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해가 아쉬운 건 내일은 볼 수 없기 때문이야

찬란하게 아름다웠던 도고의 마지막 석양

by 천둥벌거숭숭이

해 뜰 무렵 눈이 번쩍 뜨인다.

흔히들 습관을 들이려면 2주간 꾸준히 해야 한다고 한다.

내가 원했던 건 아니지만, 2주간 새벽 4시 기상으로 생체리듬이 고정되었다.

이제부터 나는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는 사람이 된 것이다.

도고가 이렇게 사람을 변화시킨다.

긍정적이고 나에게 이로운 변화.

역시 오길 잘했다. 도고.


아침이 와도 배가 고프지 않다.

사람은 역시 고기를 먹고살아야 한다.

속이 든든해서 기력보강에 참 좋은 식품인 것 같다.

아침의 일과를 끝내니 이제 완전히 적응을 마친 도고 친구들이 천천히 기상한다.

지난밤의 안부를 묻고 끝난 것만 같았던 빨래를 돌리기 시작했다.

간밤의 낭만적인 불멍은 모든 이의 옷에 잊지 못할 연기향을 남겼다.

고로 비가 예정되어 있었음에도 세탁기 가동이 시행되었다.

집에 가져갈 세탁감도 줄어들고, 오히려 좋아.

도고에서 온전한 하루를 보낼 수 있는 마지막 날이다.

글을 쓰는 사람, 도고 논밭 주변을 뛰는 사람, 약속이 있는 사람.

다들 바쁜 오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새벽에 글을 써놓았기 때문에 조금은 할랑한 오전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부족한 잠을 채울 수도 있었다.

꿀맛 같은 낮잠을 오전에 자는 것은 꽤나 행복하다.


자고 일어나니 사람들이 하나둘 숙소로 들어선다.

점심때가 된 것이다.

냉장고 털이는 어제 끝냈기 때문에 사 먹는 것이 좋겠어.

그렇게 저번주 실패했던 토성식당의 들깨칼국수 도전기에 돌입했다.

아주 먹고 싶지는 않았지만, 못 먹으면 또 꼭 먹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너른 들판을 지나면 덩그러니 위치한 토성식당

식당으로 가는 길이 재미있다.

너른 들판과 마주한 넓은 하늘이 구름이불을 덮고 있다.

사진 찍기 위해 서있는 우리를 보고 천천히 운전해 가는 마을버스 운전기사 아저씨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

황금빛 풍경을 보고 다른 생각을 할 법도 하지만, 나는 여기서 살인의 추억을 떠올렸지.

명작 영화, 집에 가면 또 봐야겠다.

그렇게 도로 가쪽을 사뿐히 걸어가면 정말로 식당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지역 맛집으로 유명한 토성식당이다.

입구에 차들로 가득해서 자리가 없나 걱정했지만, 다행히 점심시간의 끄트머리에 도착한 우리들은 편하게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황금빛 논밭 경치가 맞이하는 토성식당

창에 비치는 풍경이 마치 잘 그린 그림을 걸어놓은 듯하다.

멀리서 걸어가는 농부의 모습과 낱알을 찾아 날아다니는 새들의 모습이 이질적이다.

앉자마자 들깨칼국수 3인과 만두를 외친다.

주문은 빠를수록 좋다.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기대감만 커져가니까.

앉자마자 서빙되는 김치와 보리밥이 정겹다.

요즘 배추값이 비싼데, 이 김치는 아주 귀한 김치다.

입맛을 돋우기 위해 나온 보리밥이 옹골차다.

초고추장에 비벼만 먹는데도 희한하게 맛이 좋다.

보리밥을 다 먹고 나면 금세 들깨 칼국수가 눈앞에 도착해 있다.

오동통한 칼국수 면발과 잘 어울리는 고소하고 진한 들깨칼국수

국물을 떠서 한입 먹으면 건강이 흡수된다.

