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되면서부터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가정이 흔들리면서 그 바람도 같이 사라졌다.
이혼 전에는 싸우는 모습을 보여 미안했고
이혼 후에는 한부모가정, 이혼가정을 만들어 미안했다.
아이들이 살아가면서 편견과 선입견으로 힘들지 않을까?
그 미안함을 어찌 보상할까?
미안함과 동시에 잘 키우고 싶었다.
보란 듯이 성공한 아이로 키워
세상사람들에게 "아이들 잘 키웠어!"라고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욕심과 미안함이
아이들과 나에게 족쇄가 되기도 했다.
아이들 어릴 때부터 나는 수용적인 양육자였다.
공부를 억지로 시키지도 않았고
남에게 피해 주거나 안전에 위협되는 것이 아니라면
본인이 원하는 것은 되도록 모두 들어주었다.
잘해주면 아이들도 잘 클 거라 믿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무리한 것들을 요구하거나
하지 않아야 할 행동들을 하기 시작했다.
게임 도중 욕을 하거나 소리를 지를 때마다
아들과 갈등이 생기곤 했는데
아들은 엄마에게 모진 말들을 쏟아냈다.
엄마를 공격하는 아들
그럴 때마다 머리끝까지 화가 난 나도
아들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해버렸다.
아들을 공격하는 엄마.
그렇게 한바탕 다툰 날에는 밤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엄마가 자신 없는 날, 모두 포기하고 싶은 순간
아들은 충동적이다.
감정 조절이 어렵고 욱하는 기질도 있다.
왜곡된 논리로 본인의 잘못도 부모탓을 한다.
상담가를 찾으면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라고 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면
이혼을 해서 아이가 상처가 많아 그런 것 같다며
아이가 불쌍하다고 한다.
도대체 아이의 마음을 어디까지 읽어주란 말인가?
욕을 하고 난폭해지는 걸 수용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혼은 무를 수도 없는데
이혼가정이라 그렇다면 뭘 어쩌란 말인가?
한동안 나는 길을 잃었다.
길 잃은 양육자
한참 후에 나는 "좋은 엄마"가 되는 걸 포기했다.
아이들에게 인생 전부를 걸지 말자.
남보란 듯 아이들을 성공시키려는 욕심은 버리자.
미안해할수록 아이들은 모든 것을 이혼한 부모탓을 할 텐데
미안한 마음은 속으로만.. 티 내지 말자.
그저 묵묵히
아이가 대학졸업 때까지 옆에서 버티자.
적당히 떨어진 거리에서 지켜보자.
절대 용납 안 되는 건 전부를 걸고 싸우자.
(폭력, 폭언, 심한 욕설 등 남에게 피해 주는 행동)
나쁜 엄마만 되지 말자.
그 뒤로도 여러번 충돌이 있었다.
헐크로 변신해서 호되게 야단치거나 다툴 때도 있었고
진정된 후에는 따뜻하게 안아주기도 했다.
그런 일이 여러번 반복된 후에는
어느 포인트에서 아들이 흥분하는지,
어느 포인트에서 엄마가 화를 불같이 내는지
아들도 나도 파악이 되어
웬만하면 서로 신경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적당한 거리에서 지내고 있다.
잘하고 있는 건지는 아직도 잘 모른다.
양육에 정답이 있을까?
양육자 혼자서
엄격하게 때론 따뜻하게 두 가지 역할을 모두 하는 것이
버겁다는 생각이 든다.
구부 씨(전남편)가 있었더라면 나았을까?
혼자보다는 나았겠지?
이혼하지 않았더라면
아이들 양육이 좀 더 수월했을까?
그건 모를 일이다.
정말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이혼 후라도 행동에 옮기지 않을까?
구부 씨(전남편)가 아이들을 향한 마음이 진심인 걸 알지만
언제까지나 마음만 있을 뿐이다.
이혼 후 비양육자는
양육비만 주면 본인의 역할은 다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이들을 키우고 책임지는 건
오로지 양육자의 몫으로 남겨지는 듯하다.
아마 문제가 생길 때마다
또다시 나를 탓할 것이다.
그래서 더 잘 키우고 싶은 욕심이
아이들과 더 갈등을 불러일으켰는지도 모르겠다.
양육의 길이 때론 가시밭길이지만
아이들의 성장은 성취감만큼이나
충만한 기쁨을 주기도 한다.
가끔 곤히 자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며 다짐한다.
좋은 날도 슬픈 날도
버거운 날도 아픈 날도
끝까지 아이들 곁을 지키리라.
아이들이 엄마를 알아주든 원망하든 상관없이
아이들 곁에서 묵묵히 살아가리라.
때론 길을 잃고 방황하고
밤새 뒤척이는 날들이 많아도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항상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