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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김치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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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X세기소년 Jun 10. 2021

Dream Club #3

김치 미러


 그날 밤은 정말 한숨도 잠에 들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바로 다음 날이 아내와 저의 결혼기념일이었죠. 하지만 아내는 모르는  했습니다. 출근하는 차안에는 여느 때처럼 길고  침묵만이 맴돌았죠. 조수석에 앉은 아내는 출근중에 그새를 못참고 드림 캡슐과 휴대용 공유망을 꺼내 연결하더군요. 아내가 드림 패치를 관자놀이에 부착하는 찰나, 저는 참지 못했죠. 침묵을 깨고 습니다.


 "그거,  지금 해야되는 거야?"

 "뭐가? 아, 아니 잠깐 10분정도. 왜, 무슨 할말 있어?"

 "아니, 오늘 퇴근하고 뭐해? 약속 있어?"

 "응. 약속 있어."

 "... 집에 몇 시에 오는데?"

 "반차냈어. 집에 있을 거야."

 "드림 클럽?"

 "응."

 "무슨 약속인데?"

 "그냥, 친구."

 “거기에 친구도 있어? 누군데?”

 “말해도 몰라. 그냥 친구야.”

 "오늘 결혼기념일이잖아. 같이 맛있는 밥이나 먹을까 했지."

 "아, 미안. 그래, 그럼 집에서 저녁이나 먹자."

 "그래. 거기서 뭐 밥을 먹지는 못하니까."

 "응. 화났어?"

 "아니. 그냥... 내가 지금 많이 참고있어. 해미야."

 "왜 그래? 평소에는 아무 말 없더니."

 "평소? 너가 말하는 평소가 뭔데?. 너 귀찮게 안 하고, 남처럼 신경 끄는 거?"

 "왜 그래, 그만해. 난 아침부터 싸우기 싫어."

 "우리가 부부야? 나한테 어떤 감정이라는 게 남아있기는 해?"

 "......"

 "그만해 알겠어. 내가 미안해."

 "미안하다 하지 마!"


 저는 아내의 말을 가로막고 그녀 앞에서 처음으로 고함을 질렀습니다. 비참하더군요. 그녀는 더이상 우리 관계에 있어 어떠한 기대조차 하지 않고 있는 듯 했죠. 더이상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어떤 말도 들으면    같았습니다. 우리는 서로 침묵을 이어갔습니다. 아내도 적잖이 충격을 받았는지 제가 소리를 지른 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회사에 도착한 저는 아내를 내려주었. 회사 주차장으로 들어가며 사이드 미러로 아내의 모습을 지켜 봤어요. 아내 역시 멀어지는  모습을 쳐다보고 있었. 문득 완벽한 거리감을 느꼈습니다. 뭐든지 제일 가까워야  부부 사이가 어느새 서로에게 가장 이질적인 존재가 되어버린 듯했어요. 그래서  알아야 했습니다. 아내의 드림 클럽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말이죠. 저는 회사 건물 지하 주차장의 가장 깊숙한 곳에다 주차를 했습니다. 그리고  안에서 몰래 꺼낸 아내의 드림 캡슐을 꺼냈죠. 운전석 시트를 최대한 뒤로 젖힌  아내의 캡슐을 개봉하고 액상을 왼쪽 귀에 주입했습니다. 이어서 관자놀이에 드림 패치를 붙이고 동기화를 시작하자 곧바로 잠에 들었습니다.


 저는 초기 설정 캡슐에서 나와 서버 동기화를 위해서 엘리베이터에 탑승했습니다. 평소 높은 곳이나 시야가 트인 스카이 뷰를 좋아하는 저와 달리 고소공포증이 있던 아내의 서버 접속 로딩 모션은 바닷속으로 한없이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였죠. 계속해서 내려갔어요. 한참을 내려가니 유리창 밖으로 어둡고 시퍼런 심해가 보였어요. 거의 빛이 닿지 않는 영역이었죠. 문득 신입사원 시절, 연애 초반 아내의 모습이 떠올랐어요. 아내가 바다 생물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아쿠아리움에 데려간적이 있었죠. 하지만 아내는 아쿠아리움을 전혀 좋아하지 않았어요. 아내는 아쿠아리움 앞에서 저에게 자연을 동경할 자격 조차 없다고 꾸짖었죠.


