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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에게

feat 빛과 실

by Emile
삶은 짓누르는 고통스럽게 어두운 소설


"2012년 봄, '삶을 껴안는 눈부시게 밝은 소설'을 쓰려고 애쓰던 어느 날, 제목을 짓고 앞의 20페이지 정도까지 쓰다 멈춘 것은, 그 소설을 쓸 수 없게 하는 무엇인가가 내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었다."라는 문장을 읽은 후 이 작가의 글을 쉽게 읽을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녀는 '어두움', '고통', '북향'과 같은 것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에 비해 저는 '밝음', '기쁨', '남향'과 같이 전혀 반대되는 방향, 즉 눈부시게 밝은 쪽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빛과 실'이라는 신간을 접한 어느 날, 노벨문학상의 수상 소감에 흥분하면서도 여태껏 그녀의 그 유명해진 소설들을 읽을 수 없게 하는 무언가가 내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요. 아마 읽었더라면 책을 끝까지 읽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 대신 그나마 아주 밝게 나온 - 심지어 제목에 '빛'이란 글자가 들어간 - 노벨상 수상 후의 첫 신간을 찾아 처음으로 '한강'이라는 작가를 읽습니다.


빛이 아닌 어둠의 아우라


그러나 '한강'이라는 이름이 없었으면 이 책은 그리 주목받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선 책의 두께가 얇고 사이즈도 작아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신간이라고 보기에는 명성에 걸맞지 않아 보였지요. 심지어는 책 표지의 색깔마저 흑백의 알 수 없는 사진과 어두운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었기에 그런 느낌을 더 자극합니다. 물론 사람과 마찬가지로 책도 그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겠지만 그 이전에 벌써 노벨문학상의 수상을 맞아 출판사에서 급하게 글들을 모아 책을 펴낸 것을 의심하는 선입견이 깔린 상태였으므로, 작가의 책과의 첫인상에서 성공했다고는 말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나면, 그 수면 밑의 '어두움', '고통', '북향'의 느낌이 책 표지에도 그대로 들어가 있다는 것을 곧 알게 됩니다. 더군다나 그런 겉모습의 초라함에 비하여 문장들은 여전히 수려하여 빛나기까지 합니다. '빛'이 아닌 '어둠'의 아우라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만큼 문장 문장들이 시적 운율을 타고 "가장 어두운 밤에도" 방향을 잃지 않고 책의 걸음을 재촉하지요. 그러다가 비로소 어두운 고통에만 쌓여 있을 것 같은 그녀에게 비로소 밝은 면이 드러납니다. 그것은 뜻하지 않게 바로 "북향 정원"의 "정원 일기"라는 항목에서였습니다.


거울을 통해 비취는 햇볕


작가의 전생이 도대체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질 정도로 그녀는 이번에도 하필 집에서 좁은 '북향 정원'을 골랐습니다. 햇볕이 들지 않아 과실이 열리는 나무는 심기 힘든 그늘진 정원입니다. 그래도 나름 조경사의 도움을 받아 햇볕이 강하지 않아도 좋을 나무들을 심고 정성스레 생명들을 가꾸어 내는, 전혀 작가 답지 않은 일들을 수행하지요. 아닙니다. '한강' 작가야 말로 그늘진 '북향 정원'에서 밝은 과실의 글은 아니지만 생명력 질긴 글을 키워내는 것이 가장 적합한 작가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방법이 거울을 이용해서 햇볕의 반사광을 비추어 햇볕을 쐬게 하는 모습이 흥미롭습니다. 처음에 세 개로 시작했던 거울은 여덟 개 까지 늘어났고 햇볕의 방향에 따라 시간마다 거울의 반사각을 조정해 주는 일을 마다하지 않지요. 글 쓰는데 그토록 집중하는 작가가 시간마다 여덟 개의 거울을 해의 움직임에 따라 각도를 돌려놓는 모습이 상상만 해도 웃음이 나옵니다.


삶을 껴안는 눈부시게 밝은 소설


작가가 진딧물, 선녀벌레, 응애와 싸우는 장면은 압권입니다. 마지못해 살충제를 쓰고서 서늘하고, 무섭고, 쓸쓸한 마음을 느끼는 것은 작가가 얼마나 '고통'에 민감한지를 다시금 느끼게 합니다. 그녀에게 북향 정원은 점차 '초록'의 벽을 갖게 만들고, 키보다 높이 자란 불두화를 경이롭게 바라보게 하며, 마침내 라일락 향이 가득한 대문을 마주하게 하지요.


이 장면에서 비로소 2012년 제목만 짓고, 20페이지 정도까지 쓰다 멈춘, 삶을 껴안는 눈부시게 밝은 소설을 그녀가 다시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봅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를 깨닫게 되었던 순간처럼, 이제 다시 처음 질문으로 거꾸로 뒤집어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그 해답을 찾을 때가 분명히 왔다고 '한강' 작가에게 속삭여 보지요. 그것은 삶을 짓누르는 고통스럽게 어두운 소설이 삶을 껴안는 눈부시게 밝게 현재를 구했듯이, 삶을 껴안는 눈부시게 밝은 소설이 어둡게 삶을 짓누르는 고통스러운 과거도 치유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녀도 이제 20페이지 이후의 눈부시게 밝은 '햇살 정원'에서 과실나무를 키워볼 수 있을까요?



빛과 실

한줄 서평 : 삶을 껴안는 눈부시게 밝은 소설을 다시 쓸 수 있기를 (2025. 06)

내맘 $점 : $$$$

한강 지음 / 에크리 (202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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