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실전 연습

by 기운찬

불교에서는 윤회를 하루하루의 관점으로 보기도 한다. 오늘 어떤 하루를 보냈느냐에 따라 다음날이 달라질 수 있다. '잠'이라는 죽음을 통해 이 같은 윤회가 매일 반복된다고 보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잠과 죽음은 매우 유사한 특성이 있다. 우리는 죽은 사람에게 종종 '편히 잠들었다.'라고 말한다. 또 곤히 잠든 사람에게는 '죽은 듯이 잔다.'고도 말한다. 이렇게 형태적으로도 잠과 죽음은 유사하다.


우리는 종종 '아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나 같은 경우, 내가 원하는 일을 성취하거나, 강렬한 욕구를 충족시키거나, 불현듯 세상과의 묘한 일체감을 느낄 때,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극도의 만족감으로 어떠한 집착도 생기지 않는 상태(그것이 삶이라 할지라도)가 되는 것이다. 이는 자살이라던지, 삶을 포기한다던지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오히려 삶에 대한 지극한 긍정이자 찬양이다. 나는 삶과 죽음이 적대관계가 아니라 상호보완 관계로 본다. 삶이 충만할수록 죽음을 바라고, 죽음을 바랄수록 삶이 충만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본능적으로 죽음을 부정하곤 한다. 누군가는 자신이 하지 못한 것들에 미련이 남아 죽음을 부정한다. 누군가는 자신이 이루어야 할 사명을 완수하지 못했음에 죽음을 부정한다. 이러한 부정은 '나'라는 존재에 집착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미련도 사명도 모두 상상으로 만들어낸 허상이다. 지금 이 순간에 없는 것들이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을 느끼는 것으로 진정한 삶을 회복해야 한다. 삶은 과거나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기에, 지금 이 순간과 마주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다행히도 우리는 매일 삶과 죽음의 실전 연습을 할 수 있다. 이를 돕는 게 바로 '잠'이다. 매일 밤 잠들기 전에 자신에게 질문해보자. '지금 죽어도 후회가 없는가?', '지금 죽는 것에 만족하는가?', '죽음이 두렵지 않을 만큼 지금 이 순간 삶을 온전히 느끼고 있는가?' 여기에 매일 답하는 연습을 하다 보면, 보다 더 충만한 '오늘'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왔다가 가버리는 허상을 쫒는 '나'가 아닌, '완전한 존재'로서 삶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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