 한참 젊은 시절의 아내 생각에 잠기며 돌고래, 바다 거북이 등을 감상했어요. 수심이 깊어질수록 각종 이름 모를 해조류, 그리고 생전 처음 보는 심해의 희귀 어종들까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죠. 한참 심해의 풍경을 감상하다 보니 어느새 빛이 거의 닿지 않는 어두운 바다 깊은 곳까지 내려와 있더군요.  앞에 펼쳐진 깊고 어두운 바다는 말그대로 인공적인 환상이었지만 넋을 잃고 볼정도로 진짜같더군요.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들여다보지 못한 아내의 내면을 보는  같았어요. 이윽고 빛이 들어오지 않는 심해에 드리웠을 , 저는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았죠. 그리고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엘리베이터의 통유리창에 비친  모습은 다름 아닌 아내의 얼굴과 형체를 갖고 있더군요.]


 청중들이 경악 소리가 곳곳에서 펴져 나왔다. 어떤 사람들은 재미있다는 듯 짓궂게 박수를 치며 웃기도 했다. 오진은 사람들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회자 역시 굳은 표정으로 그를 응시했다.


 [제가 착각했던 거였어요. 아내의 일련번호가 담긴 캡슐로 접속해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저는 일이 이렇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신체는 완전한 제 아내였고 영혼만 '조오진' 제 자신이었습니다. 저는 어찌할 바를 몰라 접속을 취소할까 했습니다. 엘리베이터 안, 접속 강제 종료 버튼을 눌렀고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작동을 멈추며 주변 환경을 초기 세팅 캡슐로 바꾸더군요. 순식간이었습니다.


 '서버 접속을 종료하시겠습니까?'


 저는 캡슐 안에서 순간 멈칫했습니다. 잠깐 고민했죠. 아내의 몸으로, 저는 가빠진 호흡을 가다듬으며 아내 피부결을 손으로 쓸어내렸습니다. 아무래도  궁금증은 끝장을 봐야   같았죠.


 "동기화 진행."


 짧게 외치자 바닷속 엘리베이터에 있는 상태로 엘리베이터의 작은 스크린은 동기화 98% 표시하고 있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서서히 열리더군요. 동기화는 끝났고 모두가 이용하는 드림 클럽 라운지에 도착했. 얼마나 긴장이 되던지 무슨 목숨을 걸고 일하는 영화속 스파이가 된 기분이었어요. 목덜미에 맺힌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느낌이 아주 생생하게 들었습니다. 프런트 직원이 저를 보며 아내의 이름을 불렀어요. 반갑게 인사를 건네더군요.


 "심해미님,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잡아두셨던 일정으로 스케줄 진행할까요?"

 "네. 그렇게 해주세요."

 "더 필요하신 게 있을까요?"

 "아닙니다. 아니, 괜찮습니다."

 "네, 20번 게이트입니다. 그럼. 좋은 시간 되십시오."  


 "잡아두셨던 일정" 무엇인지 물어보려 했지만 괜한 의심만   같았죠. 궁금증이 폭발할 것만 같았습니다. 대낮인데도 드림 클럽 라운진에는 꽤나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저는 무빙 워크를 타고 20 게이트 앞에 도착해 접속을 시도했죠. 게이트가 열리고  앞에 제일 먼저 들어왔던 곳은 모래사장이 펼쳐진 맑은 날의 해변가였습니다. 다른 접속자들은 해수욕을 즐기는 중이었죠. 태닝을 하거나 책을 읽는 사람들도 보였어요. 저는 아내의 으로  걸음씩 천천히 해변가 주위를 맴돌았습니다.  


 그렇게 사건이 벌어졌어요. 온몸이 점점 나른해지고 긴장이 풀리더군요. 물론 제가 아닌 아내의 몸이 말이죠. 이건 분명 기분이 좋을  혹은 편안할  나타나는 보편적인 인간의 신체변화였죠. 문제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는 거예요. 모든 신경과 정신이 분리되는  같았어요. 하지만 도통 제어가 되지 않더군요. 자극을 느끼는 주체아내이자 였기에 저는  확실히  이질감과 묘한 흥분을 동시에 느낄  있었죠.


