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십니까?"보통은 신에게 행복을 갈구하지 신에게 행복하냐고 묻지는 않는다. 신은 당연 행복한 존재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인간에게 그 행복을 조금이라도 나누어 줄 수 있지 않겠는가? 만약 신이 불행하다고 느끼거나, 혹여 시련이라도 당해 방황한다고 생각해 보라.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방황하는 신이라니? 그러면 인간은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신에게 소개팅을 시켜주거나 '솔로지옥' 출연을 권할 수 도 없지 않은가? 당근 그럴 리 없겠지만 만일 신이 행복하지 않다면 아무리 미물인 인간이라도 신에게 위로를 건네야 하지 않겠는가? "신이여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아 손발이 오그라 든다.
신은 또 이상한 질문을 할 것이라는 것을 이제는 익히 예상했다는 듯이 뜬끔없는 질문에도 노련하게 노 코멘트 미소로 일관했지만, 그렇다고 신이 "나 지금 행복하지 않아"라고 하소연할 수 없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신은 인간의 아부가 필요할 지도 모른다. 신을 위해 찬미하고 신을 끊임없이 칭찬하는, 일찍이 '칭찬은 신도 춤추게 한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아니 고래였나 코끼리였나? 하여튼 관심과 칭찬이 고픈 신은 가끔 돼먹지 못한 인간이라도 신을 위해 노래하는 척하는 신이 최고라고 치켜세우는 아첨꾼을 두고 보고있을 수도 있다. 이런 사단은 다 신이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에 발생하는 심각한 부작용이 아닐수 없다.
신께 천국과 지옥 통합 인텔리전트 첨단 빌딩을 헌납하여 갓물주의 기쁨과 행복을 선사하고 엄청난 명성을 선물로 받은 단테와 달리 그 대척점에 있었던 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조반니 보카치오'였다. 단테가 '신곡'이라는 불후의 연구보고서로 신을 '행복'하게 했다면, 보카치오는 '데카메론'이라는 '인곡'이라 불리는, 신에게는 다소 마음에 들지 않는 연구 보고서를 제출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 신이 이때에도 보카치오에게 단테의 신곡을 보여주며 "보고서는 이렇게 쓰는 거야"라는 힌트를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보카치오는 안타깝게도 그 형식만 참고하고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게 구성한 것 같다. 즉 100편이라는 숫자는 단테와 똑 같이 맞추었지만 내용은 이상하게도 신에 대한 계획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에 대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데카메론은 그 이름 자체가 '데카', 즉 10이라는 뜻과 메론, 즉 일(日)이라는 뜻의 합성어이다. 그러나 메론, 그렇다 우리가 아는 그 과일 메론은 멜론이라 일(日) 일리 없고, 사실은 '헤메라'라는 말의 조합이니 '멜론TOP10'은 잊어주시길. 그러므로 정정한다. 메론이 아니라 헤메라의 합성어이다.
그렇게 10일 동안 하루에 10개의 이야기씩 총 100개의 이야기가 바로 데카메론인 것이다. 여기에 이야기의 화자도 10명이 등장해서 단테 이상으로 숫자를 맞추긴 했다. 그런데 여자 7명, 남자 3명 총 10명인데, 이것은 누가 보아도 남자가 유리한 게임이 아닌가? 그러나 이 10명의 화자들은 여기에 '솔로탈출'하러 모인 것은 아니고 그 당시 유행하던 흑사병(페스트)의 공포를 피해 시골에 모인 사람들이었다.
이 10명의 남녀들은 오늘날로부터 수백 년 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요즘도 남아있는 '왕게임'을 하게 되는데, 당연히 왕게임 하면 헌팅포차에서의 커플 탐색전 같은 유치한 상상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고 왕이 된 자가 돌아가며 이야기를 하는 식의 왕게임이었다는 것이 놀라운 사실이다. 물론 이야기가 끝나면 노래와 춤, 짐작 건데 회식이 이어졌는데, 그러고 보면 이 이야기들은 혹시 죽을지도 모르는 흑사병이 창궐하는 상황에서 단지 지루한 시간을 때우려고 했기보다는 꽤 진지하게 이야기에 진심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브런치에 관심 있는) 작가들이 아닌 이상 그렇게 모두가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무려 100가지 이야기를 했었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들이 정작 관심을 끌었던 것은, 그 당시 치고는 꽤 에로틱했었나 보다. 지금 들으면 전혀 야하지 않을 이야기였겠지만 로맨틱 코미디에서부터, 썸, 사랑, 불륜, 원나잇, 관능적 묘사, 특히 성직자들의 일탈과 유혹, 하룻밤까지 찐한 이야기가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배경이 된 흑사병은 이런 이야기들을 정당화하기 위한 안전장치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 죽을지 모를, 신의 힘으로도 막을 수 없는 흑사병 앞에서 하지 못할 이야기가 무엇이란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상당히 오랫동안 금서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9일 동안은 꼭 고결하지만 않은 사랑과 배신, 불륜과 욕망을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10일째 마지막 날에는 왕과 성직자와 같은 높은 신분의 사람들이 명예롭게 관용을 베푸는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더군다나 이 모임은 원래 12일 동안 이루어졌는데 그 중간 수난일인 금요일과 그다음 날을 제외하고 10일로 짜인 점, 10일째의 이야기는 앞 9일에 비하여 꽤 고결하게 마무리되었다는 점에서 보카치오가 이야기를 에로 막장으로 끌고 갈 의사는 없었음을 보여준다.
