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필요 없어! 가도 돼!
# 쿠션이 필요한 가족
토요일 오후, 아파트 거실 풍경이 들어온다.
안방에서 화장하는 엄마가 보인다, 곧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엄마.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우람이와 해미의 손톱을 깎아 주는 아빠가 보인다.
“다녀 올게요”
누구한테 하는지 알 수 없지만 대충인사를 하고 병구가 먼저 집을 나선다.
남편이 아내에게 묻는다.
남편 어디 가는 거야?
아내 친구하고 안산에서 만나기로 했대요. 제삿날이라고 6시까지는
들어오라고 했는데...
김피디는 이 가족을 촬영한지 벌써 열흘이 지났다.
서로가 불편한 가족들은 같은 곳에 있지 않는다. 그리고 마음편한 자기의 자리를 알고 있다.
이 좁은 공간 조차도 가는 자리와 가지 않는 자리가 정해져 있다.
김피디는 병구가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것은 병구의
자리가 아닌 것이다. 그곳은 아빠와 두 동생의 자리였다.
어머니는 퇴근하면 주로 부엌과 식탁에 앉는다, 병구는 화장실 가는 것 외에는 늘
자기 방에 있다.
엄마의 관심사인 병구의 동선이 방과 화장실이기 때문에, 엄마는 늘 병구가 잘 보이는
자리를 지키고 있다. 병구가 들어왔을 때에는 식탁에 앉아서 소파 쪽과 병구 방을
번갈아 보는 습관이 있다.
그런데 또 하나! 병구가 집에 있을 때는 엄마가 집에 있을 때이다, 엄마가 없을 때 한번도
집에 있어 본 적이 없었다.
엄마가 집에 오면 병구가 곧이어 들어오곤 했다. 둘 사이는 편한데 나머지는 불편하다는
것이다. 김피디의 관찰이 맞을까? 엄마가 대답한다.
엄마
“집에 들어 올 때가 되면 병구한테 전화가 와요, 엄마 어디예요? 언제 들어와요?
병구가 자기자리를 못 찾는 것 같아요. 내가 없으면 불안 해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엄마는 늘 병구의 충격을 덜어주는 쿠션이라고 할까.
감싸주는 엄마가 됐든, 넉넉한 아빠가 됐든, 집안에는 늘 쿠션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쿠션 같은 사람이 있어서 가족 간의 충격을 완화시켜주면서 살아간다.
이 가족의 쿠션 역할은 엄마가 하고 있는 것이다.
하루에 한 번은 꼭 엄마에게 전화를 하는 병구.
병구도 아빠와 둘이 있는 집이 불편한 모양이다. 엄마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엄마
“제가 불안하기도 해요. 내가 없을 때 둘이 싸울까봐. 남편이 그럴 땐 좀 다혈질 이예요
욱하는 성질이 있어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또 일어 날까봐“
일어나서는 안 될 일? 뭐지?
김피디는 더 물어 보고 싶었지만, 제사준비 때문에 서둘러 외출하는 엄마를 잡을 수가 없었다
# 오지 않는 아들, 속 타는 엄마
그날 저녁 시어머니 제삿날, 아파트 거실.
제사음식을 준비하는 부엌에 아내와 형님댁이 보인다. 오늘은 시어머니 제사가 있는 날이다.
남편은 둘째아들 이지만 매년 여기서 제사를 지내왔다.
거실에는 시아버지, 큰형님과 남편이 앉아 있다. 그리고 조카들과 우람이, 해미가
TV를 보며 놀고 있다. 시계는 6시 10분을 가리키고 있다.
나물을 무치던 아내가 시계를 보고 병구 방으로 들어간다.
황급히 병구에게 전화를 거는 아내.
“언제 들어와 ”
전화기로 병구의 목소리가 들린다.
“곧 들어가요 ”
“어디야? 안양? 아직도 거기야, 빨리 와!“
6시 까지 들어오라고 그렇게 신신당부를 했건만 병구는 아직도 안양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다.
집안 어른들이 모이는 날인데..오늘은 꼭 들어와야 하는데..
엄마는 타들어 가는 속을 억누르고 있다. 어른들이 계시니 소리 칠 수도 없다.