 전부 겪고나서야 알게된 사실이었지만 드림 클럽의 모든 활동은 수면을 취하는 인간의 자율신경계와는 별개로 움직이는 시스템이었어요. 드림 캡슐의 나노 봇들은 최초 드림 클럽 접속자들의 뇌에서 그들의 데이터베이스를 얻어갑니다. 최초 개인 접속자에게 할당된 나노봇의 일련번호를 등록한 뒤 계속해서 해당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용되는 시스템이에요. 쉽게 말하면 제가 주입한 나노봇은 아내의 일련번호로 등록되어 있는 나노봇이었어요. 그래서 아내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생성되는 셈이었죠.


 더 엄밀히 말하자면 드림클럽 활동을 하는 주체는 저도,  아내도 아니었죠. 아내의 성향과 유전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다른 아내였던 이었죠. 제가 이걸 설명드리는 이유는 여러분들도  아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드림클럽의 나노 봇들이 하는 모든  활동은 모두 자기 자신의 취미, 성격, 습관, 외모, 관계 등으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웬만한 드림 클럽 이용자들은 이질감을 느낄 수가  입니다. 오히려 본인의 갈망이나 염원을 이루어주는 곳이라고 믿고 있죠. 아주 생생한 꿈처럼 말이에요.  안에서 펼쳐지는 일들이 모두  스스로의 갈망이나 소원이라고 생각했을 테니까요. 그도 그럴 것이 드림 클럽 나노봇은 인간 렘수면을 하는 동안 활동하는 모든 기억들을 마치 사용자의 실제 경험과 기억처럼 저장시키기 때문이에요.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모두  점을 아셔야 합니다.  설명은 드림 클럽 설명서와 계약서에 나와있지 않거든요.


 다시 말해 드림클럽 속의 '' 꿈을 꾸는 '' 엄밀히 말해 완전히 다른 존재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라는 환상을 빌려 자기 자신마저도 속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는 겁니다.  활동의 주체가 진짜 ' 자신' 아님에도 눈치를   만큼 말이죠.


 어쨋든 저는 아니,  아내의 입가에는 미소가 끊이질 않았어요. 해변 끝에는 원목으로 지어놓은  페인트칠이 되어있는 아기자기한 펜션이 보였어요.  남자가 펜션의 문을 열고 성큼성큼 걸어 나오더군요. 맨발에 반바지, 그리고  셔츠를 입은 컬이 많은 단발을  신체가 아주 건장한 남성이었죠. 그 이후로 저는 필름이 끊기듯 어디론가 이동했어요. 계속해서 의식이 흐려지기 시작했죠. 그 와중에 저는 남자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 보려했지만 보면 볼수록 얼굴이 흐려져 갔습니다. 마치  의식에만 보이지 않게끔 조작 되어 있는  했죠. 그놈이 저를 보고 아니,  아내를 보고 희미한 미소를 짓기 시작한 것을 알았습니다.  입가에서는 환한 미소가 나오기 시작했거든요. 저는 점점  감정과 생각을 통제하기 힘들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심장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분명 연인 간의 긴장이나 설렘과 같은 감정이었어요.  쪽의 극단적인 감정이 공존했어요. 그건 말로 형용할  없는 아주 괴상한 느낌이었죠. 아내는 분명  남자를 좋아하고 있는  같았어요. 남자 저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귀에 대고 속삭였습니다. 점점 '조오진'이라는 사람 의식 감정 봉인되어 버리는  같았습니다.


 "왜 이렇게 일찍왔어. 바다 보러갈까?"

 "……."

 "들어갈까?"

 "응."


