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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Jul 19. 2020

실외기

실외기


입들이 모두 바깥으로 향했다.

그곳은 여름의 절정에서 제 끓는 속을 뿜어대는 입들이 줄을 선 집합소. 

실외기들이 훅 뱉어낸 숨결이 뜨겁다.

너에 대해 인출된 기억은 후끈하다.

낯선 골목길을 들어섰을 때 확 끼얹으며 덮치는 열기는 피부에 달라붙어 기분을 망친다.

소음이 떠나간 빈자리에 비둘기들은 새끼를 치고 귀소본능은 걷어낸 둥지로 자꾸만 날아든다. 



카톡방 모퉁이에 빨간 불이 켜졌다. 말없이 수다를 피우는 이들로 연신 까똑까똑거린다. 검지로 노크하는 동안 새끼 치는 숫자들만큼이나 영상이 날아오고 문장이 편집되고 답글을 쓰기 싫은 사람들은 이모티콘이라도 멋지게 날린다. 눈으로 쓰윽 훑어보고 사라지는 얌체족이라고 비난받는 이들마저도 안부 같은 이런 관계망에 안심하는 눈치다. 들끓는 문장들 가운데 멋진 놈은 복사와 전달로 퍼 나르며 손놀림은 어둠 속에서도 잠들지 않는다. 나와 이웃이 바깥으로 뿜어내는 익숙한 풍경이다.


입안의 혀들이 가만히 있지 않는 곳이 있다. 혀의 근육을 키우는 이곳은 한 집 건너 한 집씩 문을 열고 성업 중이다. ○○카페, 스타벅스니 엔젤이니 커피들이 이름을 걸고 전성기를 맞았다. 우리는 언제부터 그렇게 커피를 좋아했을까. 어제 새로 생긴 카페는 화원처럼 꽃이 많다. 주문한 까페라떼가 나오고 예쁜 잔 안에 하트가 나를 유혹한다. 밥값과 맞먹는 커피 값을 내고 마시는 그곳은 세상의 거실들이 모두 바깥으로 나온 듯 매력적인 인테리어로 손님을 맞는다. 사생활을 공개하지 않아도 좋아 이곳을 사랑하는가 싶다. 사람들로 붐비는 곳은 소음에 가까운 수다들이 난무한다. ‘질 바비에’의 조형물에서 입이 토해내던 얼크러진 수많은 말풍선이 꼬리를 물고 나온다. 속풀이하듯 혀끝에 올려놓고 공처럼 주고받는 동안 쓴 맛을 비워 내리라. 더러 유익한 정보들도 건지기 때문에 허접한 이야기들로 시간을 보내도 아깝다고 말하기에는 부족하다. 얼굴을 보며 수다를 피우는 것이 친밀한 관계와 존재감을 느끼게 한다. 


사람과의 관계가 늘 매끄러운 게 아니라 가슴에는 감금된 언어들이 부글거린다. 포화상태가 되면 참지 못한 열기들이 개념 없이 뽑혀나가 미치는 온도가 된다. 증오의 먼지들이 등 뒤에 쌓이면 실외기 뒤편에서 화약처럼 뜨거워지듯이 한 꺼풀 뒤에서는 수백 마디의 날카로운 문장을 되씹고 있으리라. 명절에 가족들이 만나면 쌓였던 것들이 한꺼번에 터지는 불상사가 허다하지 않던가. 사랑은 온도를 잃고 싸늘해진다. 참지 못해서 실외기로 쏟아버린 온기들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버튼을 끄고 창문을 열면 방안의 온도는 제자리로 돌아오겠지만 사람의 마음이라 시간이 걸리고 노력을 해도 장담할 수가 없다. 최근에 느낀 것들 가운데 싫은 감정으로 맞불을 놓거나 일방적으로 타격을 가하면 회복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가족일수록 더욱 그랬다. 억지로 꿰맞추려 했던 긴 시간이 그걸 증명해 주었다. 왜 정제되지 않은 채 모두 뱉어내려고만 했을까.

당신과 다른 생각들로 기진맥진 하여 돌아눕는 밤 내부는 싸늘하게 식어간다. 뜨겁던 사랑도 뜨겁던 논쟁도 사라진 집에는 오래 된 폐가처럼 삭아 내려앉아 적막이 녹물처럼 흐른다. 


실외기를 빠져나간 온기들이 땡볕과 만나 더욱 달아오른다. 저마다 문을 닫고 화기를 밀어내어 방안은 서늘하다 못해 춥다. 창문을 열어 환기 시켜야 하리라. 바깥세상을 불러들여야 한다. 적당히 뜨겁고 적당히 서늘하면 좋겠지만 자연은 간사한 나를 단련시킨다. 혹한과 혹서로 한 철을 견디며 지금 이 순간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한다. 쓸쓸히 너의 가슴 박동을 뜨겁게 느껴보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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