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25일.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나라 스페인으로 떠나는 날이 되었다.
2017년 2학기에 스페인 빌바오의 바스크 대학(Universidad de País Vasco, UPV)으로 교환학생을 가게 되었다. 같이 출발하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가족과 함께가 아닌 혼자서 가는 여정이라 더 긴장이 된다.
멀리 떠나는 딸내미에 잔걱정이 많으신 엄마와 항상 나를 믿고 계시는 아빠. 같이 설렁탕을 점심으로 먹고 눈물 없는 다소 심심한 작별과 함께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비행기에 타서 드디어 출발하나 했더니, 중국남방항공과의 혼선으로 1시간가량 이륙이 지연되었다.
안 그래도 환승시간이 2시간밖에 안되는데, 다음 항공편을 못 탈까 봐 내내 초조해서 비행기를 타는 15시간 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저희 비행기는 프랑크푸르트 현지 기상악화로 인해 뒤셀도르프 공항으로
임시 착륙하겠습니다.
졸린 나머지 희미해지는 나의 정신줄을 붙잡는 기내방송이 흘러나왔다.
???
순간 잘못 들은 건지 눈을 꿈뻑이며 머리를 굴려보았다. 승무원에게 물어보니, 옆 공항에 잠깐 착륙해서 기상이 좋아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불안한 내 마음을 단숨에 해결해주기라도 한 듯이,
이대로는 시간이 부족해 환승을 못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독일 뒤셀도르프 공항에서 1시간을 머무르다 예상 도착시간보다 4시간 늦게 프랑크푸르트에 착륙했다.
어떻게 떴는지는 모르겠지만 빌바오행 비행기는 이미 떠나간 뒤였고, 우리는 공항에서 제공해주는 숙박과 교통 바우처, 내일 갈 수 있는 비행기 표를 얻으러 늦은 밤까지 줄을 섰다. 워낙 큰 비행기가 지연된 거라 경유할 예정이었던 많은 승객들이 몰렸고, 1시간 넘게 줄을 선 뒤에야 바우처를 받을 수 있었다.
딱히 화가 나거나 불평을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계속 걱정하던 문제가 이렇게라도 해결(?)되어서, 다른 사람들과 대화도 하면서 잠자코 순서를 기다렸다.
뭐 어쩌겠어? 낙천적인 성격이 다시 한번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이걸 행운이라고 해야 할까? 바우처에 쓰인 주소를 받은 택시는 우리를 4성급 매리어트 호텔로 데려다주었다. 객실을 보자마자 탄성을 질렀다. 언제 이런 호텔에서 자볼 수 있겠는가.
시차 때문인지 비행 피로 때문인지 졸리고 시간 감각이 무뎌져 가던 새벽 2시, 쾌적한 방과 창 밖의 야경을 보는 순간 기다리고 고생한 피로가 벌써 가신 듯했다. 인간이란 참 속물적이다.
이제 씻고 자야지 했는데 생각해보니 수하물로 부친 캐리어에 여벌 옷이며 속옷이 모두 들어있다. 가지고 있는 기내용 캐리어에 들어있는 거라곤 비상식량으로 가져온 불닭볶음면 같은, 지금은 전혀 필요 없는 것들 뿐이다.
무인도에서 돈가방을 발견한 게 이런 느낌일까? 친구와 함께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옷도 못 갈아입은 채로 다소 꾀죄죄하게 모험 첫 날을 마무리했다.
다음부턴 기내용 캐리어에도 여벌 옷을 챙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