 제가 아닌 아내의 대답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아내의 모든 감정과 의식의 흐름들을 같이 생생히 느끼고 들을  있었죠. 달리 말하면 아내의 또 다른 의식이  머리 숙주로 이용해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던 거였죠. 남자는 저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마치 조종당하는  같았습니다.  몸과 마음은 그놈한테 끌리고 있었죠. 동시에 봉인되어버린 듯한 '조오진' 뇌는 필사적으로 거부하고 있었죠. 마치 줄다리기를 하는 것처럼 저는 내면에서  다른 아내와 힘겹게 싸우고 있었습니다. 남자가  문을 닫자마자 거친 숨을 몰아가며  입술을 맞대고 저를 구석으로 몰았습니다. 더러운 혀를 집어넣으며  몸을 더듬기 시작했습니다. 그놈의 턱수염이  아내의 얼굴을 비비고 쓸어내리고 있었습니다간헐적으로  안면 근육이 뒤틀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때까지 제가   있는 최고의 발악이었을 겁니다. 제 본체의 뇌신경과 나노 봇들 간의 충돌이었죠. 하지만  연가시 같은 나노 봇들은 이미 최초 약물 주입 단계서부터  자율신경계를 장악해버렸기 때문에 무용지물이었습니다. 명령을 담당하는 기관들은 이미 최면이나 약에 취한 것처럼 무기력해지고 있었죠.


 남자는 저를 방 안으로 끌고 갔습니다. 예상했던 최악의 시나리오와는 달리 그 방안에는 엘리베이터가 있더군요. 남자와 저는 엘리베이터에 탑승했습니다. 그리고 한참을 내려갔죠. 그 와중에도 남자는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습니다. 아내는 남자의 얼굴을 그윽하게 쳐다봤고 저는 의식이 희미해지는 상황에서 그놈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았습니다. 여전히 남자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놈은 제 허리를 감고 머리를 쓸어내리며 계속해서 갸녀린 팔을 쓰다듬었습니다. 어느 순간 귀가 먹먹 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해저 공간에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체감상 약 일분 정도가 지난 듯싶었죠. 곧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칠흑 같은 어둠이 눈 앞을 가렸습니다. 그러자 남자가 한두 번씩 박수를 쳤고 옅은 조명이 켜졌습니다. 아쿠아리움과 같은 넓은 공간이 눈 앞에 펼쳐졌습니다. 자세히 보니 "아쿠아리움과 같은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바다 속이었어요. 예, 맞습니다. 그것도 심해 한가운데였죠. 해변가 집에 지하를 깊게 뚫어 심해 한가운데에 통유리로 방을 내놓은 듯했어요. 꿈이니 환상이니 생각할 겨를도 없었어요. 솔직히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예술 그 자체였어요. 방은 모두 두꺼운 통 유리로 둘러싸여 있었고 심지어는 마루마저도 통유리였습니다. 발아래로 각종 심해어와 각종 해조류들이 헤엄치며 움직이고 있었어요. 그중 이마 한가운데 긴 더듬이를 통해 자체 발광하는 심해어가 눈에 띄더군요.


'암컷 초롱 아귀'.


 머릿속에 그 어종의 이름이 단번에 떠올랐습니다. 아내가 좋아하는 심해어종인가 싶었죠. 제가 아닌 아내의 뇌에서 기억하는 이름이었으니까요. 남자는 어느새 바 테이블에서 칵테일 한잔을 만들어 갖고 와 저에게 건넸어요.


 "암컷 초롱 아귀."

 "맞아. 암컷 초롱 아귀."

 "수컷은 암컷보다 훨씬 작아. 지구 생물치고 일반적이지 않지."

 "15배 정도."

 "맞아!”

 “수컷은 암컷없이 살 수가 없어. 초롱 아귀 암컷에게는 특별한 빛이 있거든. 그 빛으로는 먹잇감을 끌어와. 그래야 수컷이 밥을 먹고살 수 있거든."


 제 몸은 암컷 초롱 아귀라는 생물에 대해 상당히 많은 지식을 알고 있었어요. 제 주위의 모든 환경들과 그는 저를 크게 흥분시켰어요. 제 몸은 그놈에게 완전히 달아올라 있었죠. 그놈도 마찬가지였어요. 몸이 그놈과 뒤섞이기 시작했어요. 그놈의 손과 입술은 다시 한번 제 아내의 신체를 더듬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서로의 옷을 천천히 벗기기 시작했어요. 그놈이 저에게 서서히 들어왔고 온몸이 찌릿찌릿하며 저려옴도 느꼈습니다. 제 의지와 상관없이 이제 신체는 그에게 모든 것을 허락했죠. 서로의 배가 맞닿았고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어요.


 더이상은 말하기가 너무 힘이 듭니다. 네, 맞아요. 저는 그 남자와 잠자리를 했습니다.]


