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치가 아닌 새로운 정의가 필요해
나도 내가 당연히 몸치라고 생각했다. 리듬에 몸을 맡기고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막막하고 어려우니까. 학원을 다니면서도 몸치를 극복해보겠다고 부단히 애쓰는 나날이었다.
그러다 언젠가 새벽, 유튜브에서 만난 한 영상을 보고 춤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학원에서 배운 안무를 유튜브에서 한번 검색한 적이 있었는데, 이 알고리즘 때문인지 내게 추천한 영상 제목이 마치 내게만 속삭이는 듯했다.
시리즈 M 내가 '몸치'가 된 이유는? 점점 춤을 안 추게 됩니다.
작년 MBC에서 했던 다큐 시리즈 M 중 제1화 <어떤 인간은 왜 몸치일까?>의 일부 영상이었다.
"어머 이건 내 이야기잖아" 홀린 듯 클릭해서 보는데, 몸치로 나온 사람들은 마치 나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되어 웃음이 났고, 어설픈 춤 동작에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유튜브에서 부분 부분 보는 것이 아쉬워서 유료 결제로 처음부터 끝까지 보게 되었는데, 춤과 몸치에 대한 정의를 다시 하게 끔한 꽤 흥미롭고 유익한 내용이었다.
기억에 남는 내용 중 하나는 외모, 나이, 신체 조건이 춤을 잘 추고 못 추고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호리호리한 몸매가 춤을 더 잘 추는 것도 아니고, 젊다고 춤을 더 잘 추는 것도 아니었다.
두 번 째는 네이버 어학 사전에서 몸치란 '노력을 해도 춤이나 율동 등이 맞지 않고 어설픈 사람'이라고 하는데, 다큐에서 춤을 배울 수 없는 사람, 진짜 몸치로 태어나는 사람은 인구의 1.5%로 극소수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몸치라고 생각해 왔던 나는 춤을 배울 수 없는 1.5% 일까? 그렇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춤이 불가능한 극소수는 아닐 내가, 스스로 몸치라고 생각하는 우리는 왜 몸치가 되었을까?
다큐에 몸치로 나온 사람들은 꼭 나를 보는 것처럼 어설프게 춤을 췄는데, 나름의 리듬에 맞춰 잘 추는 순간이 있었다. 바로 촬영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불을 끈 뒤 아무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춤을 추게 했을 때였다. 놀랍게도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지지 않는 그 순간만큼은 몸치 모두 리듬에 맞는 꽤 근사한 춤을 자연스럽게 췄다.
어릴 때는 주변 어른들의 잘한다, 잘한다 하는 넘치는 칭찬과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껏 춤을 춘다. 하지만 커가면서 부끄러움이라는 감정도 생기고, 주변의 달라지는 시선과 반응, 잘한다 못한다의 평가가 생기면서 우위를 점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점점 춤을 안 추게 된다고 한다.
우리가 누군가의 동작을 보고 따라 하는 것은 뇌의 입장에서 엄청난 일이라고 한다. 즉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움직임을 보고 마치 내 뇌 안에서 마치 내가 움직이 듯 거울처럼 해석하는 신경 세포를 거울신경세포 활성화라고 하는데, 타인의 춤을 보고 잘 추는 사람들은 이 부분이 더 발달되는 것이다.
한 동작을 처음 배우면 지금껏 없었던 경로로 정보가 전달된다고 한다. 산길로 비유하면 길이 없는 숲을 걷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처음에는 어렵지만 여러 번 걷고 나면 길이 생기는 것처럼 춤도 같다고 설명한다.
뇌에서도 같은 연결이 반복되면 관련된 신경회로가 형성되고 이 회로를 따라 정보가 쉽게 전달된다고 하니, 그 수준이 될 때까지 지속하는 수밖에.
나는 요즘 길이 없는 덤불숲에 엄청나게 길을 내고 있는 중이다.
살면서 춤을 안 춰봐서 춤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스스로 몸치라고 생각하고, 누군가가 날 보고 있다는 의식이 스스로 더 못 추는 사람으로 만들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몸치라고 생각해 온 나에게, 혹은 우리에게는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
우리는 몸치가 아니라, 춤을 안 춰본 사람이다.
그럼 하나씩, 한 동작씩 해보면 되지 않을까?
불필요한 풀도 뽑고, 돌도 치우고, 같은 방향으로 한 걸음씩 걷고 또 걷고 계속 걷다 보면 언제 가는 주변도 살피며 즐겁게 걸을 수 있는 길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나만의 근사한 그 길을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