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날씨 : 욕쟁이 소녀
욕하기 좋은 날은 따로 있지
날씨가 포근하여 정신줄을 놓고 있는데 어디선가 육두문자가 들려옵니다.
'지금 나에게 욕하고 있는 건가???'
아니겠지요. 아닐 거예요. 주위를 둘러봅니다. 육두문자 소녀 말고 저 밖에 없어요.
통화겠지요. 통화일 거예요. 요즘 친구들은 욕을 무슨 라임 넣는 듯, 후렴구 부르듯 하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그 소녀와 건널목 신호등 앞에 단둘이 딱 멈추어 서고 맙니다.
"시베리아 시베리 시베..."
포근한 날씨인데 마음이 추운가 봅니다. 시베리아라니요. 오늘 같이 포근한 날씨에 말이죠.
하는 수 없이 소녀의 육두문자에 잠시 귀를 기울여 보기로 합니다. 한편으로는 무서운데, 한편으로는 실소가 나오지요. 그래도 마스크를 써서 웃음이 새어 나오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웃픈도 아닌 무낀(무서운데 웃긴) 상황이지요.
"시베리아, 족발, 아름답고친한아기"
냉채 족발이 먹고 싶나 보네요. 예쁘고 친한 아기 같은 친구와 말이지요. 저는 그래도 따뜻한 게 좋은데 말이지요. 젊어서 그런가 봅니다.
"욕을 아는 게 이 세 개 밖에 없어, 아 시베리아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배워두는 건데 시베리아"
안타깝습니다. 욕을 겨우 세 개 밖에 모르다니요. 저는 욕을 하진 않지만 알기는 무지 많이 알고 있지요. 맘만 먹으면 새로운 욕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순간적으로 '욕을 몇 개라도 더 가르쳐 주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아니요 아니요 절대 옆을 쳐다보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그 욕 세 개는 어디서 배웠을까요? 하기야 요즘은 욕도 학원에서 배울지도 모르지요. 욕도 잘하면 더 쎄 보일 수도 있으니까요. 세 개만 배우다 만 것으로 보아서 태권도로 치면 흰띠, 피아노로 하면 체르니 100을 막 시작하다 그만둔 모양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학원을 그만둔 것일까요? 안타깝습니다만.
육두문자도 필요한 세상이지요. 욕이라도 하지 않으면 참을 수 없는 세상이기도 하고요. 육두문자 소녀는 비호감 대통령 후보에 미래가 절망적이어서 욕을 했을 수도 있고, 방역 패스를 청소년과 학원에까지 강요한 꼼수에 짜증 났을 수도 있지요. 불공정한 세상과 줄 세우기에 참을 수 없었을지도 모르고요. 그런데 겨우 세 개의 욕 밖에 모르다니요. 그래서 자주 돌려막기를 하는 걸까요? 안타깝습니다만.
그런데 욕쟁이 소녀가 욕의 개수 말고도 간과한 것이 하나 있어요.
오늘 같이 포근한 날은 욕하기에는 별로라는 것이지요.
욕은 역시 매섭게 추운 날 해 주어야 제맛이거든요.
'이런 시베리아 족발 춥네 아름다운친구아기 같이' 말이지요.
포근함은 육두문자 마저 안온하게 하지요. 그런 날씨였지요.
그래서 육두문자에도 그냥 무꼈(무서운데 웃겼)던 것이었지요.
안타깝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