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mile Sep 08. 2024

신은 야행성인가?

feat 잠

어젯밤 늦게까지 넷플릭스와 유튜브를 보아서 잠을 많이 자지 못했다. 그랬더니 약간 비몽사몽이다. 이런 상태라면 신에게 또 무슨 헛소리를 할지 모른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면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약간 술에 취한 것과 비슷한 상태에 이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취한 것처럼 기분이 들뜨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가라앉는 취기라고 할까? 무기력감과 만사 귀차지즘이 찾아온다.


그렇다고 신에게 어젯밤 잠을 잘 못 잤으니 나중에 만나자고 할 처지는 아니다. 신이 진하고 향긋한 커피 한잔 내려주었으면 좋으련만 그럴 리도 없지 않은가? 신은 인간의 카페인 같은 것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신은 언제나 쌩쌩하고 활기차고 기운이 펄펄 넘치는 바이타민 그 자체여야 하니까.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인간을 신이 어찌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문득 궁금해졌다. 신도 과연 밤에 잠을 자는가? 신도 꿈을 꾸는가? 심지어 AI에게 신의 자리를 빼앗기는 악몽을 꾸는가? 에 대해서. 다만 신은 지금까지의 철저한 사생활 비공개 정책으로 볼 때 이러한 신의 프라이버시에 대하여 친절하게 알려줄리는 만무하다. 알아내려고 한다 해도 개인정보법 위반을 들먹이며 이 계약을 파기하고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려 할지도 모른다. 신도 '개인'이라고 우기다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신도 나름 감추고 싶은 일들이 고 흑역사 같은 것도 있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알려주지 않으면 추측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신이 잠을 잘까? 안 잘까? 에 대하여 내기해 볼까?"


그런데 신은 고사하고 먼저 인간이 잠을 자는 이유가 궁금하다. 눈떠 있는 시간도 부족한데 굳이 이렇게 오랜 시간 잠을 자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잠을 자는 동안 신진대사를 높여 뇌와 몸을 쉬게 하여 회복할 시간을 준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뿐만 아니라 슈퍼히어로, 빌런 모두 공통이다. 아무리 능력이 출중한 슈퍼히어로라 해도, 아무리 악명 높은 빌런이라고 해도 지금껏 잠을 자지 않고 세상을 구하거나 망하게 하려고 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러므로 이 잠을 자야 하는 '빳데루'는 절대 거스를 수 없는 페널티인 것이다. 참고로 '빳데루'를 모르는 요즘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이는 레슬링에서 엉거주춤 엎드려 자세로 상대방이 공격하기 좋게 페널티를 주는 것을 의미한다. 이 빳데루 페널티를 극복하는 방법은 휘슬이 울리자마자 바로 땅바닥에 뻗어 버려, 마치 잠을 자고 있는 듯 땅에 딱 붙어있어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이렇게 잠이란 메커니즘의 신비로움, 아니 어떠한 슈퍼히어로나 빌런도 절대 저항하거나 거스를 수 없는 두려움으로 볼 때 이의 설계자는 신이라고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지금껏 그 누구도, 설령 신이라고 해도 절대 이 잠을 극복하거나 자유로운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심스럽게는 신도 잠을 잘 것이라고 추정하게 된다. 즉 신도 카페인이 필요한 것이고, 신도 커피를 즐겨 마실 수 있으며, 신과 카페에 앉아 커피 한잔의 여유를 누릴 수 있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잠도 자지 않고 일하는 신이라 생각하면 신이 좀 안쓰러웠는데, 신도 잠을 잔다고 생각하니 내 마음이 다 편안해진다. 신에게도 쉴 수 있는 시간, 인간사를 모두 잊고 깊은 잠에 빠졌다가 다음 날 개운하게 일어날 수 있다는 신의 행복 라이프를 생각하니 "브라보!"라는 말이 자칫 튀어나올 뻔했다.


그러나 신도 이렇게 잠을 푹 자고 난 후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는 리셋 시스템을 처음부터 실행하지 않았다고 본다. 앞서 말한 데로 그렇게 많은 시간 잠을 자는 것은 시간적으로 대단한 효율의 낭비이며 신체회복의 미명아래 그렇게 장시간을 기절시켜 놓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24시간 모든 인간이며 모든 동물이 잠을 안 자고 깨어있었다고 생각해 보라. 분명히 심각한 문제가 일어났을 것이다. 간단하게 밤낮이 점점 사라지고, 수면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지금의 현실을 보면 답이 나온다. 퇴근 시간 없는 24시간 민원이라니? 주 100시간 노동이라니? 잠잘 필요가 없는 빌런이라니? 이는 신의 시스템에도 엄청난 부하와 문제를 일으켰음에 분명하다.


그래서 신은 셧다운을 고안해 냈을 것이다. 그것도 매우 공평하게 슈퍼히어로고, 빌런이고, 인간이고, 동물이고 모든 살아있는 것을 죽음의 상태에 냉동 보관 시키는 셧다운 말이다. 드디어 신은 여러 가지 문제를 수습할 시간을 벌게 되었다. 이는 마치 시간이 흐르지만 정지된 것 같은 효과를 나타낸다. 아무리 신이라도 잘못 처리한 것은 수정하고, 뭔가 바꾸어야 할 것은 갈아 끼워야 할 여유가 생겼다. 전산 업데이트나 도로보수가 잠자고 있는 밤에 작업하는 것을 보면 이해가 쉽다. 심지어는 어느 정도 '조작'도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잠을 자는 동안 일부 기억을 싹우고 포맷하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래서 신의 모토는 '우리는 낮을 지향하고 밤에 일한다'일 수도 있다. 그러고 보면 '잠'은 신이 고안해 낸 엄청난 아이디어 상품이 아닐 수 없다. 단순히 시간을 낭비하고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신에게는 최고의 효율성을 위한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신은 이 많은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서 '야행성'일 수밖에 없다고 여겨진다. 신이 뭔가 다크서클이 가득히 피곤해하던 이유를 이제 알 것 같다. 신에게 진한 커피 한잔을 바라기보다는 오히려 신에게 신에게 커피 한잔을 올려 주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명색이 신이니 빽다방 말고 스벅으로 쿠폰 드릴게요, 거 연세도 있고 하니 찬 걸로 말고 따뜻한 라테 한잔!"


그런데 신은 잠도 자지 않고 이제 24시간 공부한다는 AI에게 1등의 자리를 위협받고 있다. 잠도 자지 않는 빌런은 신에게도 지금껏 처음일 것이다. 그렇다면 신의 규칙을 어긴 이 빌런에게도 과연 '셧다운'을 신은 명령하게 될까?


"응 전기를 끊어 버리려고"



이전 12화 신의 최애 계절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