조금은 쌀쌀해진 날씨에 따끈한 칼국수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곁들임 메뉴로 주문한 만두도 일품이다.

얇은 피 안을 가득 채운 만두소가 옹골차다.

맛있는 식사에 행복함이 칼국수 가락만큼 배가 된다.

요즘 정말 구하기 힘든 배추로 담은 겉절이 맛이 좋다.

적당히 익은 깍두기는 제 역할을 깔끔히 수행한다.

단일메뉴로 풍성한 맛을 내는 이곳은 과연 맛집이라 할만하다.

그렇게 부른 배를 두드리며 밖으로 나오니 비가 왔다.

옥상에 널어둔 빨래가 걱정되지만 쉬이 뛸 수 없었다.

빠른 걸음으로 5층 숙소까지 쉬지 않고 걸어가 빨래건조대를 통째로 들어 집안으로 옮겼다.

난방기 가동과 에어컨의 제습기능으로 습기를 털어내기.

쉽지 않겠지만, 도전해 보는 거다.


밥 먹고 빨리 걸으면 금방 소화가 된다.

바로 배웠다.

배부르고 몸이 지치니 금방 잠이 왔다.

망설이지 않고 바로 침대에 몸을 뉘었다.

오늘은 도고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낼 예정이라, 생각보다 밤이 길어질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는 나는 기나긴 밤을 눈뜬 채로 보내기 위해 낮잠을 시도하는 것이다.

절대 본능에 충실한 것이 아닌 계획적인 낮잠이다.

잠들기 위한 노력이 무색하게 금방 잠에 들어버렸다.

완벽한 체력보충이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고 바로 모임장소로 출발.

마지막을 아쉬워하듯 석양을 머금은 하늘마저 경이로움을 뽐낸다

하늘이 예뻐서 눈을 뗄 수 없다.

오늘이 마치 마지막이라는 것을 아는 듯이 아주 아쉽고 느리게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순간, 다들 같은 마음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쉬워. 저만치 사라져 가는 오늘의 하루가. 너도 그러하니.

해가 지는 이유는 하루를 열심히 살아온 우리가 푹 쉴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내일 또 맑은 해가 뜰 테니까.

그리고 새로운 매일을 살아가야 하니까.

그렇게 오늘의 안녕과 내일의 안녕을 같이 응원한다.

지금부터는 바비큐 파티다.

고기 장인이 구워주는 고기는 정말 맛있다

태세전환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지는 해의 아쉬움을 향긋한 고기냄새로 지워버린다.

성당 앞 잔디밭에서 구워 먹는 고기를 상상이나 해보셨는지.

그 넓은 포용력에 그저 소시민은 압사당한다.

힘들거나 위기의 순간에만 찾았던 신의 존재가 이렇게 삶에 가까이할 수 있다니.

모든 사람을 품는 도고성당에 또 한 번 반한 순간이다.

도고에서의 마지막 밤이 이제부터 시작되었다.

짙은 밤이 시작되고 하얀 테이블에 둘러앉아 이제껏 도고에서 느꼈던 소감들을 나눈다.

거짓 없는 진솔한 고백들.

먼저 떠난 이들에 대한 아쉬움과 다툼 없이 아름답게 끝난 이별의 준비.

그리고 맛있는 저녁식사.

마지막이니만큼 원하는 사람은 술을 가지고 와도 된다는 첨언에 도고마트에 들러 맥주와 소주를 사가지고 갔다.

오랜만에 넘겨보는 알코올의 취기가 흥을 더 끌어올렸다.

그렇게 밤이 깊어가고, 추위를 피해 도고상사로 자리를 옮겼다.

하얀 도고상사를 사람의 다채로움으로 채운다

과자뿐이었던 안주가 어느새 풍성해진다.

샤인머스캣과 편육고기가 등장하고 취기가 오른 사람들의 자리이동이 시작된다.

