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깊어지는 순간 도고 소풍

도고성당에서 몸 쓰고 도고소풍에서 마음 쓰는 하루

by 천둥벌거숭숭이

아주 개운한 아침을 맞이했다.

간밤에 깊은 대화와 한 잔의 맥주는 좋은 수면제가 되었다.

도고에 와서 가장 숙면한 밤을 보냈다.

푹 자고 일어나면 머리가 산뜻하다.

비 온 다음 날의 하늘은 더없이 맑았고, 숙면한 내 머리는 더 밝았다.

맑은 하늘이 보이는 날에는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빨래.

비가 갠 하늘 사이로 햇살이 비치면 빨래를 시작한다

아침 하늘은 구름들이 몽실몽실 떠다녔지만, 빨래를 마친 후 하늘은 기다렸다는 듯이 구름을 걷어가 버렸다.

아마 도고에서의 마지막 빨래 널기가 될 것이다.

내일은 비가 올 예정이기 때문이다.

쨍한 볕에 하는 햇볕소독은 내 마음까지 깨끗이 소독한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나무에 줄을 걸어 만든 빨랫줄에 메어있는 빨랫감들이 정겹고 따스하다.

잔잔하고 부지런한 마을 도고가 벌써부터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냉장고 털이는 언제나 즐겁다

에어프라이어에 구워 먹는 고구마는 물에 감싼 키친타월을 싸고 꽤 오래 구워야 맛이 좋다.

40분의 기다림이 길었지만, 곧 맛있는 구운 고구마를 먹을 수 있었다.

고구마로 쉽게 차는 배가 아니다.

곧 냉장고 털이를 시작한다.

양념돼지갈비를 조려내고, 덜어놓았던 제육을 볶고, 남은 카레를 데웠다.

특별한 조리법 없이 근사한 식탁이 완성된다.

그중에 내가 한 것은 바로 밥 하기다.

조금 질었지만 뭐 어때, 반찬이 제 할 일을 다 하는 걸.

식사량이 늘었다.

집에 있을 때도 이렇게 잘 챙겨 먹지 않았는데.

건강한 식습관이 생기고, 일찍 기상하고, 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게 되었다.

도고는 좋은 사람을 만드는 곳이다.

열린 종교의 문 도고 성당

도고 상사에 갈 때마다 들은 말이 있다.

도고 성당 신부님이 사람을 좋아하신다고.

성당에 가서 피아노 치고, 드럼도 칠 수 있고, 노래방도 아늑하게 만들어 놓아서 누구나 가서 즐길 수 있다고.

신부님이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해 열린 성당으로 만들어 놓으셨다는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잠자코 있을 수 없다.

종교는 없지만, 조심히 성당의 문을 열었다.

열린 성당은 창틈새로 비치는 형형색색의 빛깔이 내부를 더욱 환하고 빛나게 만들었다.

신실한 신자분께서 잠깐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셨고, 노래방에 가도 되냐는 우리의 물음에 가도 좋다고 말에 더하여, 지금은 회의 중이라 조금 있다가 가는 게 좋다고 말씀하셨다.

친절하다. 따스한 종교의 힘이 느껴진다.

그리고 바로 숙소로 갔다가 1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도고 성당으로 향했다.

도고 성당 교육관 안에는 노래방이 있다

도고 성당 교육관 안으로 조심히 들어섰다.

인사를 하고 문을 여니 불이 꺼져있고 고요했다.

아무도 없나 보다.

포기를 모르는 우리는 천천히 내부를 살펴보다가 발견하고 말았다.

정말로 성당 안에 노래방이 있었다.

기기를 켜고 노래를 선곡하니 춤추는 조명을 만날 수 있었다.

성당에서 느끼는 흥이라니, 도고는 매일매일 놀라움을 가져다준다.

모르는 사람이 노래방에 가자고 하면 따라갈 정도로 노래방을 좋아하는 나는 이 순간이 정말 행복하다.

내가 불러도 좋고, 다른 사람이 불러도 좋다.

마음껏 소리 지르고, 뛰고, 손뼉 치는 이 순간이 내 안의 모든 감정을 해소하게 만든다.

대략 30분가량 즐기다가 노래 선곡시간의 정적이 일었던 순간, 문 뒤에서 약간의 소란스러움이 느껴졌다.

문을 열고 나가니 신부님과 다른 신자분들이 간식시간을 가지고 계셨다.

송구하지만 그래도 나가서 인사를 드리고 노래방 이용을 해도 되냐고 늦은 허락을 물었다.

신부님은 흔쾌히 허락하셨고, 마이크 볼륨을 더 높이라고 말해주셨다.

이곳에 산다면 정말 매일 찾아올 것 같다. 매력 있는 도고 성당.

그렇게 본격적으로 노래방을 즐기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급격한 체력저하.

지치지 않는 나는 마이크를 놓지 않았지만, 함께 온 사람들을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일어서니 시간은 어느새 1시간 30분이 지나 있었다.

