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형 제목
현재는 "아내"라는 직함은 없지만 과거형으로 우선 제목을 써보았다.
구부 씨(=전남편)는 잘생겼다.
갸름한 턱선에 오뚝한 콧날, 항상 웃는 눈매와 선한 인상
셔츠 위에 니트가 잘 어울리는 남자였다.
목소리는 외모보다 더 근사했다.
구부 씨가 말을 하면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지? 하며 뒤돌아보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그에 비하면 나는 평균 수준에 못 미치는 외모이다.
얼굴도 크고 넙데데하고 인상도 조금은 세 보인다.
덩치도 있고 목소리도 곱지 못하다.
어두운 인상에 쉽게 말 걸기 힘든 분위기이다.
친구를 사귈 때,
남자를 만날 때,
직장을 구할 때..
사회생활에서 외모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
그 단점을 몸소 겪으며 살아왔다.
날 아는 사람들은 넌 참 좋은 사람이야 라고 말을 해주지만
날 모르는 사람들은 첫인상으로 판단하고
쉽게 다가서지 못한다.
20대 시절
그런 나에게 관심을 표하며 사귀자고 말을 해준 구부 씨가 고마웠다.
저렇게 멋진 사람이 내 남자친구가 되다니..
직장에 결혼할 사람이라며 구부 씨를 소개할 때도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인사시킬 때도
결혼식장에서도 그렇고
사람들은 저렇게 좋은 신랑을 어떻게 만났냐며 한결같이 그랬다.
큰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닐 무렵,
직접 아이를 데리러 구부 씨가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선생님들 사이에서 누구네 아빠가 연예인 닮았다고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고 전해 들었다.
초등 공개수업날, 나 대신 구부 씨를 보냈더니
큰아이 친구 엄마들에게 관심을 한 몸에 받고
그 후 동네 엄마들이
신랑이랑 나이차가 많이 나지? 라며 물어보기도 했다.
동갑인데, 나보다는 10살은 어려 보였던 모양이다.
그래도 20대 시절 연애할 때는
나는 가장 빛나고 당당했던 시기였고
구부 씨는 공부하느라 혈색이 좋지 못하던 때라
차이가 덜 느껴졌는데
결혼 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구부 씨는 점점 더 근사해지고
지나친 절약과 검소한 습관으로
두 아이를 키우는 동안 나는 많이 변해버렸기에
나이차가 그렇게 나 보였나 보다.
그 말을 듣고 기분 나빴어야 하는데
그건 한 순간이고, 반면에
좋은 직업, 잘난 남편이 내 아이들의 아빠라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구부 씨는 자신이 잘난 것을 잘 알았다.
자신이 너무 아깝다며 가끔은 스스로를 안타까워했다.
술에 거하게 취한 날은
내가 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인생이 달라졌을 거라고도 얘기했다.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참고 견뎌야 하는 일들이 참으로 가혹했던 것 같다.
싸워도 봤고 외면도 해봤지만
상처가 없어지거나 사라지진 않았다.
어쩌면 그 무렵부터
앞으로 나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
막연하게나마 짐작했던 순간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상하는 것과
실제로 일어나는 것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구부 씨의 여자문제가 표면 위에 드러나기 시작할 무렵부터
시한폭탄 하나가 터지더니
내 안이 꽁꽁 숨겨두고 억눌렀던 감정들이 모두 쏟아져
화산처럼 터지기 시작했다.
많이 참았기 때문에
나를 부정하면서까지 지켜온 것이었기에
그래서 나에게 남은 거라곤
오직 "가정" 밖에 없다는 생각에
그토록 가슴 치며 울고 분노하고 아파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이 뒤집히고
온몸이 경직되다가
열기가 오르락내리락
거의 분노로 잠식당한 나는
그 순간은 인간이 아니라 괴물이었다.
다행이지 불행인지
그 모든 분노와 원망을
구부 씨에게 모두 쏟아냈다.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밤이 되면 이성을 잃고 분노에 휩싸이다
아침이 되면
지난밤의 내 모습을 경멸하며 스스로 못 견뎌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정신과병원으로 달려가
"선생님. 제가 괴물이 된 거 같아요.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요."
자책감에 시달리며 물어보았더니
"괜찮아요.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 괜찮아요."
그 말 한마디에 의사 선생님 앞에서 펑펑 울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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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적으로 아는 것과
경험해서 아는 것은
너무나도 달랐다.
그 상황이 되어보지 못하면
결코 알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다.
이런 일들을 겪은 후
삶에 대해 더욱더 겸손해졌다.
누군가의 고통 앞에서
공감한다거나 이해한다는 말도,
좋아질 거라는 말도
이제는 쉽게 입에 담지 못한다.
분노가 사그라든 자리에
재만 남았다.
황망하고 쓸쓸하지만
그래도 이제 깨끗이 쓸어 담고
앞으로 나아갈 삶에 양분으로 쓰이길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