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신의 성격 연구 보고서'도 10주 차가 되었으니 회식을 한번 할 때도 되지 않았냐고. 지금껏 신에게 회식을 시켜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한 인간이 있었을까? 게다가 신은 클라이언트인데 회식을 도리어 쏴야 할 판이지만, 신의 체면에 어찌 인간에게 회식의 짐을 지우겠는가? 등등 생각이 복잡해지고 있는데 신은 그러자고 했다. 신생처음 이상한 것을 물어보고, 더 이상한 것을 자꾸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 신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된 것일까?
'걸려들었다!'
미안하지만 사실 신을 상대로 낚시질을 한 것이었다. 회식은 미끼였고 신은 그것을 고래가 낚아채듯 덥석 문 것이었다. 한 가지 걱정은 신이 작은 물고기가 아니라 고래보다 더 큰 신이라는 점이었다. 잘못하다가는 낚싯줄이 끊어지다 못해 아작 날 판이 될지도 모르는 것이니까.
사실 회식을 제안한 이유는 신의 입맛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신의 입맛에 대해서 궁금해 본 적이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신을 사랑한다는 고백은 다 가짜다. 사랑하는데 어찌 식성을 모르고 뭘 먹고 싶어 하는지 궁금해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지금 그것을 묻고 있는 것이다. 신의 식성격이 뭔지? 신이 먹고 마시는 것이 뭔지? 신은 살기 위해 먹는지 아니면 즐기기 위해서 먹는지? 신은 신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먹지 않을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먹는 즐거움이 없다니 아무리 신이라 해도 신을 포기하고 차라리 먹는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신이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는 것은 다행히도 아닌 것 같다. 신화에서 보면 신들은 먹고 마시기를 매우 즐겨한 전력이 익히 전해오기 때문이다. 먹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마시기도 했다. 신은 특히 주류를 아주 좋아했던 것 같다. 오죽하면 술 담당 주신이 있을 정도이니 신이 전혀 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그러므로 신이 회식을 흔쾌히 승낙하리라는 것은 익히 예상한 결과였다. 높은 분들은 회식을 좋아한다는 짧은 경험이 그렇다.
궁금한 것은 신은 베지테리신 또는 비건이냐 하는 것이다. 뜬금없이 신을 채소, 과일 신으로 가두려 한다는 비난이 있을 수도 있지만 신의 건강을 염려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신은 베지테리신, 또는 비건의 신이어야 뭔가 어울릴 것 같아서이다. 신이 고기를 탐하는 대신 건강하고 친환경적인 채소, 또는 과일주의 신이어야 어울릴 것 같지 않은가? 하지만 야채나 과일은 장식용 곁가지일 뿐 신의 메뉴에서 메인이었던 적은 기억에 없다. 신은 오직 고기를 그것도 그 당시 첨단 방식 숯불구이 향으로 드시기를 좋아하시지 않았던가? 이로 볼 때 신은 상당한 미식신일 가능성이 높다. 식성도 매우 까다로워서 투뿔 한우 이상 회식은 되어야 비로소 회식에 나서곤 하였기 때문이다. 단테한테는 탐식을 지옥행이라고 귀띔해 주었으면서 미식을 즐기는 측면은 약간 아이러니다.
육식의 이미지가 부담스러웠는지 신은 베지테리신으로 환생한 척하여 한동안 극한 다이어트를 한 것도 같다. 갑자기 살생을 금하고 비건을 강조한 때는 신에게 뭔가 심각한 심경의 변화, 또는 몸, 뱃살의 변화가 있었던 때였을 것이다. 뭔가 지금까지 고기의 신과 다른 이미지를 시도한 것은 신이 단순히 베지테리신을 시도해 본 것이 아니라 그동안 너무 먹고 마셔서 혹독한 다이어트가 필요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럼에도 인간에게 동물과 달리 채식주의나 육식주의, 한쪽으로 방향을 두지 않고 양쪽을 다 맛볼 수 있게 한 것은 뭔가 여전히 미식신 다운 면모를 나타낸다. 인간으로 하여금 미리 이것저것 맛보게 하고 새로운 요리법도 끊임없이 고안해, 단순이 숯불구이만 계속 먹을 수 없고, 최고의 요리를 맛보겠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먹방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이다. 신은 단테를 통하여도 탐식에 대해 절대 지옥행을 강조하며 이를 경계한 바 있다. 그러나 유튜브에서도 먹방의 인기는 끊이지 않고 구독자의 수위를 차지하는 것은 역시 먹방이다. "먹방이 신의 인기를 이미 대신한 지 오래라고요"
먹방의 신격화 현상은 그 욕망의 단면을 보여준다. 욕망하지 말아야 할 것과 욕망 사이의 갈등이다. 또는 욕망의 비 균형적 쏠림으로도 보인다. 먹는 것 외에 기쁨이 없는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비만 치료제가 세계 제일의 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신도 익히 숯불구이 폭식과 다이어트를 모두 경험해 봤듯이, 신이 경쟁해야 할 오늘날 최대의 경쟁 상대는 바로 먹방인 것이다.
그렇다면 신은 불닭볶음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보다 자극적인 것, 보다 달콤한 것, 보다 취하는 것은 신의 성격을 더욱 자극시켰다는 것을 신도 경험해 봐 알고 있다. 미식가이면서도 신이 싱거운, 자연에 가까운 맛을 강조한 것을 넘어 베지터리신의 시기를 보낸 것은 그런 이유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신은 베지터리언이나 비건 자체가 되기보다는 본래의 균형을 원하는 것 같다. 단적으로 고기는 먹지 않되, 야채로도 고기맛을 내서 더 맛있게 더 많이 먹을 궁리들은 신이 원하는 의도와 다를 수 있다. 그렇다고 소, 돼지, 닭만 돌려먹고 어떤 것만 먹고 안 먹는 것도 심각한 불균형이다. 너무 과하게 먹고 너무 맛있게 먹고 토하고 살찌고 다이어트하는 것이 불균형이듯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신은 모처럼 회식에서 과식하지도 취하지도 않고 오히려 소식하였다. "신의 소식? 신의 다이어트스테이? 이거 되겠는데!"
"소식이 미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