도라는 새로운 도시를 개척한다. 세상과 분리된 젊은 도시 마콘도는 마치 에덴의 동산처럼 신선하고 생명력이 넘친다. 소설은 라틴 아메리카의 전설뿐 아니라 대홍수와 되돌아온 망자 등 세계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설화의 원형 역시 등장한다. 이 재미있고도 방대한 소설을 읽기 위해 독자들은 새로운 독법(讀法)을 준비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리얼리즘 소설을 읽을 때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시선은 이 소설을 읽기에 적합하지 않다.
이른바 판타지 소설에서 저자는 자신이 창조한 세계에 나름의 개연성과 가능성을 불어넣으려 애쓴다. 이런 작업을 통해 판타지는 설득력을 얻는다. 마르케스는 능청스럽게도 현실과 환상을 아무 경계 없이 버무려 놓은 듯한 소설을 선보였다. 물론 작가가 소설에 부여한 내적 논리는 이 황당무계한 소설을 있을법한 이야기로 바꾼다. ‘마술적 리얼리즘(realismo magico)’이라 알려진 이 기법은 환상과 현실이 뒤섞여있는 라틴 아메리카의 현실을 반영한다. 연금술이 화학의 발전에 도움을 주었듯, 현실과 주술적 사고는 밀접하게 얽혀있으며 때로 구별하기 어렵다. 삶과 죽음의 경계 역시 불명확하다. 망자들은 산 사람 앞에 끊임없이 모습을 드러낸다. 자신을 기억하는 이들이 스러져갈 때 망자들은 비로소 제2의 죽음을 맞는다.
마콘도 주민에게 성애(性愛)란 너무나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이다. 그러나 부엔디아 가문 사람들은 가문의 저주와도 같은 근친상간에의 유혹에 흔들린다. 외부와 분리된 그들의 공간에 정치가 관여하며 마콘도의 타락이 시작한다. 좌우대립이 극심하던 무렵,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전쟁에 뛰어든다. 자기 집 대문을 어떤 색깔로 칠할까의 문제로 시작한 전쟁의 본질은 어느샌가 중요하지 않게 되어버린다. 부엔디아 대령은 자신이 ‘자존심’ 때문에 싸우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토록 증오하던 보수파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 되어버린 자신을 경멸한다.
‘내가 걱정하는 건 말이야, 자네가 군인들을 너무나도 미워하고, 그들과 전투를 너무 많이 하고, 그들에 대한 생각을 너무 깊이 했기 때문에 결국 자네도 그들과 같은 사람이 되고 말았다는 것일세. 그토록 비참한 경우를 겪으면서까지 추구할 만큼 고귀한 이상은 이 세상에 없는 법이네.’- 1권, 본문 250쪽
전쟁 뒤에 마콘도에 들어선 것은 제국주의와 매판자본이다. 이전까지 마콘도는 나침반과 하늘을 나는 양탄자, 펄펄 끓는 얼음을 든 집시들이 방문하던 문명과 동떨어진 작은 도시였다. 바나나 공장이 들어서며 도시는 극장과 최신 건물, 도박장, 많은 사람으로 붐빈다. 덩달아 부엔디아 가문의 사업 역시 번창한다. 수탈을 위한 철로가 들어선다. ‘많은 불안과 확신을, 많은 즐거움과 고난을, 많은 변화를, 재난을 향수를 마콘도에 실어 날라야 했던’ 노란 기차는 몇 년 뒤, 살해당한 노동자의 시신 3000구를 가져다 버리는 역할을 한다.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 호세 아르카디오 세군도의 증언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망각되어 버린다. 죄 많은 도시 마콘도는 ‘사 년 십일 개월 이틀 동안 내린’ 비에 시달린다. 설화 속의 대홍수를 연상하게 하는 우기(雨期)가 지나간 뒤 마콘도는 급격히 쇠락의 길을 걷는다.
