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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Dec 19. 2020

디저트가 있는 시간

고종이 사랑한 커피, 그 시절로 시간여행을

고종이 사랑한 커피, 그 시절로 시간여행을

송복련


디저트를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오늘은 푸딩을 찾아 석촌호수 근처 가배도에 가려고 나섰다. 녹음이 짙어가는 호숫길을 따라 걸으니 탐스럽게 핀 장미들이 유혹의 눈길을 보내며 울타리를 넘고 있다. 세상은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로 중병을 앓고 있지만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와 막힌 숨통을 틔워주고 생기를 되찾아 준다.    

고만고만한 건물들이 밀집한 곳에서 숨은 그림 찾듯 ‘가배도’를 발견했다. 가배도는 섬처럼 번잡한 곳에서 조금 비껴 섰다. 예스러운 이름인데 한자로 적혀 있다. 계단을 올라 차가운 철문을 열었을 때 분위기는 완전히 반전되었다. 어두운 공간에는 문살 사이로 들어오는 광선들이 잘게 쪼개어져 바닥에 무늬를 그렸다. 박물관 같은 오래된 장소에서 느끼는 무게감이 들뜨려는 기분을 눌러 주었다. 문살은 유년시절의 일본가옥을 떠올리게 했다. 다다미와 마루가 있던 그집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시간을 거슬러 구한말을 배경으로한 드라마 속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온 기분이다. 탁자 위에 화병은 옛그림 속인 듯한데 천소파와 잘 어울렸다. 오래된 마룻바닥의 흔적이며 차 도구들이 개화기에 신 문물을 받아들이던 때를 연출했다. 조명등도 한 몫 거들어 커피숍은 묘한 매력을 풍긴다.

우선 ‘가배’라는 상호가 궁금해서 직원에게 물었더니 커피라는 뜻이라고 했다. 내가 알고 있던 추석의 옛말, 가배(嘉俳)인가 싶었는데 한자가 달랐다. 처음으로 커피가 들어왔을 때 소리대로 가배(珈琲)라 불렸다는데, 나는 커피와 가배를 번갈아 발음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인 최초의 커피 애호가였던 고종의 커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열강들이 다투던 격동기, 고종은 서양문물을 전하던 손탁으로부터 자주 커피를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감사의 표시로 정동에 손탁호텔 터를 마련해주었는데 그 안에 '정동구락부'에서는 우리나라 최초로 커피를 판매했다고 전한다. 그 무렵 커피는 지체 높으신 양반이나 외국인이 즐기는 기호 식품이었다. 이 맛을 처음 본 일반 사람들은 커피의 쓴맛을 보고는 서양에서 들어온 탕국이라하여 '양탕국(洋湯麴)'이라 부르기도 했다니 내 어릴 적에 미군 아저씨가 준 커피를 맛보다 소태같이 쓴맛에 혼줄이 났던 때가 떠오른다. 처음으로 쓴 커피맛을 맛을 보며 '우리가 숭늉을 마시듯 서양사람들은 커피를 마신다'는 말을 하며 설왕설래했을 장면을 그려보니 웃음이 나온다.

.오늘 이곳을 찾은 것은 계절에 맞는 시원한 푸딩( pudding)을 맛보기 위해서다. 짭짤한 맛이 아니라 단맛 나는 후식용 푸딩이다. 낯선 이름의 판나코타와 말차 푸딩을 주문했다. 판나코타(Panna cotta)는 이탈리아에서는 오래 전부터 먹어오던 후식으로 크림, 우유, 설탕을 한데 뒤섞어 젤라틴을 넣어 굳힌 시원한 음식을 가리킨다. 

스푼으로 한 입 떠 넣으니 푸딩은 아기 피부처럼 말랑하고 탄력이 느껴졌다. 차가우면서 너무 달지 않아 기분 좋은 달콤함이 식후에 입안을 깔끔하게 마무리 해 준다. 동생이 주문한 하얀 빛깔은 판나코타로 에스프레소가 곁들여 나왔다. 에스프레소를 살짝 끼얹어 한 입 떠 넣으니 커피향과 함께 쌉쓰름한 맛이 입안에 가득찬다. 내가 주문한 말차 푸딩은 매화꽃 문양이 그려진 청자잔에 담겨 나왔는데 은은한 말차 빛깔이 감돈다. 푸딩 위에 말차시럽을 다시 뿌리니 진한 맛이 혀끝을 긴장시킨다. 고풍스런 실내에서 조금씩 맛보는 푸딩은 또다른 즐거움을 주었다. 

일설에는 17세기 항해 중이던 배안에서 먹을 것이 떨어지자 남은 빵 부스러기, 밀가루, 과실, 달걀 등 여러 재료를 썩어 헝겁에 싸서 찐 것이 푸딩의 시초라고 한다. 식후에 먹는 푸딩은 식후의 만족감을 높이기 위해 먹는다. 과일즙과 우유, 달걀 등을 섞어 오븐에 익히는 스타일과 젤라틴을 넣어 굳히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탱탱함과 달달함으로 가득한 푸딩은 “달걀과 우유 등을 사용해서 만든 크림‘의 하나로 단백질이 응고하기 때문이다. 계절에 따라 딸기와 채리를 얹기도 한다. 우리나라 순대와 비슷한 블랙푸딩도 있다니 궁금하다. 

푸딩을 전통방식으로 하는 곳이 많지 않았다. 이곳 가배도에서 푸딩과 함께한 시간여행은 즐거웠으며 맛 또한 실망시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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