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땅의 야수들'을 읽고 든 나의 생각
2023년 상반기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정말 많은 일들이 엎친데 덮친 격으로 펼쳐지며 나의 모든 에너지를 다 가져가 버렸다. 올해엔 꾸준히 글을 써봐야지 하고 다짐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몇 개월 동안 글이라곤 단 한자도 쓸 수가 없었다. 모두가 공감하겠지만 무언가 한 가지를 꾸준히 한다는 것은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무리해야 하는 일들을 끝내고, 새롭게 시작하려고 했던 일들에도 한 발씩을 담갔으니 이 정도면 상반기를 나쁘지 않게 보냈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상반기가 끝나갈 무렵, 아주 우연하게 한국계 미국인인 김주혜작가가 쓴 '작은 땅의 야수들'이라는 책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책의 소개만을 읽고도 이 책은 꼭 읽어야겠다는 이상한 의지가 샘솟았다. 9살에 이민을 간 한국인이 한국의 근현대사를 다룬 책을 어떻게 썼을지도 궁금했고 동시에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한국 근현대사 속의 고통과 분노, 그리고 슬픔을 또다시 마주하기가 조금 겁이 났다.
책을 읽기 전 만났던 한 친구가 최근에 '작은 땅의 야수들'을 다 읽었다고 했는데, 그 친구는 '이미 80살의 할머니가 되어 인생을 다 산 것 같은 느낌이야.'라는 감상평을 남겼다. 그리고 내가 책을 읽고 다시 만나 책에 대한 얘기들을 나눠보기로 약속했다.
나는 내게 얼마 남지 않은 에너지들을 모아 마음을 단단히 먹은 후 천천히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이 책은 1919년 평안도를 배경으로 시작되어 1964년 제주도를 마지막으로 끝나는 데, 그 격동의 시간 동안 한반도에 살면서 성장하고 시들어가는 옥희를 중심으로 얽히고설킨 다양한 인물들이 각자의 신념과 믿음, 사랑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생을 포괄적으로 다룬다.
책을 읽는 내내 책 속의 인물들과 함께 그 시간과 장소에 있는 것처럼 가슴을 졸이기도 했다가 행복하기도 했다가 슬픔에 차오르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어느 장면에서는 씁쓸해지기도 했으며 마침내는 모든 감정을 내려놓고 평온한 상태로 책을 덮었다. 책을 덮고 난 후에 내가 느꼈던 감정은 친구의 감상평처럼 내 인생의 마지막 즈음에 느낄 감정을 미리 맛본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각각의 인물들이 과거 우리나라에 정말 존재했을 법한 아니 실제로 존재했을 인물들이어서 그런지 책을 읽는 내내 역사 속 실존했던 분들의 삶이 이랬을까 하는 추측을 하며 읽는 재미도 있었다. 그리고 책의 전반에 걸쳐 나오는 인물들 간의 사랑과 우정, 배신과 분노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또 다른 형상으로 바뀌는 것들을 보면서 정말 영원한 것은 없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나의 오랜 의문도 다시금 고개를 들며 떠올랐다. 모든 것이 변하고 모든 상황도 감정도 관계도 영원하지 않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 걸까.
영원히 답을 내릴 수 없을 것 같은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결국 모든 게 끝난 다 해도 인생을 살며 한 경험과 추억은 나의 기억 속에 남을 테니 현재 이 순간을 더 열심히 즐겨야겠다.'이다. 요즘의 나는 먼 미래를 생각하기보다 지금 내 눈앞에 놓여있는 일들에 집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나의 노력이 슬픔과 우울의 심연으로 가라앉으려는 나를 계속해서 붙잡아주는 힘이 된다. 옥희의 독백을 마지막으로 글을 마무리해보려 한다.
삶은 견딜 만한 것이다. 시간이 모든 것을 잊게 해 주기 때문에.
그래도 삶은 살아볼 만한 것이다. 사랑이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