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로(寒露) : 찬 이슬
2025.10.8(수)
최저 온도 17도, 최고 온도 27도
맑음
철새의 문턱
24절기 중 17번째 절기인 한로는 가을의 절기이며, 말 그대로 차가운 이슬이 맺히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밀려오는 찬 기운에 단풍이 들고 곡식이 여물기를 끝내기에, 한로 무렵에는 추수를 하고 한해의 결실을 수확한다.
서리가 내리기전에 가을걷이를 끝내야 하는 바쁜 절기라지만, 논이 얼마나 물들었는지 도시에서는 알길이 없다. 제철의 농산물이나 수확의 결과보다는 밥상머리 물가나 시장의 가격이 더 쉬운 세상이다. 옛 농촌의 계절들은 내 먹거리가 너무도 선명한데, 현대 도시의 계절은 철이 없다. 더욱이 긴 더위에 단풍도 느릿느릿하다.
“한로 지나면 제비도 강남 간다.”는 속담이 있다. 제비 같은 여름의 철새들이 남쪽으로 떠나고 기러기 같은 겨울 철새들이 들어오는 계절이라는 것이다. 서서히 머물던 찬 기운이 계절을 마무리하고, 그 문턱을 넘어 새들이 집을 바꾸고 날아간다.
왜 찬 기운에는 그토록 많은 이별이 있을까.
바뀌어간다
간만에 맑은 하늘이다. 올해의 한로는 추석의 한 중간에 있다. 그리고 올해의 추석은 내내 비가 내렸다. 추석이란 가족들과 만나는 날인데, 가족의 양 아버지가 하늘에 먼저 드신 관계로 성묘와 절에 다녀오는 일정이 먼저였다.
고향으로 가는 길은 없다. 우리는 그곳에서 만나 그리운 이를 떠올리며 절을 몇번하고 헤어진다. 죽음이나 절, 제사 같은 것들의 의미나 무게가 없는 아이들은 내내 차 속에서 몸을 구겨야 하는 고난스러운 일정이었을 뿐이다. 절을 하며 할아버지는 하늘 나라에 있잖아! 하고 말하는 아이들에게 이 종교의 다양성과 풍습과 믿음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줘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고소한 전냄새와 뭉근한 스트레스, 어색한 인사가 머물던 명절의 풍경이 바뀌었다. 더이상 '고향'을 향해 버스를 타고 꽉 막힌 고속도로에 갇혀 있지 않아도 된다. 어색한 친적들에게 표정 관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 달을 보며 몇번이나 빌던 기도도 사라졌다. 한 사람이 사라졌다고 명절의 풍경은 참 많이도 변했다.
엄마는 며칠전부터 전을 부칠까말까를 고민했는데, 거의 40년의 가을에 부치던 전을 안부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짝꿍이 도와준 적도 없지만 짝꿍이 없어서 신이 안난 엄마는 처음으로 전을 포기했다. 자기 할 일이 없어진 엄마는 명절 전부터 아프더니 한로인 오늘은 다리를 절뚝였다. 그래도 명절에 독박 육아하는 딸래미가 아까워, 찬 기운에 콧물이 난 작은 손주와 눈 다래끼가 난 큰 손주를 데리고 놀이터에 갔다. 꾸러기 둘만이 놀이터에 남아 소리를 질렀다. 두 개의 놀이터를 지나 동그란 도넛을 먹고 애호박을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하늘은 참 차갑게 파랗다.
여름 새가 가고 가을 새가 오듯, 부지런히 다른 이별들과 변화들을 계절은 데려온다. 오늘의 한로는 참 맑아서 하늘에 있는 새들이나 하늘에 있는 분들이나, 내려다 보는 시야가 참 훤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