‘곧 들어간다’는 병구의 말을 믿고 싶을 뿐이다.
큰 형님과 제사음식을 장만하면서도 아내의 마음은 아들 생각뿐이다.
제사는 8시쯤 지내기로 했다.
다급해진 아내가 남편에게 전화 부탁을 한다. 나물을 무치면서도 귀는 남편에게 가있다.
“ 오늘 제사라고 했냐? 안했냐? 그런데 뭘 모르겠다는 거야, 할아버지도 기다리고 계셔..
9시까지 들어와”
아내는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이 9시까지 미뤄줘서,,
시계는 어느새 8시30분을 가리키고 있다.
제사 준비에 바쁜 아내와 큰 댁 형님이 보인다.
아내가 거실에 앉아 있는 시아버지에게 고개를 돌리며 이야기 한다
아내 고모한테 전화 안해도 돼요? 그래도 제사라고 이야기는 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아버님.
시아버지 몇 년 동안 오지도 않았는데 알고 있겠어? 지 엄마 제사도 까먹었을 거야.
아내 그러니까 아버님이 전화를 드려야 되는 거 아니예요?
시아버지 니들이 해!
아내 제가요?
전화를 핑계 삼아 다시 병구 방으로 들어간 아내, 다급하게 먼저 병구에게 전화를 건다.
아내 올 거야 안 올 거야? 어디야?
병구 저 가기 싫어요, 안 갈 거예요
아내 니가 있어야 제사를 지내지! 전부 기다리고 있잖아?
화를 내도 소용이 없다. 이제는 병구에게 사정하며 달랜다.
아내 가족이 다 하는 행사인데, 니가 없으면 엄마 입장도 곤란하고
그렇지 않을까? 저번 제사 때는 왔었잖아? 몇 시에 올 건데?
아빠가 뭐라고 생각하겠냐 또 싸우고 그러잖아, 제사만 지내고 나가 응?
병구 ~뚝 삐삐
애원하는 엄마의 바람은 아랑 곳 없다.
‘병구여친‘이라고 쓰여 진 번화를 찾아 휴대폰을 누르는 엄마.
아내 혜지야~ 병구는 누구랑 같이 있어? 니네들, 노래방 간다고 들었는데?
응, 병구한테 들었거든, 뭐 없어? 어디 갔는지 아줌마한테 연락 좀 해줘라
‘제삿날 인지 몰랐다“는 고모의 말을 전하고 다시 제사상을 차리는 아내.
결국 병구는 오지 않았고, 제사는 시작되었다.
하지만 아무도 묻지 않았다. 병구는 왜 안 오냐고...
제사는 30분도 되지 않아 끝났다, 제사가 진행되는 내내 현관문만 바라보던 아내도
이제 오히려 홀가분한 생각이 든다.
‘집안 어른이 모이는 자리에서, 내 아들은 또 버릇없는 애로 낙인 찍혔구나’
아무도 얘기하지 않고 물어보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남편의 표정이 엄마의 눈에 들어온다.
“뭘 바라겠니?” 재수 없다는 표정이다.
#가도 돼! 이제는 필요없어!
모두 떠나고 거실에는 남편과 아내가 앉아 있다.
오늘 아내는 그야말로 숨 쉴 틈 없이 바뿐 하루였다.
몇 번 이나 보험영업 같다가 시장가서 장보고 집에 와서 제사준비하고,
아내는 오늘 같이 바뿐 날 남편이 병구를 챙겼으면 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아내는 ‘남편은 항상 결과에 대해 화만 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유독 병구한테 만은 가혹하리 만치 화를 내고 차별한다는 것이 엄마의 생각이다.
아빠의 행동 때문에 아들 병구에게도 마음에 응어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엄마
“다른 집 아빠 같으면 안 그래! 친 아빠! 그게 너무 큰 욕심을 부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병구야 힘든 거 있어, 왜 그랬니?’하고 달래고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항상 술 먹을 때만 아빠랑 잘 해보자 그리고 나서 3일을 못 넘기잖아“
아내는 사실 친아들이 아니라서 차별한다고 생각해 왔다.