소설은 선형적 시간의 흐름을 거부한다. 시간이란 거대한 움직임인 동시에 순간에 박제될 수 있는 무엇이다. ‘시간 역시 장애와 사고를 겪으며, 그래서 시간이 파편화될 수 있고, 방 하나에 영원화된 파편 하나를 남길 수도 있’다. 마콘도에서 시간은 원형으로 순환하는 듯하지만, 조금씩 방향을 틀며 앞으로 나아간다. 이런 흐름은 등장인물의 삶과 마을의 역사, 사건에 일정한 패턴을 준다. 아울렐리아노라는 이름이 붙은 인물은 신비하며 관찰력이 뛰어나지만 은둔하는 경향이 있다. 호세 아르카디오라는 이름이 주어진 남성은 충동적이며 비극적 삶을 살아간다. 우르술라라는 이름의 여성은 강한 생명력과 불굴의 투지를 가졌지만, 근친상간을 통해 아이를 낳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소설의 제목이 암시하듯, 부엔디아 가문 사람들은 모두 고독을 숙명으로 타고났다. 근친상간은 자폐의 상징이며 대를 이은 고독의 결과물이다. 소설이 보여주는 건강한 에로티시즘 속에서도 진정한 의미의 사랑은 찾을 수 없다. 아울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무한한 권력의 고독 속에서 길을 잘못 들어 방향 감각을 잃어’갔다. 레나타와 메메는 아주 짧은 시간, 사랑하고 사랑받았지만, 사랑의 상실 뒤에 길을 잃었다. 결국 죽음과도 같은 고독 속에 유폐되어 평생을 살아간다. 마콘도 최고의 미녀 레메디오스를 얻기 위해서는 ‘사랑이라는 단순한 감정만 있으면 충분’하지만 아무도 이를 떠올리지 못한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고독을 잊기 위해 ‘작은 황금 물고기를 만들었다 녹이고 다시 만드는 일을 부질없이 되풀이’한다. 이는 시지프스의 신화에 등장하는 형벌과도 같다.
‘마콘도의 모든 재앙은 연대성의 부족, 즉 모두가 이기적으로 행동할 때 결과하는 고독에서 온다’ 저자는 이렇게 말하며 소설 속의 고독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한다. 외부와의 단절, 무분별한 서구 문물의 유입은 모두 라틴 아메리카의 공동체 문화를 훼손한다. 그러나 고독은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존재론적 감정이기도 하다. 소설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거부하며 자신의 고독 속에 침잠한다. 그러나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던 사람에게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전혀 다른 견해를 갖게 된다. 아마란타는 ‘사랑과 증오가 아니라 고독에 대한 심오한 이해심’을 통해 연적 레베카를 ‘고통의 수렁에서 구해 주는 게 아직 가능했을 때인 수년 전에 그런 진리를 깨닫지 못했다는 사실이 가슴 아팠다.’ 이처럼 사람들은 최후의 순간에 이르러서야 그들이 서로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깨닫고 그 사랑을 표현하지 못했음을 애통해한다.
마침내 우르술라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돼지 꼬리가 달린 아이가 태어난다. ‘가문 최초의 인간은 나무에 묶여 있고, 최후의 인간은 개미에게 먹히고 있다’는 멜키아데스의 예언이 실현되는 순간이다. 그와 동시에 환상 속의 도시 마콘도는 모래 먼지로 변해간다. 심오한 주제 의식과 복잡다단한 구조에도 불구하고 ‘백년의 고독’은 오직 소설만이 줄 수 있는 기쁨에 눈 뜰 수 있는 책이다. 침대 시트와 함께 승천한 미녀 레메디오스, 흙을 먹으며 ‘죽은 거머리들이 뒤섞인 푸른 액체를 토하는’ 레베카, 남편이 있는 옆방에서 간통을 저지르는 아마란타 우르술라의 이야기가 지닌 마력은 집시들이 가져온 지남철처럼 앞으로도 영원히 독자들을 끌어들일 것이다.
저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1927년 3월 6일 콜롬비아의 아라카타카에서 태어났다. 부모님과 함께 외할아버지 댁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마르케스는 어린 시절 외조부모에게 들었던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백년의 고독’에 등장하는 환상적 이야기들을 창조했다고 전한다. 1947년 콜롬비아 국립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단편 소설 ‘세 번째 체넘’이 일간지 ‘엘 에스펙타도르’에 실렸다. 저자는 소설 ‘백년의 고독’을 이미 1944년부터 구상했지만, 아직 이 대작을 완성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는 이유로 집필을 미룬다. 23년 동안 구상한 끝에 18개월에 걸쳐 집필한 ‘백년의 고독’은 출판된 지 불과 몇 개월 만에 유럽의 20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1971년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5년 ‘족장의 가을’을 출판했다. 198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고 ‘라틴 아메리카의 고독’이라는 제목의 수상 연설을 했다. 1985년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출간했다. 2004년 마지막 소설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을 발표했다. 2014년 여든 일곱 살의 나이로 멕시코시티에서 타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