노래방에서의 시간은 성큼 지나간다.

목이 쉬어버린 사람들과의 귀갓길이 소란하다.

나오지 않는 목소리에도 말을 하고, 고양이를 보고 귀여워하면서 천천히 숙소로 돌아왔다.

아마 정해진 일정이 없더라면 혼자라도 남아있을 테지만,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다.

오늘의 저녁 일정은 바로 도고 소풍.

캠핑이다.

도고 저수지를 마음껏 볼 수 있는 도고 소풍

영업시간 오전 11시부터 오후 9시까지

우리가 사용한 공간은 오두막이고, 오두막 사용은 오전 11시, 오후 4시 30분 총 2번이다.

이용시간 4시간 30분.

최대수용인원 6인, 기준인원 2인 초과 시 1인당 5,000원 추가.

체크인 가능시간은 오전 11시에서 12시, 오후 5시 30분에서 6시 30분까지.

입구에 매점이 있어서 체크인 가능 시간에 이용할 수 있다.

차에서 내려보니 풍경이 참 좋다.

도고 저수지의 고요함과 건너편 주택가에 비치는 따뜻한 볕이 아름다운 곳이다.

벌써부터 신이 난다.

오두막에서 먹는 치킨 맛이 기가 막히다

캠핑은 처음이다.

오랜만에 맡는 치킨의 향이 흥을 끌어올린다.

사람 수에 맞게 의자를 세팅하고, 치킨을 놓는다.

페리카나 치킨, 내가 좋아하는 양념치킨.

심지어 먹기 좋게 순살로 준비해 주셨다.

도고 성당에서 열심히 놀았던 체력을 치킨으로 보강한다.

여기에 비눗방울을 더한다.

마치 아이가 된 기분이다.

실컷 놀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비눗방울을 앉아서 보는 기분은 정말 꿀맛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선한 눈빛을 하고 피어오르는 비눗방울을 보고 미소 짓고 있었다.

다른 공간에서 각자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모여 우리가 되고 같은 생각을 하는 순간이다.

참 좋다.

배가 부를 법도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모닥불이 피어나면 당연히 마시멜로우를 준비한다. 캠핑에 라면은 기본이다.

영상에서 보기만 했던 모닥불에 마시멜로우 구워 먹기를 실천한다.

마음이 급한 나는 2번 태워먹고서야 가까스로 먹기 좋게 잘 구워진 마시멜로우를 마주할 수 있었다.

실패작도 입에 들어오면 포근한 구름 같은 맛을 낸다.

달고 달고 또 달다.

장작이 쉬지 않고 들어가고 마시멜로우를 꽂은 꼬지가 불에 그을린다.

그을음이 묻은 꼬지로 평평한 돌에 도고를 새긴다.

별거 아닌 일에도 낭만이 묻어난다.

그리고 사람들은 모닥불 주위에 자연스레 자리를 잡고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한다.

유치하지만 또 궁금한 이야기.

보다 솔직해지는 시간이다.

계속 먹어도 허기지다. 라면까지 함께한다.

입이 계속 쉬지 않는다.

그래도 좋다.

소소한 하루를 풍성하게 만들어주니까.

달디 단 입 안에 매콤한 라면만큼 딱 맞는 야식메뉴는 드물다.

불멍을 하는 명확한 이유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가 좋다.

쌀쌀해진 밤의 추위를 따스히 녹여주는 모닥불이 좋다.

크고 작은 불이 사방에서 피어나듯, 사람들이 하나둘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1일 mc의 질문에 솔직한 감정을 토해낸다.

처음 사랑의 감정을 느꼈던 순간, 가장 기뻤던 순간, 자신의 인생 노래는 무어인지 등등.

맨 정신에 이야기하기 힘든 주제들도 불멍에 취한 사람이라면 금세 분위기에 동화되고 솔직해진다.

잔잔한 라디오 같은 사연들이 나오고 또 불멍을 하게 된다.

이래서 사람들이 불멍을 하는구나.

심지어 여기 도고 소풍에서는 불멍과 물멍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

한 겨울 같은 밤추위에도 한참을 모닥불 주위에 앉아 이야기 꽃을 피웠다.

아마 내일은 확실히 감기에 들 것 같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좋은 순간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렇게 춥고 포근하고 좋았던 시간은 끝이 나고 덜덜 떨면서 숙소로 복귀했다.

찬 기운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거실 테이블에 앉아 오늘 있었던 일들을 곱씹어본다.

그리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피곤하지만 눈과 귀와 입이 쉬지 않는다.

그래도 감겨오는 눈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오늘도 깊은 잠에 들 것 같다.

개운한 아침을 맞이했기 때문에 더 좋은 하루, 고요한 밤을 맞이할 수 있었다.

이렇게 매일이 즐거우면 떠나기가 아쉬울 텐데.

벌써부터 그리운 도고의 밤이 그렇게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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