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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한끼 Sep 15. 2023

9화. 남편이 떠난 후

냉정하고도 아픈 이별

2020년 11월 이혼합의를 위한 마지막 대화(녹음 중)


이혼해야겠다는 마음이 차오를 무렵,

구부 씨(전남편)의 의심스러운 행동은 점점 더 노골적으로 변해갔다.


이른 김장을 하던 어느 주말,

김장이 끝남과 동시에 구부 씨는

갑자기 회사에 급한 일이 있다며 서둘러 나갔다.


뒷정리를 하며 고민에 빠졌다.


회사에 가볼까?

없겠지?

그럼 이혼해야겠지?

아님 이대로 더 덮고 지내볼까?


소파에 앉아 눈을 감고 명상하듯 고민을 했다.


'이제 때가 된 것 같아'


내 안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길로 벌떡 일어나서

차를 몰고 구부 씨의 회사로 향했다.


회사 주차장에 들어가니

구부 씨 차도 없고

사무실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 길로 전화해서 당장 오라고 했다.


근교로 드라이브하고 맛집 들르고 좋은 시간 보내다가

나의 전화를 받고 심기 불편한 모습으로

한 시간 후 차를 몰고 등장했다.

상간녀는 돌아오는 길에 어디 내려준 모양인지 혼자였다.


또다시 하지 않아도 될 변명을 늘어놓는다.

구부 씨도 말이 안되는 걸 아는지 막히면  소리부터 질렀다.

그날 구부 씨가 갔던 맛집은 가족들이 좋아하던 식당이었다.

(내비게이션을 검색해 보고 알았다.)

CCTV 보러 당장 출발하겠다고 하니 그제야 털어놓고

어딘가에 숨어있던 상간녀도 뛰어나온다.


직장둉료라 알려지만 징계 먹을 일이다 보니 둘 다 긴장했던 것 같다.



.........................................

그리고 다음날

구부 씨와 나는 이혼에 대해 합의하고

여러 조건을 얘기하며 언성도 높였다가 화를 냈다가

꽤 오랜 시간 마지막 대화를 나누었다.

서로 믿지 못해 녹음을 하면서 말이다.

(구부 씨도 나도 녹음을 했다.)



마음이 아프고 힘들기도 했지만

그때의 나는 이혼 후의 삶이 걱정되어

굉장히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상태였다.



"앞날이 창창한 어린 새로운 상간녀,

공식적으로 밝혀진 반복적 외도로 할 말이 없는 구부 씨

직장에 알려지면 징계, 무성한 소문으로 인한 수치심

상간녀 소송을 당할까 봐 겁을 먹고 있는 상간녀와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해하는 구부 씨"




지금 결정해야 이혼조건이 나에게 유리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았던 것 같다.


나의 퇴직금과 예금(비상금), 예상되는 양육비로

10년간 기본적인 생활비는 마련해 둔 터였다.


다만 가장 큰 자산인 집이 문제였다.



" 가정폭력으로 인한 형사고소는 물론

상간녀소송을 하지 않겠다.

부모의 이혼도 힘들 건데

집마저 줄여 이사 가면 아이들이 힘들 거다.

결혼할 때 너는 빚만 가져오고

내가 1억을 들고 오지 않았냐..

이 집은 나의 지분이 더 많다. 등등"




 협의가 잘 되어

중대형 세단은 구부 씨가,

집과 소형차는 내가 갖기로 했다.

기본적 양육비 외에

아이들이 대학을 가면 기숙사와 용돈은 내가

대학학비는 구부 씨가 부담하기로 했다.




그리고 며칠 후

 구부 씨가 짐을 챙기러 온다고 해서

애들과 나가서 스터디카페에서 반나절 머물렀다.



그리고 집에 들어가니

휑~~ 한 느낌이 들었다.


신발장도 비어있고

욕실에 면도기, 칫솔 등 남자용 물건들은 사라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구부 씨가 쓰던 붙박이장을 열어보았다.





어떻게 하나도 남김없이 다 가져갔을까?

당연한 건데도

텅 빈 장롱을 보자마자 여러 감정이 되살아나

폭풍오열을 하기 시작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 뒤로 붙박이장 문을 6개월 정도 열어보지 않았다.

보고 싶지 않았다.





그 외에도 환청과 환각이 종종 보일 때가 있었다.


요리에 집중하다 보면

구부 씨가 맥주 한 캔 들고 소파에 앉아있을 거라 여기고

말을 걸 때도 있었고

(대답이 없어 뒤돌아보고서야 아.. 떠났지 깨닫곤 했다.)


저녁 무렵이 되면

구부 씨가 퇴근해서 번호키를 누를 것만 같아

기다려지곤 했다.


안방에서 자다가 구부 씨 그림자에 화들짝 놀라

"왔어?" 하고 말을 하면

아들이.. "엄마 나야~~"그러곤 했다.


그새 아빠만큼 커버린 아들의 그림자를 보고 착각을 종종 했다.





구부 씨의 빈자리에 익숙해지기까지 6개월 정도 걸렸다.


때론 슬프고 때론 눈물이 하염없이 나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커다란 숙제를 끝낸 것처럼 마음이 가벼울 때도 있었다.


여러 감정들과 생각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중이었을 것이다.


적응되는 어느 시점부터

나는 가끔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저에게 헤어질 수 있는 용기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헤어지지 않았더라면

구부 씨도 나도 더 망가졌을 것이다.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지면

가족 모두가 더 불행해졌을 것이다.


헤어질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은

그 때도, 지금도 변함이 없다.


..................................



그리고 구부 씨의 빈자리에

경제적인 불안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기본적인 생활 만으로는

아이들하고 싶은 것을 지원해 주지 못한다는 것을,

나 이외에 누군가 대신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내가 바로 서지 않으면

아이들이 많이 아파할 거라는 것을..


우선, 경제적인 것부터 해결하고

나머지를 생각하자.


그 마음이 구부 씨의 빈자리를 대신해서

내 삶을 이끌어나가기 시작했다.



한때 행복했던 기억은 그대로 남겨두고 싶어

결혼앨범과 결혼생활 함께 했던 사진들은 남겨두었다.

(다만, 결혼액자는 버렸다.)



구부 씨와 함께 했던 20년이 길었지만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다.


나는 잘 살아갈 것이다 라고

매일밤 되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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