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고비가 찾아올 때
"죽고 싶다" 말은 한 적 있었을지 몰라도
진지하게 자살을 고민해 본 적은 없었다.
이혼 전 어느 날..
큰 부부싸움을 하면서
"네 인생을 박살 내주겠다"며 구부 씨(=전남편)에게 폭언을 했었다.
이성을 잃은 구부 씨는 머리를 발로 차고
목을 조르기 시작하는데
사람이 이렇게도 죽는구나 싶은 순간이었다.
살고 싶지도 않았기에 반항도 안 했다.
큰 아이가 경찰서에 신고를 했다.
그동안 휴가와 병가를 많이 쓴 탓에 더 이상 휴가를 낼 수 없었다.
다음날 아침 얼굴과 목 주변의 상처, 시퍼런 멍들을 보고
초가을에 목폴라를 입고 스카프까지 두르고 출근을 했다.
눈물도 안 나고 슬프지도 않고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 내가 했던 생각은 죽음이었다.
그동안 이해하지 못했던
자살했던 대학동생도 생각나고
나와 비슷한 상황을 겪은 분들의 자살시도나
또 다른 힘겨움으로 세상을 놓아버린 사람들의 마음이 공감이 갔다.
그때의 나는 길을 잃었다.
앞으로 나갈 수도 뒤로 갈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이었고
어느 누구에게 손을 내밀 수도 없었다.
닥친 상황을 감당할 수 있는 그릇이 못 되는 데다
나 스스로가 괴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고통은 계속 뿜어져 나오는데 막을 힘도 의지도 없다.
나조차 통제력을 잃은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때는 삶보다 죽음이 편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죽어야만 끝나는 고통
출근하니 사람들이 흘끗 쳐다본다.
턱 주변과 뺨에도 멍자국이 있었는데
화장으로 가렸다지만 얼굴도 부어있었고 표가 났을 것이다.
그날, 정신과의원 상담일이라 점심시간에 시간을 내 진료를 받았다.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의사 선생님은 가정폭력의 피해자라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그리고 멍한 내 표정을 읽으시고는 내 마음까지 알아차린 모양이다.
의사 선생님의 첫마디는
"한 끼 씨가 겪은 일이 큰 일은 맞아요. 그런데 죽을 일은 아니에요."
그 말 한마디에 실종된 감정이 되살아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세월호 희생자들의 부모들과 상담을 하고 있어요.
그 부모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내 오랜 환자 중 난치병 아이를 8년간 간호하는 엄마도 있어요.
한 끼 씨의 고통보다 더한 고통이 세상에 많아요.
하지만 그분들도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어요."
보통 10~15분 남짓하던 진료시간이었는데
그날따라 40분을 붙잡고 나에게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여자분이라 직감이 빨랐나 보다.
그날.. 병원예약을 무시할 수도 있었는데
진료를 받으러 간 나를 돌이켜보면
내 안의 어떤 목소리는 살아야 한다 속삭였던 것 같다.
분명 내 안에서 외치는 소리가 있었다.
내 안의 목소리는
선택의 순간이나 힘든 고비마다 들려오곤 했었다.
생존본능일까?
무의식일까?
종교가 있다면 절대자의 목소리일 수도 있겠고
조상을 믿는다면 내 핏줄의 근원지일 수도 있겠다.
그날 이후
죽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또 다른 시각으로 보려고 노력한다.
죽는다고 생각해 보자.
가장 큰 충격을 받을 사람은 아이들이다.
구부 씨는 곧 재혼을 할 테고
아이들은 낙동강 오리알처럼 집안에서 방황을 할 거다.
살아갈 날이 창창한 아이들에게
큰 먹구름이 평생을 따라다닐 것이다.
죽는다 생각하고 살아보자.
미련 가질 일이 무엇이 있으며
욕심낼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경쟁에서 이겨서 뭘 하겠으며
인정받아 뭘 하겠는가?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다시 살아보자.
내가 태어난 이유가
어쩌면 나를 통해 세상을 맞이한 두 아이가
자신들의 힘으로 안전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
엄마로서, 양육자로서 역할을 다하는 것일 수 있다.
그게 자연의 이치이지 않을까..
우선 거기까지만이라도 가보자.
아이들이 대학을 가고 취업을 하고
독립을 하는 것까지만이라도..
그 뒤에 어찌할지 고민해 보자.
아이들 얼굴에서 희망을 보고 싶다.
아이들 얼굴에서 미래를 보고 싶다.
엄마로서 최소한의 역할을 다하고 싶다.
못난 엄마가 상처 준 것들을
어느 정도라도 만회하고 싶다.
엄마가 진심으로 미안하고 사랑한다는 것을
행동으로 마음으로 전하고 싶다.
그런 소망이 오늘도 날 걷게 만든다.
직장을 그만두고 공부를 하고 합격을 할 때까지
힘든 순간마다 그 소망에 의지하며 걸어왔다.
한 때 날 사로잡았던 죽음에 대한 열망이
또 다른 삶의 의지로 태어났다.
삶과 죽음은 공존하는 동전의 양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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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죽음을 생각하는 분들은 그 고비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넘기셔야 합니다.
지푸라기를 닥치는 대로 잡으세요.
당신에게 보이는 그 모든 것들이 당신이 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