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언니, 그리고 나. 우리 가족은 2년전 아빠를 보내고 우리끼리 해외여행을 가기로다짐했다.
작은 지방도시 태생인 엄마와 여전히 그곳에 살고 있는 언니, 그리고 조금은 떨어진 곳에 사는 나. 우리가 각자의 삶과 되도록 멀리 떨어질 수 있는 것을 생각한 방법은 비행기를 타는 일이었으니까...
그렇게 이야기하고 벌써 2년 반이나 되었나? 새해가 바뀌면서 마음이 조급해졌다. 지금 아니면 또 몇 년이 흐를지 모르는 시점에서. 다음 달에 가자! 마음을 정했다. 그리고 스케쥴을 맞추다보니, 엇 안되겠다. 다음주에 가자! 그것도 안되네, 내일모레 가자! 가 되어버렸다.
급하게 이틀 후의 여행을 정하게 된 날. 엄마와 아예 해외가 처음인 언니를 데리고 가는 여행이니 무조건 패키지를 가야했다. 하지만 당장 떠나는 상품이 남아있을리 만무할 터, 그래도 있는 것이 어디냐. 나트랑과 치앙마이 중 선택하게 되었다.
아무리 뒤져보아도 수개월전 아니, 몇 주전이라도 예약한다면 가능한 가격보다 1인당 50만원은 비싸게 패키지 여행을 구매할 수 밖에 없게 되어 배알이 꼬였다. 그렇다고 안갈수도 없고...
기약없는 님을 기다리며 또 다시 가자가자 말만하는 세월을 버티는 값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그날 잠을 설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도합 150이 아니건가,게다가 그 가격엔 현지에서 선택해야하는 옵션이라는 이름의 관광과 가이드 경비들이 별도였다.
‘합리’라는 이름으로 늘 이것저것 비교하고 최상의 선택을 한다고 자부하던 나는 그로인해 선택장애가있다. 혹시 이걸 선택해버리면 더 좋은 것을 놓치는 것이 아닐까... 그런 내가 단 몇 시간만에 결정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정답은 하나임에도 고민하고 또 고민했지만 그 고민은 그래도 시간과 돈을 따진 다면 지금 가야한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시간들이었달까...
이제 막 65세가 넘어 노인축에 끼게된 엄마, 해외를 처음가보는 언니, 그리고 프로 걱정러인 나, 함께 가는 셋의 첫 여행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갑자기 치앙마이로 떠나기로 했다.
늘 언젠가 비행기를 타고 가자, 가자, 떠나자! 입버릇처럼말하다가 이렇게 준비도 없이 갑자기...
늘 내 생에 중요한 일은 예기치 않게 벌어졌지지 않았던가. 금요일에 여행확정문자를 받고, 일요일에 떠나는 일정이었다.
당장 은행으로 달려가 환전을 하고 나니 마음이 무거웠다. 나만 믿고있을 엄마와 언니를 챙겨야 한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무거운 짐이 어깨에 실린 것 같았다. 그러고보니 아이를 낳고, 코로나가 터지고, 해외를 나간지 어언 6년 째인 것이다.
여행러버라고 자부했던 나조차도 모든 것이 새로웠다. 아니 겁이 났다고 할까. 비행기는 잘 탈 수 있겠지? 인천공항 이동시간은 너무 빠듯하지도 널널하지도 않아야하는데...패키지임에도 지방에서 인천공항까지의 여정, 모바일 체크인, 도심공항에서의 출국심사, 도착시간과 수속시간과 기다리는 텀, 유심칩도 구매하고, 비행기에서 즐길거리 등등... 끝없이 검색하고 또 검색해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출발도 전에 이미 머릿속이 복잡해졌고 다양한 미션들이 등 뒤에 얹어져 여행의 설렘보다는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다.
난 무언가를 해야하면 늘 머릿속에 그 생각이 떠나지 않으며 불안하다. 불안과 예민, 이것은 늘 세트처럼 붙어다녀서 그 불안감이 늘상 예민함으로 표출되곤 했다.
여러 가지 결정사항에 불안감까지 늘어붙어 다음 날 일찍 출발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잠을 설쳤다. 그리고 생각했다. 심지어 다음날 새벽 택시가 안잡히면 어떻게 하나? 차를 가져가야하나 주차할 곳이 없으면 다시 집에 왔다가 가야하나 이런 문제들이 나의 잠을 쫓았다면 이해가 가려나?
정작 걱정한 일들의 대부분 닥치면 아무 문제될 것이 없는 일들임을 알고 있음에도 내 머릿속의 프로세스는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의 경우의 수를 세우고 대비하라고 불안을 내게 밀어넣고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불안을 하나의 숙제처럼, 없으면 안되는 커피처럼 달고 사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어떻게든 되겠지.’ 근거없는 낙관주의가 바로 나라는 자부심을 달고 살던 젊은 날의 나는 어디로 간걸까?
출발 전에도, 비행기에서도 여행중 이동하는 차에서도, 내 이런 모습을 버리고 가자고 다짐했다.
이번여행의 목표는 느림의 나라에 나의 '조급과 불안'이라는 놈을 떼어놓고 오는 것이라면 거창하려나?.
합리, 빠릿빠릿한 성격, 준비성이 철저. 이러한 말로 포장된 겁쟁이인 내 모습을 달래주자고... 다그치곤 했지만. 정작 여행지에서는 그러지 못한 것 같다. 돌아오고 나서야, 그래 어떻게든 되었잖아. 미리 걱정하지않았으면 더 즐길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일행을 채근하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솟아오르며 아쉬움이 든다.
오랜만에 느껴보았다. 여행의 묘미는 바로 이런 여행후의 되새김질. 이것이 내가 여행을 좋아했던 이유라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