데카메론의 이야기는 100편에 달하고 오늘날 읽으면 단테의 신곡처럼 난해하거나 오히려 야하지 않고 싱거울 수도 있기에 '넷플릭스' 시리즈 '데카메론'으로 학습을 대신하기로 한다. 이야기의 배경은 페스트가 창궐한 역시 중세이며, 한 성주가 먼 친척들을 시골에 있는 자신의 성으로 초대하면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그러나 도착해 보니 성주는 이미 죽어 있었고, 그가 남긴 성과 재산을 차지하기 위한 귀족들과 하인들의 암투와 사기, 배신, 원나잇, 불륜, 사랑이 블랙 코미디를 이룬다.
다시 돌아와 이 '데카메론'에 관심을 둔 이유는 이 또한 신의 의뢰에 따라 작성되었다는 강한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보카치오는 이 책 외에는 상당히 학술적인 책만을 집필했는데, 유독 이 책만이 창작물에 가까웠다고 한다. 보카치오는 한때 이 책을 모두 불태워 버릴 생각을 할 정도로 약간 이 이야기들에 창피해한 것 같은데, 그 당시의 인문학자 페트라르카가 만류하여 겨우 이 책이 보존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결국 그에게 단테에 상응하는 불멸의 명성을 안겨 주었던 것은 그 어떤 학술서도 아니라 이 데카메론이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렇다면 신이 이런 연구 보고서를 의뢰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흑사병의 시기는 신이 그동안 이룩한 모든 신의 시스템에 대해 자기 파괴적 경향을 보이던 때였다. 마치 신이 그동안 신에게 아첨과 그것을 빌미로 신을 이용하려 했던 모든 불행에 대해 더 이상 참을 수 없이 분노를 표출하며 자기 자신마저 부정하며 모든 것을 뒤집어 버리던 시기였었다. 그 대신 신은 보카치오에게 비밀리에 인간의 본질적이고 그대로의 사랑에 대해 연구 보고서를 의뢰하며 인간의 본질적 사랑과 욕망에 대해 성찰했었었다.
이때 신은 정녕 행복하지 않았다고 본다. 그래서 아첨과 기만에 환멸을 느낀 나머지 인간의 본연의 모습에 대해 보카치오를 통해서 물었을 수 있다. 그리고 진정한 행복은, 설사 흑사병과 같은 최고의 불행의 시대라 할지라도, 때론 욕망을 따라 사랑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혹 죽거나, 또는 살아남거나, 이야기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고결하건 그렇지 않건 그것 또한 인간의 본연의 사랑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신은 과연 행복할까? 인간이 행복해야 신도 행복하다. 신이 행복하다고 해서 인간이 행복한 것은 아닐 테니까. 신은 지옥을 만들어서 막 고문하고 막 죽이고 강하게 처벌하는 것으로 행복을 느끼는 사이코패스는 절대 아니다. 그러나 신에게 교언영색 아첨으로 신을 사이코패스로 만든 것에 대해 화가 많이 났었고, 그래서 불행하다고 까지 느꼈을 것이 틀림없다. 그 대가는 물론 무시무시했다. 무려 흑사병이었으니까. 그럼에도불구하고 불행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여전히 행복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을 통한 신의 메시지는 의미심장하다.
검색을 하다 보니 '데카메론 타로카드'란 다소 야한 그림이 나와있는 카드가 있어서 놀랐다.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은 그렇게 타로카드를 통해 신의 뜻을 여전히 여전히 전달하고 있는지도 모르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니 신이 에로 소설도 모자라 무슨 '타로카드'라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