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관계

by 기운찬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즉 '나'라는 존재는 타인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도록 설계되어있다. 만약 적절한 관계를 맺지 못할 경우 여러 경보장치가 울린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외로움'이다. 외로움은 관계에 위험이 감지될 때마다 이렇게 말한다. '혼자 있지 마', '함께 있어야 해', '사랑받고 싶어' 이러한 경고들은 생물학적 생존과 관련이 깊다. 인간은 혼자서 살아남기엔 너무도 약한 존재이기에 관계를 통하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경고를 '나'라고 믿는다면 끝없는 고통에 빠진다. 예를 들어, 친한 친구가 내가 아닌 다른 친구와 어울리면 질투가 일어나고, 누군가가 나를 좋아한다고 하면 내 모든 것을 주는 것이 아깝지 않고, 혹시 상대가 나를 떠날까 두려워 자신의 본모습을 꽁꽁 숨기는 등의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이렇듯 우리는 쉽게 함정에 빠진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경보 울림을 '나'라고 굳게 믿을수록 스스로를 부적절한 관계속으로 이끈다.


예전의 나는 넓은 관계를 가진 사람, 깊은 관계를 가진 사람이 부러웠다. 그들은 관계의 중심에 있었다. 언제 어디서나 눈에 띄는 존재들이었다. 그들을 보며 나는 뭔지 모를 괴로움을 느끼곤 했다. 아마 열등감 비슷한 것이리라. 다행히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나'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때(예를 들어, 내가 그들에 비해 관계를 잘 맺지 못하는 열등한 존재라는 믿음) 모두와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나'라는 존재는 이미 모두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우주가 있기에 내가 존재한다. 지구가 있기에 내가 존재한다. 하늘과 땅이 있기에 내가 존재한다. 산과 바다가 있기에 내가 존재한다. 동물과 식물이 있기에 내가 존재한다. 나와 당신이 있기에 내가 존재한다. 나는 이렇듯 그들로부터 존재하며 그들 또한 나로부터 존재한다. 우리는 이렇게 매 순간 상호작용을 하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나'에 대한 집착이 이런 '있는 그대로'의 관계를 보지 못하게 만든다. '눈에 보이는 관계'를 붙잡기 위해 애쓰도록 만든다. 자아의 선호에 따라 넓고, 좁고, 깊고, 얕고, 강하고, 약한 관계에 집착한다. 하지만 관계란 앞서 말한 것처럼 상호작용의 과정이다. 과정은 변하지 않을 수가 없고 변하는 것을 붙잡기 위해 애쓰는 것만큼 공허한 것도 없다. 그 애쓰는 마음을 내려놓는다면,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완전한 관계'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0.jpg


이전 08화뜬구름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