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아론 Oct 27. 2024

안녕하세요. 사이코패스 겸 정신분열자 이수입니다(6)

지금부터 민수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민수의 사연을 들으며 누굴 죽여야 하는지 맞춰보는 것도 재미있을 겁니다. 단, 그러려면 민수의 심리를 잘 파악해야겠죠.


일단 민수는 교육자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유명 학원 원장이고 아버지는 명문대 교수입니다. 아래로는 여동생이 한 명 있습니다. 민수가 교육자인 부모님에게 항상 들은 말은 ‘공부해라’ 따위의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일개 중산층 부모들이나 하는 말이니까요. 엘리트 부모들은 좀 더 격식이 있고 거만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민수에게 항상 이렇게 말했습니다.


“민수야, 가치 있는 인간이 되고 싶으면 올라가렴. 아래는 하등 쓸모가 없어.”


그 덕에 민수는 올라가는 인간이 되었습니다. 매년 학급 회장을 도맡았고 초등학생 때는 전교 회장도 했습니다. 수학 경시대회에서 금상도 타고 중학교 때는 전교 1등도 했죠. 하지만 우리도 알다시피 진짜 싸움은 고등학생 때부터입니다. 거기서 진짜배기가 갈리기 마련이고, 민수는 미끄러져 넘어졌답니다. 과학고에서 처음으로 평균 90점을 받은 거죠.


민수는 가족끼리 외식을 할 때 초조한 얼굴로 성적표를 보여줬습니다. 아버지는 성적표를 보자마자 낙담했죠.


“그렇게 잘난 체하더니. 결국 이 모양이구나.”
“잘난 척한 적 없는데요.”
“성적 이야기할 때마다 의기양양했던 게 잘난 체지 뭐냐.”


어머니도 성적표를 보더니 모래 씹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어머나 세상에. 평균이 7점이나 떨어진 거야?”
“다시 따라잡을 수 있어요...”
“애가 지금 뭐라는 거니? 따라잡을 점수를 왜 떨어트려. 비효율적이게.”
“엄마, 아빠. 오빠 원래 그런 거 몰라요?”


여동생이 이어 말했죠.


“오빠는 옛날부터 우유부단하고 늘 될 대로 되라는 식이었어요.”
“그래, 연희야, 너 말 잘했다. 조민수. 너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전교 1등 하면 만족하고 그랬지? 네 앞에는 아무도 없는 줄 알고. 엄마는 항상 그게 싫었어. 너 전국에 중학교가 몇 개인 줄 알아? 어림잡아도 3천300개야. 그중에서 상위 1%라고 해도 겨우 30등이라고. 그런데 지금 고등학교 올라가 보니까 어때? 바로 실력 탄로 나지? 상위 1%는커녕 10%도 못 들었잖아. 그런데 다시 따라잡을 수 있다고? 나 참 기가 막혀서.”


아버지가 얼굴을 찌푸리며 화제를 돌렸습니다.


“이 녀석 성적 얘기는 그만하고, 연희 너는 어떻게 됐어?”
“걱정 마세요. 만점이니까. 만점이 아니면 실수로 번호 표기를 잘못한 정도?”
“표기 실수를 왜 하니. 엄마가 그런 것도 가르쳐줘야 해?”
“농담이에요, 엄마. 제가 진짜로 실수를 했겠어요?”
“가뜩이나 기분 안 좋은데 그런 농담하지 마.”


아버지는 오늘 저녁은 끝났다는 투로 입을 뗐습니다.


“됐고, 나갑시다. 기분만 잡쳤네.”
“미안해요, 여보. 괜히 오늘 외식하자고 해서.”
“당신 탓 아냐. 내가 진작 저 녀석 정신머리를 고쳤어야 했는데.”


여동생이 민수를 쳐다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가족끼리 오랜만에 한 외식인데, 왜 분위기를 깨냐는 것이었죠.


민수의 이야기는 이렇게 엘리트 집안에서 출발합니다. 민수의 부모님을 이해할 수 없다면 그것은 바로 멍청한 종자와 거만한 종자의 ‘태생적 차이’ 때문입니다. 엘리트가 사는 세계와 보편적 사람들이 사는 세계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간극이 있거든요.


그렇다면 민수는 이 이후로 부모님에게 어떤 취급을 받았을까요?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취급’이라는 단어입니다. 취급은 사물에 쓰는 단어지 인간에게는 쓰지 않거든요. 그 말은 곧, 민수는 부모님에게 인간 취급을 당하게 되었다는 뜻이죠. 무슨 인간? 바로 우리와 같은 ‘보편적 인간’.


민수는 그 후로 성적을 다시 올릴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가 있는 인간. 동네 뒷산은 몇 번이고 정상을 꿰찰 수 있지만 험준한 산맥은 중턱도 오르지 못하는 인간. 낮은 지상에서 옹기종기 모여 살며 평생 모은 돈으로 높은 곳에서 살기를 바라는 인간. ‘보편적 인간’으로 계급이 떨어진 겁니다.


엘리트계는 보편적 인간을 보고 잉여 인간이라는 다른 말을 붙이기도 하나, 이건 보편적 인간들도 서로에게 쓰는 말이라 넘어가도록 하죠.


여기까지 읽었다면, 민수가 죽이려고 하는 사람이 누군지 이해가 될까요? 그렇다면 성급한 판단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아직 민수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거든요. 엘리트계에서 낙오되어 보편적 인간이 된 민수의 인생 제2막이 시작될 참입니다.


그것은 바로 거만한 종자들이 보편적 인간에게 대하는 ‘태도’에 관한 이야기죠.

이전 05화 안녕하세요. 사이코패스 겸 정신분열자 이수입니다(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