기분이 좋아진 동그란 호기심을 가진 친구가 책상 위에서 숙면을 취한다.

양치를 하기 위해 숙소로 떠난 이와 안 보이는 친구를 찾기 위해 나간 사람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남아있는 사람들은 전날 밤, 도고 소풍에서 했던 질문들을 계속 이어서 하기 시작한다.

취향이 같고, 대화의 결이 맞는 사람과 대화를 이렇게 오래 해본 적이 언제였던가.

새벽잠이 달아날 정도로 푹 빠진 시간이었다.

낮잠을 충분히 잔 덕에 나는 괜찮았지만, 빨갛게 눈이 충혈된 사람과 이미 취해 잠이 온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렇다면 귀가해야지.

그렇게 난생 처음으로 3시가 넘어 숙소로 가기 위해 도고상사를 나섰다.

새벽 3시의 밤하늘은 왜 이렇게 환한 건지.

모든 별빛이 쏟아질 듯 아름답게 자기 자신을 뽐내고 있었다.

해가 뜨기 직전에 밤은 가장 어둡고, 별빛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모든 순간이 소중하다.

그렇게 오늘의 인사를 하고 취한 이를 방에 고이 모셔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기상시간이 4시인 사람이 3시까지 버틴 거면 최선을 다한 것이다.

눕자마자 바로 잠에 든 것은 실로 굉장히 오랜만이다.

도고에서 보는 마지막 뜨는 해는 아쉬움을 온몸으로 표현한다

날이 조금씩 밝아오는 순간 눈을 떴다.

기상시간 6시. 흡족하다.

3시간 잤지만, 6시 기상은 정말 만족하는 시간이다.

창밖을 확인해 보니, 안개가 짙게 깔려있었다.

마치 뜨는 해를 가리려는 듯이.

오늘의 이별에 대한 아쉬움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가을의 어느 아침이었다.

몸을 더 누일 수도 있었지만, 마지막이니만큼 게으름 피우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늘 하던 대로 일기를 쓰고, 글을 쓴다.

조금 막히는 글을 마무리하고 완전히 잠을 깨우기 위해 머리를 감는다.

그리고 사람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하는 반가운 아침인사다.

더없이 환하게 웃어 보인다.

좋은 아침입니다.

하나둘 씻고 나와서 각자의 방으로 들어간다.

나 또한 2주간의 내 생활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마치 이곳에 없던 사람인 것처럼 나의 흔적들을 지운다.

가방은 가득 차고 이곳의 나는 점점 옅어진다.

떠날 때는 미련을 두지 말아야 다음이 기대된다.

다음에 올 사람도 소중한 기억을 가득 담아가는 쉼터가 되기를 바라본다.


아쉬움과 미련은 그곳에 두고 온다.

내가 가져갈 것은 소중한 추억과 이곳에서 느낀 따뜻함이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람들의 따뜻함을 기억할 것이다.

남들보다 느린 적응력 때문에 수면시간은 짧았지만 그만큼 오랜 시간 많은 경험을 했다.

혼자 있는 시간과 함께 있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면서 나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새벽이 얼마나 깊고 진중한 지, 함께하는 시간은 얼마나 행복한지에 대해 많이 배웠다.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명확하게 볼 수 있었던 도고에서의 하루하루가 매일 특별했다.

취향이 같은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이 즐겁다.

결이 맞는 사람과 잠깐 하는 대화가 내 마음을 설레게 한다.

대화라는 것이 이렇게 순식간에 깊어질 수도 있는 것이었구나.

2주간의 시간은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퇴소식에서 서로를 위해 쓴 롤링페이퍼를 펼쳐본다.

내가 아는 나보다, 나의 최선을 바라봐준 사람들의 글이 참 좋다.

이 사람들이 말해준 사람처럼 삶을 살아야겠다.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리.

매일 뜨는 해처럼 밝고 환하게 사람들을 맞이하고 온전한 나로 살아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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