 오진은 호흡이 힘든 듯 숨을 헐떡거렸다. 사람들이 수군댔고 충격적인 반응들을 제각기 다르게 보이고 있었다. 대부분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일부 젊은이들은 짓궂은 듯이 낄낄거리며 웃어댔다. 반면, 사회자 역시 당혹스러움을 감추는 건지 어떠한 표정의 변화도 없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오진을 주시하고 있었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귀를 틀어막고 홀로그램에서 시선을 돌리기도 했다.


 [더 비참한 건 아내가 그놈과 함께 느끼는 것들을 저 역시도 동시에 느꼈다는 거였어요. 표정부터 소리, 촉감, 모든 것들이 생생하게 제 뇌의 기억 속으로 저장되었죠. 마치 제가 했던 행위들처럼요.]


 오진은 다시 한번 그때를 회상하는 듯했고. 상당히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 이후로는 기억이 없어요. 깨고 보니 차 안이었어요. 저는 깨자마자 꿈속에서의 일을 떠올렸어요. 그놈의 눈 코입, 피부결, 목소리, 표정 그리고 살, 심지어 그놈의 흉측한 그곳까지 모든 것들이 익숙한 촉감처럼 생생하게 전달되었어요. 그놈과 몸이 섞이며 느꼈던 쾌락의 순간들 역시 몸이 기억하고 있었어요. 저는 갑자기 자신 스스로에게 역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매스꺼러움을 참을 수 없었죠. 차문을 열자마자 구역질을 했어요. 그리고 엎어져 한없이 울었어요. 저는 서럽게 울음이 터졌고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죠. 아내의 이름을 부르고 싶었지만 마찬가지로 입 밖으로 말이 안 나왔어요. 입 밖으로 나오는 소리의 모든 발음은 뭉개지고 헛나가고 있었죠.


 저는 그때의 충격으로 뇌손상을 입었어요. 자율신경계 중 일부 신경이 손상되었다는 진단을 받았고요.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저는 그 이후 일부분의 기억을 잃었어요. 뿐만 아니라 상황이 악화돼서 실어증 진단까지 받게 되었죠. 기억이 돌아왔을 때, 아내는 이미 제 곁에 없더군요. 저도 그렇고 아내도 서로 마주하고 살아갈 자신이 없다는 걸 너무나도 뼈저리게 느꼈던 걸까요. 서로의 존재 자체가 끔찍한 흉터였어요.


 그렇게 폐인과도 같이 몽롱한 정신 상태로 한 달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테디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어요. 바로 아내의 사망 소식었죠. 하지만 가지 않았습니다. 믿기 싫었거든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저를 비난하고 싶으시다면 비난하셔도 좋습니다. 저도 이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떠들며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조차 무척이나 괴로웠으니까요. 저는 죽어도 마땅합니다. 하지만, 굳이 이 자리를 빌어서 여러분들에게 한 가지 당부의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이 자리에 나오기까지 수십번도 넘게 고민했습니다.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언어 대변기의 힘을 빌려 호소하는 제 자신이 수치스럽기도 했고, 또 무엇보다 고인이 된 아내에게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몇번이고 오늘을 위해 마지막으로 용기를 내어봤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은 기필코 이 진실을 알고 저와 같은 고통을 겪지 않았으면 합니다. 드림 클럽은 절대 상용화되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들은 속고 있습니다. 인간의 범주를 거스르는 기술입니다. 우리는 결코 꿈을 꾸는 것이 아닙니다. 테디는 여러분의 뇌를 갉아 먹고 비극을 만들고 있습니다.]


 오진의 이야기가 끝나자 사람들의 반응은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했다. 몇몇은 박수를 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어떤 반응을 보여아 할지 몰라 그저 침묵을 유지할 뿐이었다. 그중 일부는 응원의 목소리를 내며 그를 북돋아 주기도 했다. 오진은 고개를 숙인체 흐느꼈다.


 [네, 다시 한번 용기 내어 본인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준 조오진 씨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사회자는 서둘러 두 번째 이야기를 진행했다. 그의 진행에 따라 홀로그램은 시작 전과 같은 초기화면으로 돌아갔고 조명은 다시 객석을 어둡게 만들었다. 그리고 두 번째 사연자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이어서, 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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