3년 전 조카들하고 같이 살 때가 있었다, 나이가 비슷한데도 유독 병구에게만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일을 시켰다. 남편은 조카들을 데리고 스케이트를 타러 가도
병구는 남아서 청소를 해야 했다.
그리고 엄마가 잊지 못하는 일이 또 있다. 병구가 이 집으로 온지 1년이 지나갈 때 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어린 조카와 동생이 있는 데도 뚱뚱하다고 윗몸 일으키기를 400번이나 시켰다.
힘들다고 애원하는 병구를 아빠는 끝끝내 400번을 채우고 말았다.
“어린조카들은 재미있다고 웃고 있는데, 내 아들은 힘들어서 애원하고 있구나.“
지금 생각하면 왜 내가 나서지 못했을까? 엄마는 아직도 후회를 하고 있다.
그 때 엄마는 생각했다. “자기 아들이었으면 저랬을까!“
그때부터 엄마는 큰 아들을 감싸기 시작했다. ‘내가 보호해야겠구나‘
하는 절박감이 그때부터 들기 시작했다.
'병구가 오지 않은 문제'를 두고 엄마 아빠의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남편 뭐하나 제대로 하나? 음식물 쓰레기를 갖다버리라고 하면,
6층에다 확 집어 던지고 가냐? 음식물 쓰레기를..
아내 어릴 때 많이 했잖아
남편 나 참, 더럽고 치사해서, 무서워서 안 시키지 아휴 ~
아내 한번 해서 말을 안 들으면 두 번, 세 번 얘기 할 수 있잖아,
당신은 술 먹고 화부터 내잖아!
병구는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늘어가고. 집에 오는
시간은 늦어졌다.
하루는 위층에 사는 큰형님이 불러서 같다. 병구가 친구들과 모여서 담배 피는 것을
봤다는 것이다, 창피하다며 병구단속을 하라는 것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엄마에게 “집안망신”이라고 얘기하는 큰 형님!
‘내 아들이 집안 망신’ 이라고 엄마는 참을 수가 없었다. 말다툼을 했는데 다음 날
남편이 알게 됐다. 가서 ‘잘못했다’고 빌라는 남편의 말이 야속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데 자기 팔이 아닌가 봐?‘
억울한 마음에 다음날 시아버지를 찾아간 엄마는 ‘이혼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날
남편이 어린 우람이와 해미를 데리고 찾아 왔다.
아내의 하소연이 이어진다.
엄마
“지금 솔직히 너무 힘들어요. 저 혼자 애들 데리고 살라고 하면, 살 수도 있을 것
같고, 이혼 생각도 많이 했었어요, 그 때 동사무소 가서 이혼서류도 가지고 가서
‘저 도저히 못 살겠습니다’라고 시아버지한테도 그렇게 이야기 했어요, 그랬더니
본인이 변하겠다고 해서 다시... 여기까지 온 거죠“
하지만 남편은 변하지 않았다. 병구는 나이를 먹고 덩치가 커지는 데도, 남편은 여전히
어릴 때 같이 가혹하게 대하고 있다고 엄마는 생각했다.
점점 목소리가 높아지는 부부.
아내 당신은 나한테 미안해 해야 돼! 내가 병구를 데리고 왔지만
내가 이렇게 힘들게 사는 거에 대해서 미안해 해야 돼!
남편 내가 왜?
아내 내가 병구 아니면 당신이랑 안 살았어!
점점 아내와 남편의 목소리가 올라간다. 화가 난 아빠의 예상치 못한 반응.
남편 안살아도 나 그만이야, 이제 가도 돼!
그 때는 돌도 안 된 핏덩어리들 이었는데.. 당신이 그럼 안 돼지!
아내 내가 뭘?
남편 이혼하자고 했어? 안했어? 그때는 내가 애들이 불쌍해서 내가 당장 맡 길 때가 없어서,
그때는 그랬지만, 이제는 가도 돼! 안 잡아!
엄마가 이혼 하자고 했을 때는 아들 우람이가 3살이었고 딸 해미가 갓 돌을 넘겼을 때였다.
‘어린 핏덩이 같은 자식을 두고 이혼을 얘기했다’는 사실이 남편은 괘씸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남편은 아직도 이렇게 생각한다.
