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고 있던 괴물이 깨어나다.
언제나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누군가의 삶에 도움이 되었을 때
나 스스로의 가치를 느끼곤 했다.
범죄자는 타고난 유전자부터가 다르다고 생각했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여겼다.
하지만
구부 씨(=전남편)의 여자문제를 시작으로
분노로 활활 타오를 때
무슨 일이든 저질러 버릴 것만 같았다.
억눌러있던 것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모두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나의 이성과 의지가
그 감정들을 다룰 수 없었다.
그로 인하여 자책과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들기 시작했고
분노는 분노대로 활활 타오르기 시작하고
그 모든 것들을 감당하기 버거웠다.
내 인생을 지지하고 있던 모든 세상이 깨질 수도 있다는 공포가 날 덮치곤 하였다.
세상이 꺼질 것 같은 공포와 두려움,
존재를 부정당한 배신감과 분노,
자신이 너무 못나보이는 자책감,
지난 내 인생에 대한 억울함과 슬픔
수많은 감정들로 터질 것 같은 날이면
한밤 중에 차를 조용히 몰고 나와
한적한 곳에 주차한 뒤
있는 대로 소리를 지르거나
엉엉 목놓아 울었다.
"날 이렇게 만든 건 너야.!"
"이 모든 건 너 때문이야!"
분노를 표출하는데 온 힘을 쏟느라
다른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심지어
목숨과도 바꿀 소중한 내 아이들마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데.."
구부 씨의 단 한마디
"네가 원해서 그렇게 산 거잖아. 아무도 그렇게 시킨 사람은 없어."
그 말 한마디에 나는 괴물이 되어버렸다.
"널 가만두지 않겠어."
"네 인생을 끝장내 버리겠어."
"날 조롱해? 이것들이. 내가 어떻게 하는지 두눈뜨고 잘 봐."
"내 인생을 걸고 널 망가뜨리겠어."
.....................
가정이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했지만
나를 소홀히 대한 댓가를
톡톡히 치르는 중이였을까?
분노는 날 망가뜨리기 시작했다.
가장 내 편이라 믿었던 사람도 못믿게 되었다.
괴물이 된 나도 내가 끔찍히 싫어졌다.
앞으로 살 수 있을까?
아무도 믿을 수 없고
여태 열심히 살아와도 산산히 부서져버렸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까?
왜 살아야할까?
죽어야 이 고통이 끝날까?
이 고통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난 이제 더이상 못할 것 같아.
내가 누군지도 모르겠어.
왜 살아야하는지도 모르겠어.
그냥 편해지고 싶어.
유일한 길이 죽음 밖에 없는 것 같아..
구부 씨의 여자문제를 시작으로 이혼에 이르기까지
지옥같았던 감정의 소용돌이를 짧게나마 그림으로 표현해보았다.
그리고 한참 더 시간이 지나고나서야
그 분노의 감정들이 비단 구부 씨의 여자문제 때문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그저 내 삶이 억울했던 모양이다.
나 자신을 소홀히 대하며 살아왔기에
억눌렸던 그 감정의 세포들이 반기를 들고 일어나
이 꼴을 보려고 네가 그리 살았냐?
도대체 너는 무엇을 위해 살았니?
살아온 인생을 되물으며
나 자신에게 끝도 없이 분노했던 건지도 모른다.
이 시점을 계기로
구부 씨와는 더 멀어졌다.
나도 내가 끔찍하고 무서운데
하물며 구부 씨는 어땠을까 싶다.
이 자책감은 평생 가지고 가야할 것 같다.
분노를 내 뿜고 조용해진
내 안의 어린 나는
지금은 새근새근 잠들어있다.
미안하다고..
네 마음을 돌보지 못해 미안하다고..
가장 소중히 대해야할 나 자신에게
너무 엄격하고 가혹했다고..
그리고 구부 씨에게도 나도 가해자였다고
미안하다고 전하고 싶다.
상처받은 두 영혼이 만나
서로 갈기갈기 더 찢어놓고 헤어졌구나.
구부 씨. 미안해. 잘 살아.
아이들 보살피며 잘 키우도록 애쓸게.
나도 잘 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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