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신뢰가 없는 부부관계
사랑보다 더 중요한 신뢰
구부(=전남편) 씨와 나는 기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외롭게 자랐고 뭐든 혼자 알아서 해야 했다.
그런 사람들이 만나 가정을 이루어
좋든 싫든 의지하고 살았던 건 분명하다.
구부 씨의 여자문제가 밝혀지면서
1%의 희망이라도 붙들고 싶었지만
끊임없는 거짓말, 반복되는 의심행동들로 인해
난 더 이상 믿지 못하게 되었다.
구부 씨 역시
고분고분하고 받아줄 것 같던 아내가
불같이 분노하고 화내는 걸 보고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은 점점 옅어져 갔을 것이다.
믿음을 잃어가면서도
서로 이혼을 원치는 않았다.
사랑이나 미련보다는
가정이 깨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더 컸기 때문이다.
배우자를 향한 믿음을 잃었기 때문에
미래를 예상할 수도 없었다.
계획형인 내가 어떠한 계획도 세울 수 없었다.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날이 많아졌고
마음을 잡지 못해 방황도 많이 했다.
(그건 구부 씨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신뢰를 잃은 채로
구부 씨와 나는 3년을 더 살았다.
그 시간 동안
사람관계에 있어서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가끔은 아무렇지 않은 척
아이들과 여행을 가고
외식을 하기도 했지만
가정폭력과 자살시도도 있었고
아이들이 어느 날부터인가
방문을 걸어 잠근 채 거실로 나오지 않았다.
노력의 결과는 결국 좋지 못했다.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 기간 동안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걸 예상했던 탓에
아이들과 장기로 해외여행도 다녀오고
완전체 가족이 할 수 있는 이벤트도
숙제하듯 여러 번 했다.
구부 씨를 남편 자리가 아닌 아빠 자리에 앉혀놓고
배경을 달리하며 아이들과 추억을 바쁘게 쌓았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이혼준비를 하고 있었단 걸
한참 지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비상금을 모았고
이후 이혼을 하게 될 때 재산분할이 어떻게 되는지
아이들 교육비는 얼마가 필요할지
머릿속에서 자동계산이 되고 있었다.
나의 결심이 서는 순간
다른 이유로 이혼에 발목 잡히지 않으리라
천천히 준비를 해나가고 있었던 것 같다.
구부 씨 역시
평생 죄인으로 살아갈 자신도 없고
집을 떠나 마음 편히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찾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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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가 없는 부부
거기다 사랑도 없는 부부는
결국 끝이 있다.
그 끝이 이혼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랜 별거를 해도
함께 살아도
신뢰가 없는 관계는
껍데기일 뿐이다.
그것을 인정하는 데까지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럼에도 이혼을 결심하기에는 쉽지 않았다.
갑자기 어느 날,
이혼해야겠구나,
그날이 머지않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는데
명절연휴 내내
거실에 요를 깔고 티브이 보다 자고 술 먹고를 반복하는데
담배와 술에 찌든 냄새,
무기력하고 멍한 눈빛,
본인 외에는 아무도 신경 안 쓰는 행동
그런 구부 씨 모습에서
그토록 경멸하고 싫어했던
친정아버지 모습이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렇게 만든 데에는
나도 책임이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항상 피해자라며 우겼는데
나도 가해자였단 걸 깨닫던 순간이었다.
'나도 불행하지만 너도 만만치 않구나.'
'우리가 왜 함께 살아야 할까?'
'아이들에게 네 지금 모습 보여주기 싫다.'
'너는 이미 내 남편이 아니야.'
그리고 3개월 후 우리는 이혼에 서로 동의하고
그렇게 헤어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