‘아내는 두 아이 보다는 항상 병구가 먼저 일거야, 무슨 일이든지..’
그 때 일로 남편의 경계심은 아직도 뿌리 깊게 박혀있었다.
남편이 방으로 들어가고 거실에는 아내만 혼자 앉아 있다. 아무 말 없이 벌써한 시간째
앉아 있다. 초점 잃은 눈빛으로..
그리고 다가가는 김피디에게 하소연 한다.
엄마
“이렇게 제사 지내고 하루 종일 뛰어다니고 ,, 어떻게든 살아보자고 하는 나에게
‘고마워 해야 되는 것’ 아니 예요? 저렇게 가슴을 후벼 파는 말을 하니까..“
엄마는 위로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가정에서의 존재감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제는 필요 없다’는 남편의 말에 서러움이 북받치는 엄마.
소리 없이 굵은 눈물이 흐르고 있다.
“어떻게 살아 온 인생인데..”
#여자의 상처는 사라지지 않는다.
목이 메는 엄마는 잠깐 말을 멈춘다, 그리고..
“내가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손가락질 받는 인생을 살았구나’하는 생각도 밀려오고
자기네들은 얼마나 떳떳하게 살았으면, 본인 들은 좋은 부모 만났으니까 힘 안 들이고
살았겠지만, 저는 죽을힘을 다해 살았어요. 지금까지 혼자 다 이겨내야 했으니까.
그걸 이해 못해줘요, 저도 같이 살고 싶지 않네요“
엄마는 아들이 태어 난 날부터 죽을힘을 다해 살아왔다. 그리고 여기 까지 잘 버텨왔다고
스스로를 다독거리며 살아왔다. 이런 마음을 남편은 이해 해 줄지 알았는데..
18살에 엄마가 되어 여기까지 왔는데, 돌아오는 것은 ‘이제 필요 없다’라는 말이였다.
엄마
“병구를 내가 입양을 안 보낸 건, 나처럼 똑 같이 될까봐, 그것 때문에 입양을
못 보내고 어렸을 때부터 어떻게든 손을 놓지 않았어요
내가 여기서 또 이혼하면 우람이나 해미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는 거잖아요?
나는 정말 싫어요“
가족 간에 해서는 안 될 말이 있다. 무엇인지를 누구나 다 알고 있다.
하지만 부부싸움이 시작되면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는 법이다. 화가 나서 뱉어 내는 말,
그것이 상처가 된다.
엄마는 또 잊혀 지지 않는 상처를 기억하고 있었다,
결혼 후 엄마는 둘째 우람이를 낳고 나서 다시 임신을 하게 되었다, 임신 7개월째.
시댁식구들과 함께 살던 시절에 조카 6명을 돌봐야 했다. 정신없이 바쁜 날들이
계속되고 배는 불러 오고 있었다.
그 때 아내는 남편에게 힘들다고 얘기를 했다. 하지만 남편에게 돌아오는 말은
‘유세 떨지 말라고, 너 만 임신 하냐’는 말이었다.
그리고 아내는 힘들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앰블런스를 타고 응급실로 갔다.
7개월 된 뱃속의 아이는 결국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말았다.
엄마는 그날의 기억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엄마
“그게 잊혀 지지 않아요. 그 후 서운할 때 마다 그 이야기를 했어요.
그러니까 나중에는 ‘니가 어렸을 때 몸을 함부로 굴린 것을, 왜 지금에 와서
내 탓으로 돌리냐‘고 얘기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너무 억울했어요’
그 후 엄마는 생각했다,
‘그래 너라는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었구나’ 내가 그렇게 존경하고
내가 그렇게 좋아했던 사람은 그렇게 착한 사람이 아니었구나‘ 하는 실망감이 들었다.
‘여자는 상처를 평생 가슴에 새겨 놓고 산다‘고 말하는 엄마.
평생을 안고 살아가야 할 상처가 오늘 또 생겼다.
치유하기 전 까지는 없어 지지 않을 상처!
거실에서 홀로 울고 있는 엄마를 두고 김피디는 집으로 향했다.
모두에게 힘든 하루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엄마의 상처는 누가 아물게 해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